구약/학개서

학개서에 나타난 메시아사상

호리홀리 2015. 3. 26. 13:07

[학개서에 나타난 메시아사상]

 학개의 예언은 두 개의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다: (1) 하나는 장차 나타날 새로운 성전의 우아함과 찬란함, 그리고 그 성전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이방나라들의 공헌에 관한 것이고(2:6-9), (2) 또 다른 하나는 스룹바벨을 다윗 가문에 위탁된 약속들을 이어갈 메시아적 후사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2:20-23). 학개서 가운데 바로 이 두 부분이 우리의 관심사인 메시아 시대와 관련 있는 본문들이다. 아래는 두 본문에 대한 성경신학적·기독론적 해설이다.


I. 새로운 성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殿)의 나중 영광이 이전(以前)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6-9, 한글 개역)


본문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는 여기에서 언급되는 성전이 학개 당대에 세워질 성전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장차 나타날 종말론적 성전을 가리키는가 하는 것이다. 문맥상 학개의 메시지는 일차적으로 성전 재건 운동에 대한 격려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본문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나약하고 안일한 삶을 살고 있는 귀환자들에게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문맥 안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본문의 메시지가 그 당대의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본문은 학개 당대를 넘어서 그 이후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장차 야웨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육지, 그리고 만국을 진동시키는"(2:6) 종말론적이며 우주적인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것은 곧 자연과 나라들을 격렬하게 뒤엎고 우주의 중심부로서 새로운 성전을 세우는 일에 관한 예언이다. 따라서 본문에 그려지고 있는 성전은 본질적으로는 장차 올 메시아의 도래(초림)와 관련을 맺는 새로운 성전의 수립인 것이다.


특별히 '진동한다'(뒤엎는다)는 단어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聖戰)을 연상하게 한다. 야웨 하나님께서 위대한 전쟁의 용사로서 이방 나라들을 정복하시고 그들의 가장 귀중한 것들을('보배', 7절) 전리품으로 취하여 가지고 오실 것이며, 또한 사방 각처에 있는 열국(列國)도 은과 금을(8절) 가지고 종말론적 시온의 성전으로 올라와 야웨를 경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예, 사 2:1-4; 60:2; 66:12). 따라서 이 성전의 영광이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크고 영화롭게 될 것이라는 선언은 매우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성전이 세워진 그 장소에 만군의 야웨 하나님은 '샬롬'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9절).


그렇다면 이런 약속은 언제 이루어졌는가? 우선 제 2 성전이 세워져 있는 동안 전체에 걸쳐 역사상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에드워드 뵐(B hl)의 말을 인용하자면, 바벨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몰락하고 알렉산더는 파산되었다. 그리고 강철같은 로마 역시 몰락되어야 했다. 그때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복음서의 가르침에 의하면, 특별히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죽으심을 통해 어두움이 온 땅을 뒤덮었고, 성전 휘장이 두 조각으로 찢겨졌으며,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깨어지는 종말론적 사건이 발생하였다(마태 27:45-54). 옛 성전의 종말을 고하는 우주적인 사건이었다(참조, 겔 10:18-19). 히브리서 저자에 의하면 예수의 죽으심을 통한 성전 휘장의 '갈라짐'은 로마 병사들의 창에 의해 예수의 심장이 '터지는' 사건(요 19:34)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living)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9-20).


분명히 히브리서 저자는 성전 휘장을 그리스도의 육체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로마 군인들의 창에 의해 예수의 심장이 '터진' 표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예수의 심장(가슴)이 새로운 성전이 된 것이다. 예수는 이렇게 해서 자신을 통해서 새로운 언약을 중재해 주시는 분이며 대제사장이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 피부색이나, 사회적 계급이나, 남녀 성별에 상관없이 ― 이곳으로 들어오도록 초청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무장 해제시킨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聖戰)이었다.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특별히 기독론적이며 종말론적인 안목을 가지고 학개 2:6을 인용하고 있는 히브리서 12:26은 메시아 사상과 관련하여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히브리서 12:26-28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그 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분께서 약속하시기를 "내가 한 번 더,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들겠다" 하셨습니다. 이 '한 번 더'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버리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까닭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을 남아있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래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섬깁시다. (표준 새번역)


