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성경해석학

개혁주의 성경해석(히브리서를 중심으로)

호리홀리 2020. 5. 28. 13:22

개혁주의 성경해석(히브리서를 중심으로)

 

                                                                                    박인대교수

 

개혁주의 성경해석은 기독론적 해석, 언약적 해석, 구속사적 해석을 포함한다. 본 강의에서는 이 세 가지 해석을 통해서 개혁주의 성경해석의 뼈대를 세우고자 한다.

 

여러분은 라합 이야기를 잘 알것이다. 여호수아서에서 차지하는 라합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기록자 여호수아는 여호수아서의 주인공으로 라합을 증언하고 있다. 라합은 여호수아서의 서론인 1장과 본론인 3장 이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 중에 자신은 빠지고 믿음으로 행했던 라합을 천거했다. 야고보서의 주제대로 행함 있는 믿음의 주인공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서 라합을 소개한다.

 

다시 여호수아서로 돌아오면 라합은 살몬을 만나 유다 지파에 귀속되고 베들레헴으로 이주하여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을 통해서 오벳,오벳은 이새를  그리고 이새는 다윗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이다. 이것이 구속사적 해석의 시작이다. 라합이야말로 구속사의 주인공인 셈이다. 이방 여인, 천한 여인이었던 라합이 상천 하지의 여호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창 15:6) 그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구속사의 대 파노라마를 알게 되는 것이다.

 

언약적 해석은 라합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아기를 정탐군에게 듣고, 두명중 한 사람은 유다 지파의 리더였던 살몬임을 유추 해석할 수 있다. 그와 생명을 건 언약을 체결한다. 히브리어 성경은 수 2:12~13절의 선대를 헤세드라 표기한다. 헤세드는 언약적 관계에서 언약을 체결한 이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일컫는다. 반듯이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는 헤세드를 통해서 언약을 이룰 것이고 그 언약의 최종 완성, 즉 헤세드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난 것이다.

 

수 2:13~20에 나오는 서약과 맹세는 히브리어 베리트이다. 언약이라는 말이다. 언약은 희생물을 쪼갠다는 말이다. 즉 언약을 체결할 시 쪼개어지는 의미를 내포한다. 언약은 양자가 생명을 거는 것이다.

수 2:9에 라합은 내가 아노라(히:야다)를 사용함으로 체험 신앙을 고백한다. 이는 단순히 정탐군을 숨겨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할 때 베리트와 헤세드를 살펴보고 언약적 해석을 해야 한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이 두 개의 단어는 함께 나오곤 한다.

 

이후 라합 이야기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수고를 해야 한다.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을 하는 것이 기독론적 해석이다. 설교를 만들 때 결코 모세나, 위대한 다윗을 전하며 교훈적, 윤리적 설교에 그친다면 올바른 성경해석이라고 할 수 없다. 눅24:44 말씀대로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서,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씀대로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라합 이야기에서도 붉은 줄을 창문으로 내리는 것은 구원의 생명줄이신 예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1장 기독론적 성경해석

 

기독론적해석의 첫 시작은 typology(모형론)이다. 히브리서는 모형론을 강조하고 있다. 멜기세덱을 가장 중요한 모형으로 강조한다. 아론의 사역, 4장의 안식은 천국의 모형이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옛 언약(시내산 언약)은 새 언약(갈보리 언약)의 모형이다.

 

보아스는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래서 룻기는 고엘(기업 무를 자)을 강조한다. 고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이다. 라합과 룻은 모두 이방인이었고 그리스도의 모형인 살몬과 보아스를 통하여 언약을 체결함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룻1:8에서도 선대(헤세드)를 베푼 것을 강조하며 언약관계를 보여준다. 나오미는 두 자부에게 언약 백성이 무엇인지 가르쳤고 룻은 받아들였으나 오르바는 언약을 파기했음을 보여준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 반듯이 기억할 것은 기독론적 해석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해석으로 그치고만다. 다윗이 위대하고 모세가 위대하지만 그들로 결론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귀하지만, 그림자이며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가르쳐야 한다. 

 

눅24:44절은 기독론적 해석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그러므로 구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름이나 사역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복 있는 그 사람"이다. 정관사 "하"가 "사람"(이쉬) 앞에 붙어 하이쉬(그 사람)이다. 그럼 그 사람은 누구인가? 복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시편의 주제인 것이다.

2편은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지 않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2편의 주제는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이다. 세상 나라의 왕권과 하나님 나라의 주권이 대조를 이룬다. 세상 나라가 아무리 강하다한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6절 "내가 나의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성부하나님의 선포는 나의 왕이신 오실 메시아를 언약대로 예루살렘에 세웠다는 것이다. 7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성부의 선포인 아들과 6절의 나의 왕은 동격이며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8~9절은 하나님 나라의 최후승리를 보여준다. 세상 나라는 멸망할 것이지만 사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12절의 그 아들, 정관사가 붙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 맞추는 것, 영접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것. 이 해석 외에 달리 무슨 해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구약을 해석 할 때 너무 무리한 기독론적 해석은 오히려 거부감을 줄 것이나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읽을 때 영안이 열릴 것이라 확신한다.

