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상

역대상17장,다윗언약

호리홀리 2015. 1. 14. 13:09

17장 다윗언약은 역대기의 핵심이다.

 다윗은 “집”에관한 언약을 받는다.

“바이트”(집)는 왕조,성전,집에 쓰인다.

 

첫 번째 집은 다윗을 위해 세울 왕조이며,

두번째 집은 성전이다. (12)

 이것은 장차오실 메시야의 소망이며 (사55:3)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있다.

 

14절 영영히,영원히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다.

 포로가 되었다고 다윗언약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윗언약은 곧 하나님의 나라와 같이한다. 

  삼하7:16은 “네 집과 네 나라“이지만 여기서는 ”내 집과 내 나라”로 바뀌어진다.

다윗언약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나라의 영원성이다. 

 

 

다윗언약을 받고 드린 기도(대상17:16-27) 

 

다윗은 자신의 정권이 안정을 찾아가자 여호와를 위하여 집을 짓기를 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제안을 거부하시고 오히려 그를 위하여 영원한 “집”을 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이 바로 “다윗언약”이다(cf. 삼하7).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신 이 언약이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가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감격한 나머지 떨리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다윗이 얼마나 감격했는 가는 10여 절에 달하는 본문에서 여호와를 부르는 호소(invocation)(예, “오 여호와여!”)가 10차례나 된다는 점에서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우리말 성경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히브리어 텍스트에서는 이 기도문이 다윗이 말한 것이지만 기도의 초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께 맞추어져 있다. 히브리어 텍스트에 의하면 그는 기도문 안에서 “나”라는 단어를 시작할 때만 사용한다(16절). 그러고 난 다음에는 자신을 언급할 때 3인칭(18절), 혹은 2인칭 접미사를 사용한다(예, “당신의 종”)(25절). 특히 하나님을 염두에 둔 2인칭 소유격 접미사는 20차례 이상이나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전형적인 감사의 기도나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분에게 새 노래를 부르라는 권면적 기도가 아니라 매우 신중하고 엄숙한 기도이다. 기도를 드리는 그의 자세를 살펴보면 일생동안 이 순간만큼 그가 진실했고 겸손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고백을 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무한하심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기도를 시작하다가 끝에 가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맞추어나가겠다는 각오로 기도를 마치고 있다.

 

 

이 기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인정하는 고백(16-22절); (2)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간구(23-24절); (3)처음 두 섹션의 요약(25-27절).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인정하는 고백(16-22절). 그와 그의 자손이 여호와 앞에서 영원히 주의 백성을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받은 다윗은 제일 먼저 자기는 결코 이러한 은총을 입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고백함으로써 기도를 시작한다(16-19절). 옛적에 나발이란 사람이 “다윗이 누구냐?”라고 빈정댔을 때 자존심이 상한 다윗은 그를 죽이려 했다(삼상25).

 

아마 이 순간에도 만일 누가 다윗의 대인관계에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하염없이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만큼은 이것이 전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무엇이기에, 저의 집안이 무엇이기에… 개만도 못한 저를 생각하시어…”(16, 19절). 그는 이 은혜가 오직 여호와의 선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섹션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성호를 여섯 차례나 부르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다윗과 그의 후손들에 대한 일만은 아니다. 범 우주적이며 특히 범 국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본문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삼하7:18에 수록된 기도문에 의하면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주 여호와”라고 부르지만 역대기 저자는 하나님을 두 차례나 “여호와 하나님”(16, 17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여호와 하나님”은 곧 창세기2-3장에서 하나님의 세상 창조사역과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이 축복이 “먼 훗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고백하는 것(17절) 역시 이 약속의 범 우주적인 효력을 암시하고 있다.

 

다윗에게 임한 축복이 온 이스라엘에 영향을 미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앞으로 그의 집안이 영원토록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가장 잘 요약하는 예로 자신과 사울의 개인적인 갈등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과 축복이 아니라 국가가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 중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던 출애굽 사건을 들고 있다. 저자는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을 우주적이고 국가적인 감사의 사례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간구(23-24절).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루셨던 놀라운 역사를 찬양한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사역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을 간구한다. 특별히 한 예로 그와 그의 집안에 허락하신 약속이 꼭 지켜질 것을 호소하고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지 않으시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서 비롯되는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동안 약속하셨던 모든 것을 다 지키심으로 자신의 신실하심을 온 세상에 드러냈던 그 역사가 이번 약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속될 것임을 확신하는 간구이다.


처음 두 섹션의 요약(25-27절).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마무리 하면서 이러한 간구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축복을 내리셨기 때문에 그분의 신실함을 믿고 그 축복이 실현되기를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내려주시는 축복을 영원토록 감사하며 누리겠다는 고백이다.


다윗언약은 역대기 저자에게 포로후기 시대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성립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접어두고 다윗이 언약을 하사 받은 이후에 드린 이 기도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저자는 다윗의 기도를 통해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가면을 벗고 진실로 겸손하기를 권면하고 있다.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는 개만도 못한 존재입니다”를 서슴없이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하나님께 기도함에 있어서 과거에 내려주신 축복과 은혜를 회상하고 기념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다윗은 출애굽이 있은 지 몇백 년이 지난 이 순간에도 그 사건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성도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에 순종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에게 이 사건을 자손대대로 두루두루 기념하기를 명령하셨던 것이다. 저자는 또한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축복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즐길 것이 아니라 온 공동체가 함께 기뻐하고 즐길 일임을 시사하고 있다. 기도의 응답 역시 공동체가 함께 감사할 일이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