히브리서 저자는 26절에서 학 2:6의 "조금 있으면" 이란 문구를 "다시금"으로 바꿔 번역함으로써 종말론적인 미래를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 즉 히브리서 저자는 학개 당시의 제 2 성전이 다시금 영화롭게 되신 부활하신 예수라는 분 안에서 새로운 종류의 성전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진동하거나 흔들리지 않을 새로운 시온 산과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의 독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에 이르렀다"(22-24절)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은 메시아의 재림 사건을 통하여 최종적인 성취를 이루게 될 것이다.


II. 새로운 종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 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21-23, 한글 개역)


앞의 본문(2:6-9)이 새로운 성전과 종말론적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면, 이 본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한 정치적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특별히 성전을 세우는 일이 하나님께서 천상의 왕으로서 행하시는 '왕적(王的) 행동'(royal act)이시라면, 하나님께서 정치적 인물이며 다윗 왕의 후손인 스룹바벨에게 새로운 시대를 맡기시는 그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앞의 본문(2:6-9)에서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는 일이 경제적 측면(번성, 번영)과 연결되고 있다면 본 단락에서는 정치적 격동, 즉 새로운 왕국의 출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그 특색이다. 열국의 왕권(보좌)을 뒤엎고 나라들의 세력을 멸하고 그 군대를 멸절시킨다는 것은 전(全)세계적 특정한 세력의 등장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력은 특정한 인물, 즉 다윗의 자손과 연관되어 있다. 천지를 뒤흔들어 놓은 하나님의 우주적 행위가 다윗 왕조의 재건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이미 히브리서 저자가 옳게 해석해 주었듯이, 새로운 세력의 출현에 관한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워 떨게 만드시고, 하늘과 땅 역시 새롭게 변혁될 것이다. 학개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구속을 희망하도록 인도하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충만한 성취는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가리어져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써만 이루어질 그러한 세상의 대변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건들이나 인물은 학개 당시에 일어나게 될 국제적 상황들이나 특정한 역사적 인물인 스룹바벨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미래에 이루어질 사건들과 한 인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 역시 매우 묵시문학적인 용어들로서 ― 예를 들어, 천지가 진동함, 열국의 정권이 전복됨, 강력한 군대들의 파멸 등 ― 학개는 단순히 그 당대의 국제적 정치의 변혁적 사건들이나 특정한 인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선지서들에서도 그렇듯이 학개가 말하고 있는 이러한 미래는 종종 확정되지 않은 미래를 가리킨다(예, 요엘 2:30-3:3; 사 2:4). 그리고 신약성경과 함께 이 구절을 보면 이러한 미래는 신약의 그리스도의 출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스룹바벨에게 적용된 칭호를 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 진다. 물론 역사적으로 스룹바벨에게는 다윗 자손의 계보를 잇는 공식적인 정치적 지위가 주어졌다(21절). 그러나 본문 안(23절)에서는 그에게 왕적 명칭을 주지 않고 있다. 본문은 그를 왕이나 왕자 혹은 총독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그는 오직 '야웨의 종'으로 호칭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본문에서 말하는 스룹바벨은 학개 시대의 역사적 인물인 스룹바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적 인물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야웨의 종'은 종종 왕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되며(예, 삼하 7:5; 시 132:10; 왕상 11:32, 36; 대상 17:4; 사 37:35), 특별히 이사야서에서는 이 종을 이른바 야웨의 고난받는 종이라 호칭하는 바, 곧 메시아적 종을 가리킨다(사 42:1; 43:10; 49:6-7; 52:13; 53:11). 포로기에 들어서서도 '야웨의 종'은 다윗의 계보에서 등장할 왕과 같은 인물을 가리킨다(겔 34:23; 37:24,25). 이런 전통에서 볼 때 학개가 말하고 있는 스룹바벨(23절) 역시 페르시아의 왕이 임명한 총독 스룹바벨이 아니라 천상의 왕 야웨가 임명한 종말론적 '야웨의 종'으로서 장차 나타날 메시아(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특별히 스룹바벨이 실제로 여호야긴의 손자로서 왕적 지위를 갖고 있는 인물이며, 또한 성전을 세울 자의 역할을 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깊다. 즉 그가 야웨의 종으로 묘사됨으로써 그로 표상(表象)되는 메시아(그리스도)는 새로운 세상을 다스릴 진정한 왕으로 오시는 분이시며, 새로운 성전을 짓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가 천상의 왕 야웨를 대신하여 새로운 시대를 다스릴 왕과 같은 존재라는 것은 야웨께서 그를 '반지 도장'(signet ring)으로 삼으신다는 말(言)속에서 확인된다. 반지 도장은 왕권이나 왕위를 상징한다. 이 도장을 눌러 찍으면 왕의 말씀들이 그대로 실행되었다(예, 왕상 21:8; 단 6:17). 새로운 메시아적 인물은 야웨 하나님의 정권과 권세를 그대로 물려받아 새로운 시대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본문에 대한 칼빈의 메시아적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과 감화력을 갖고 있다:

