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쿰란 공동체의 사본들

쿰란 공동체의 사본들

호리홀리 2015. 3. 9. 15:00

쿰란 공동체의 사본들

 


 

1947년 봄 유다 광야를 비롯 성경의 땅 이스라엘 곧 팔레스타인은 아직도 영국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다. 무하마드라고 불리우는 한 베두인(사막 지대의 유목민) 청년이 길잃은 염소를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여리고 남쪽 15 km 지점, 사해 북서 연안에 위치한 쿰란 근처에서 고대의 사본들이 간직된 항아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에 전 세계 성경 학계를 놀라게 한 사해 사본의 발견은 이처럼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성경 말씀 또는 그와 관련된 문서들을 담은 고대의(약 2000여년전) 두루마리들이 사해 일대에서 발견된 일은 성경 및 고고학자들 뿐만 아니라 성경을 애독하는 많은 이들의 흥분을 자아내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이들 대량의 고대 성경 문서들이 발견된 곳이 이집트도 시리아도 아닌 성경의 땅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더욱 강도 깊은 사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1947년의 후반기 어느 무렵엔가 위에 언급한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의 두루마리들은 베들레헴의 한 신기료 장수 겸 골동품 취급상인 칸도라는 사람을 통하여 일부는 예루살렘의 성(聖) 마가 수도원 원장인 시리아 정교의 대감독 아타나시우스 예슈에 사무엘에게 팔렸고, 일부는 당시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고고학 교수이던 유대인 수케니교수에게 팔렸다. 성 마가 수도원의 사제들은 자기들이 구입한 두루마리들의 학문적 중요성보다는 금전적 가치에 더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들의 기대대로 쉽게 풀려가지는 않았다. 문화재 관리국에 근무하는 한 시리아인 직원과 그리고 도미닉 교단 소속의 한 구약 학자는 이 사본들을 가치없는 것으로 판정하였다.

 


 

한편 1947년 여름 처음으로 아랍인 골동품 취급상 칸도와 접촉했던 수케니교수는 이들 문서들이 진본임을 확신하였다. 1947년 11월 29일, 이 날은 마침 유엔에서 표결을 통하여 유대인을 위한 이스라엘 국가의 건립을 결정한 날이기도 하였다. 이 날 수케니 교수는 히브리 대학교를 대표하여 세 개의 두루마리를 구입하였다. 그것들은 바로 이사야서 일부가 간직된 두루마리(1QIsb), 성경의 시편과 유사한 찬양시들을 모은 두루마리,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간의 전쟁에 대한 기록을 담은 두루마리였다.

 


 

아타나시우스 대감독은 예루살렘에 주재하던 미국인 학자들의 제의를 받아들여 자신이 구입한 바, 이사야서 전부를 담은 두루마리(1QIsa)와 공동체 규율서라고 불리우는 문서와 하박국서에 대한 주석을 담은 두루마리를 출판하는 권한을 그들 미국인 학자들에게 넘겨주었다. 이때 출판할 수 없었던 네 번째 두루마리는 거기서 떼어낸 일부 조각에 근거하여 '라멕 두루마리'라고 불리운 것인데, 기술상의 문제로 당시 열어볼 수 없었던 두루마리였다. 이 두루마리는 수년이 지나고 그 주인이 바뀐 다음에야 펼쳐져서 '창세기 위경(僞經)'으로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독립을 계기로 중동의 정세가 점점 더 어지러워지자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이 구입한 네 개의 고대 두루마리를 보다 안전한 미국으로 빼돌렸다. 그가 두루마리들을 가지고 미국땅을 밟은 때는 1949년 1월이었다.

 


 

그러는 동안 당시 동예루살렘과 사해 근처의 쿰란 지역을 관장하던 요르단 왕국의 문화재 관리국에서는 고대 두루마리의 해외 반출이 불법이라고 하며 아타나시우스를 비난하는 동시에 미국인 학자들에게는 그 두루마리들을 출판할 권한이 없다고 하며 맹렬한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이들 네 두루마리는 공교롭게도 수케鎺 교수의 아들인 이갈 야딘의 활동을 통하여 사실상 이스라엘을 위하여 1954년에 구입되어 일찌기 수케鎺 교수가 구입했던 다른 세 두루마리와 더불어 1967년 이후로 예루살렘의 '책의 전당'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고대의 두루마리들이 마침내 제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이처럼 쿰란 사본은 처음에는 베두인에 의하여 우연히 발견되었으나, 나중에는 학자들의 전문적인 발굴 내지는 베두인들의 도굴에 의하여 점차 빛으로 드러난 고대 사본들이다.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들에 대하여는 이미 서술한 바 있다. 쿰란에서 발견된 문헌들 중에는 구약 성경을 베낀 성경 필사본들도 많이 있지만, 쿰란 일대에서 살았던 특정 유대교 사람들의 사상을 반영하는 문헌들도 적지 않게 들어 있다. 그들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들로서, 쿰란 밖의 몇몇 문헌 속에서 '엣센파'라고 불리우는 유대교의 한 분파와 같은 집단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자기들 삶의 중심으로 삼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통하여 종교관을 설립하였는데, 다만 그들의 해석이 당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팽배하던 일반 유대교 사상과는 완연히 달랐을 뿐이다. 이들이 남긴 분파적 문헌으로는 자기들 삶의 지침을 적은 공동체 규율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송시, 구약 성경중 특정한 책을 자기들의 역사 및 종교적 입장을 따라 풀이한 주석서, 모세 율법의 대목대목을 나름대로 짜깁기하여 기록한 '새로운 구성의 율법' 등등이 있다.

 


'신학강좌 > 쿰란 공동체의 사본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0쪽>   (0) 2015.03.09
<제9쪽>   (0) 2015.03.09
<제8쪽>   (0) 2015.03.09
<제7쪽>   (0) 2015.03.09
하박국 주석   (0) 201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