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잠언

잠언30장,아굴의 기도

호리홀리 2015. 2. 18. 08:28

30장,지혜의 가치-기도

 


 

30장은 유일하게 솔로몬의 잠언이 아니다.

동시에 유일하게 기도가 나와있다.

가장 큰 지혜의 가치는 기도이다.

기록자 아굴은 솔로몬시대의 대표적 지혜자이다.

그가 얻은 지혜는 인간의 전적 부패,전적 무능력이다.

2절“나는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계속 1인칭이 강조된다.

3절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선을 행할 여지가 전혀없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 줄 아느냐?

4절에 나온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라(5) 그리고 말씀을 더하지 말라(6)

그런 다음 연약한 인간인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기도이며 나는 평생 이렇게 기도한다고 자신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우리는 기도 할 때 마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구해야 한다.

언약적 자비를 간절히 구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이다.

 

아굴의 평생 기도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8절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또하나는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아굴의 기도는 중용의 기도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늘 욕심을 부리며, 기도 할 때도 더 달라고한다.

이 기도는 말씀대로 살려고 평생드리는 기도이다.

우리는 얼마나 허탄한 것을 구하는지 모른다.

허탄한 것이 아닌 가장 가치있는 일을 구해야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전 여호수아에게 그 땅의 지경을 미리 정하셨다.

유프라데부터 애굽까지 , 그리하여 다윗도 그 경계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제국의 멸망은 교만이었다.

더 큰 땅, 더 많은 백성,더 더...

오늘 우리는 탐욕의 끝을 걷고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40년 훈련시키실 때 만나를 통해 두가지 훈련을 시키셨다.

 하나는 일용할 양식이다.

그들은 날마다. 자신의 수고로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욕심을 부리고 더 거두면 어김없이 썩었다.

 

또 하나는 안식일 훈련이었다.

안식일을 위해서는 이틀 분의 양식을 거두게 했고 썩지 않았다.

 안식일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훈련을

그리고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통해서 탐욕을 제거하는 훈련을 시키셨다.

 

우리는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복수의 개념에서 인용하곤 한다.

허나 이것은 성경을 거꾸로 해석하는 경우이다.

오히려 보복을 금지하는 법이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자에게 최소한 그 이상의 경계를 넘어선 안된다는 법이지 그렇게 복수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굴의 평생기도는 자족하는 삶이다.

예수님도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를 가르치며 자족할 것을 명하셨다.

 탐욕이 난무하며, 믿음의 순수성이 상실 된 이 시대에 아굴의 중용의 기도가 얼마나 귀한가?

 

잠언의 삶의 현장은 시장,성문어귀,광장등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살 것인가가 잠언의 주제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지혜의 가치들을 적용하며 살아야하겠다.

 

 

 

 

아굴의 기도(잠 30:7-9)

 

 아굴의 기도(잠 30:7-9)는 아굴의 잠언(잠 30:1-33) 속에 포함되어 있다.  다른 모든 것은 잠언의 행태로 되었는데 이 부분만은 기도의 형태로 되었다.  이것은 아굴이 잠언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교훈하다가 자신이 했던 기도로서 다른 사람을 교훈하는 형태로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기도이지만 형태상으로 그가 하던 교훈의 형태를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어떤 특정한 숫자를 먼저 제시함으로서 어떤 명확한 내용을 독자가 파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 “두 딸이 있어” (잠 30:15),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 (잠 30:18),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 (잠 30:21), “다니는 것 서넛” (잠 30:29).  이런 형식을 따라가면서 “내가 두 가지 일을 구하였으니”라고 아굴은 자신의 기도를 소개한다.  그만큼 중요한 기도라는 것을 나타낸다.  일생에서 중요한 기도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죽기 전에 주옵소서”라고 표현한다.  명확하게 표현된 가장 중요한 일생을 통해서 원하던 기도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제 그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자.


  첫째 기도는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라고 하나님께 요구한다.  이 내용은 자신이 허탄과 거짓말을 하지 말게 하라는 의미라기 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속이고 어렵게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깊이는 다르다.  구약에서도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피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려운 상황을 견디는 모습이 많이 있다.  구체적인 예는 욥의 경우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 아무 설명이 없이 욥을 혼자 두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구약에 나타나는 많은 고난이 그 때의 성도들의 잘못 때문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알려주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특수한 뜻 속에서 주어진 것이 많이 있을 수 있었다 (시 73편).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견디며 새로운 차원의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로 발전해야 했다 :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시 119:143).  심지어 어떤 종들은 벗은 몸으로 예언을 해야 했으며 (사 20장), 자신의 아내가 하나님 나라의 예표가 되기 위해서 죽는 것을 경험해야 했으며 (겔 25장), 하나님 나라의 심판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알기 위해서 예언자 자신을 치시기도 했다 (예레미야 애가). 


  아굴의 둘째 기도는 첫째 기도의 내용과 비슷하다 :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 30:8b-9).  재물에 대한 양극단에 있어서의 수많은 타락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자는 도적질을 하게 되는 극단에 처하고, 부자는 하나님을 모른다 하는 극단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극단을 극복하는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취해서 적당하게 필요한 양식을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적 상황에서 얼마든지 필요하고 가능한 기도의 내용이다.  법은 행동을 규율하는데 구약법이 소극적으로 표현된 것과 같다.  즉 십계명 중의 8가지의 계명이 모두 “하지 말라” 라고 한다.  그러나 재물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구약에서는 취하고 있지 않을까 ?  재물이 많아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잘 쓰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가 ?  다윗과 솔로몬은 최고의 부자였고 그 부를 통해서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재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재물을 다스리는 사람이 중요한데, 재물을 조절하기 보다 사람의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  


  이런 의미에서 아굴의 두 가지 기도는 그 자체로서 가능한 기도이지만 그 내용의 깊이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반영하기보다 목가적 혹은 초보적 단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시대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전투적 성격이 뚜렷하기 때문인데, 그 전투가 하나님 나라 안에서도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 그것을 적극적으로 정복하는 모습까지는 발전하기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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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가난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아들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롬 8:32)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 (골 2:2).  그러므로 이미 우리는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다(고후 4:18)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이미 우리는 영원히 가난하게 될 수 없는 부요로 채워졌기 때문에 가난을 피하는 기도를 부탁하는 것 자체가 제 3경륜에 있어서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가난하게 되는 길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어놓고 계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비록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로 새로워진 인생을 값지게 보내는 방식은 도무지 아니다. 


  또 부자가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부요하게 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 우리는 그 재물을 가지고 구약의 다윗과 솔로몬보다 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잘 쓸 수 있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가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부요로 쓸 수 있는 곳이 너무나 많고, 그 도움을 통하여 치명적인 질병이 고쳐지기고 하고 한 사람의 평생이 새롭게 되기도 하며, 한 교회가 전격적으로 새롭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가 부자가 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할까 ?  물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가 되는 구더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담그랴 ?  그런 구더기가 생긴다 하더라도 장맛을 보기 위해서 집집마다 장을 담그었듯이 하니님 나라의 진실된 장맛을 보기 위해서 부자가 되는 수단을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목적을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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