예언자는 하늘과 땅을 흔들어 놓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위가 있을 것이라고 지금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은 반드시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야 맞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도께서 말씀하신 바처럼(골 1:20) 하늘과 땅 사방에 흩어졌던 것들을 그리스도께서 다시 모으실 때 일어나는 새로운 세계 창조(new creation)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하나님과 천사들과 화목케 하실 때, 그리고 그리스도가 마귀를 물리치시고 죽은 자에게 생명을 회복시키실 때, 그리고 그가 그 자신의 의로움으로 빛을 비추이실 때,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흔들어 놓으셨던 때였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복음전파를 통하여서 하늘과 땅을 흔들고 계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아담의 자손들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적인 중생(重生, 새롭게 됨)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며,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이 진동하시고 계시다 라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지자 학개는 종말론적 선지자였다. 그는 새로운 성전을 재건축하여 헌당(獻堂)하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필수적인 사건이라고 내다본 종말론적 선지자였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그 시대를 이끌어갈 메시아적 인물,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학개서의 메시아 사상과 관련하여 몇 가지 신학적 주제를 요약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학개는 새로운 성전의 건축을 독려함으로써 추방에서 정착으로 넘어가는 혼란스러운 격변기에 있던 이스라엘에 올바른 방향의 길을 제시한 매우 책임성 있는 선지자였다.


2. 그가 말하는 새로운 성전은 구원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전의 참된 의미가 온전한 성취를 이루기 시작하였다('이미', '시작된 종말론'). 그러나 온전한 최종적인 성취는 아직도 미래의 것으로 남아 있다('아직', '미래 종말론'). 이것, 즉 새로운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를 통하여 그와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교회에 대한 종말론적 이해는 신약신학이 다루는 중요한 주제중의 하나이다.


3. 이러한 구원사의 과정에서 열국(列國)이 차지하는 역할과 위치에 관한 문제이다. 학개의 메시지에 의하면, 더 이상 이스라엘과 이방나라들 사이의 '갈라짐'이 아니라, 메시아의 도래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이방나라들은 한 분 야웨 하나님 아래 통일될 날이 올 것이라는 환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종말론적이며 기독론적으로 다루는 로마서 9-11장을 예기케 한다.


4. 학개와 아울러 스가랴를 함께 바라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특색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학개는 좀더 넓은 의미에서 메시아 시대에 관한 말을 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성전을 다루면서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로서 메시아적 인물인 스룹바벨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의 경우는 이와 대조적이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중심부로서 성전에 관심을 집중하면서도, 그 시대의 정치적 중심 인물이 아니라, 종교적 중심 인물인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관심을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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