지금도 유대교에서는 이사야53장을 금서로 정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그들이 읽으면 큰일 나는 것이다. 두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읽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분은 이런 지식을 가지고 창세기 저음부터 읽어보시라.1장 1절이 성부, 2절은 성령, 그리고 3절의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요 1장은 창 1장의 해석이다. 요 1장 역시 "태초에"로 시작된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 그리고 4절은 우리에게 생명(영생)을 주시기 위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 요한의 해석은 설명할 필요 없이 기독론적 해석이다. 5절의 빛은 정관사 "토"가 붙은 그 빛이다.

 

창 3:15절은 원 복음이다. 그러나 캐토릭이 사용하는 벌 게이트 성경은 여자의 후손을 마리아로 해석함으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마리아 숭배 사상이 시작된다. 그들도 잘못을 시인했으나 이를 전적으로 부인하게 되면 캐토릭의 근본부터 무너지니 쉬쉬하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루터의 성경번역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것도 캐토릭의 "IPSA"(she herself)가 아닌 Der Selbe(he himself)인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의 "후(3인칭 남성 대명사) 예수페카 로쉬 " 그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구약의 여호와는 신약에 등장하지 않는다. 70인 역에서 모두 "주"(큐리어스)로 번역했다. 즉 여호와는 "주"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이것이 신약의 해석이다. 여호와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에고 에이미'( I am I am)이다. 요한은 7번 에고 에이미를 고백한다.

 

삿 13장을 보면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당신의 이름 만이라도 알려달라 할 때에 18절, 내 이름은 "기묘라" 예수 그리스도의 별명인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로 등장한 이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수 5장에서는 하나님의 군대장관으로 나온다.

 

잠언 8장은 철저히 기독론적 해석을 따른다.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화이다. 22절부터의 "나"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예수님은 철저히 기독론적 해석을 하셨다.

눅 4:18 요나를 자신의 모형으로

요 2:19 인자도 놋뱀같이 들려야 하리라.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것이다.

요 3:14 광야의 뱀

요 6장의 만나는 영생의 말씀

 

출애굽의 어린양의 피

 

마라의 나뭇가지

 

광야는 세상으로의 이미 와 아직 사이

 

언약궤

 

아사셀 양

 

도피처

 

칼빈의 모형론 강조

 

시 8편 5절 "저를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고(개역성경)  천사는 "엘로힘" 의역으로 철저한 기독론적 해석이다. 이후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낮추심과 높임의 해석이다. 그러나 개역개정 성경은 원본대로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로 번역했다.

 

모형론의 절정은 시 110:4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한 대제사장" 히브리서의 주제

 

히 10:10 ,19절의 아사셀양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시 22펀을 메시아 시각으로 읽어보라

 

사42장부터 56장까지  메시야의 관점으로 읽기

 

기독론적 삶을 적용하면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다. 골 3:10, ccc수련회

 

 

2장 언약적 해석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누구일까? 바울, 디모데, 아볼로, 누가?

결어인 히 13:23절을 보면 바울이다.

기록 연대?

A.D70년 직전이다.

 

70년은 중요한 시점이다.

1. 최종 디아스포라

2. 예루살렘 멸망

3. 제사 제도 폐지

4. 벧전, 후서와 연대 비슷

멸망 직전에 유대인들을 위로, 권고, 말씀 위에 굳게 세우려는 목적(핍박받는 로마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갑바도기아까지, 에센 파

 

그렇다면 바울서신과 달리 히브리서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유대인의 끈질긴 공격을 받고 있는데 자신을 밝힐 경우 더욱 반발을 살 것이기 때문(계시록의 암호 사용)

히브리서의 문체나 이중 결론 그러므로~는 바울의 저작권을 입증

 

히브리서의 두 번째 단락 8~10장은 언약적 해석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옛 언약(내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과 새 언약(벧전 2:9) 시내산 언약의 갱신

 

북이스라엘은 엘리아의 젠틀 위스퍼

 

남유다는 이사야(59:21), 예레미야(31:31~34). 에스겔의 새 언약(36:24~27)

 

아담 언약~노아 언약~아브라함 언약~다윗 언약

 

시내산언약~모압언약~세겜언약

새언약의 완성 마26:28  벧전2:9

 

창 15:6

히브리서는 디아데케를 언약으로(언약의 피 10:29) 마 26:28

에팡 겔리온을 약속으로(10:36) 

 

히브리서의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

 

3장 구속사적 해석

 

고엘제도~구속자

히 10:19~

구속사~종말론~이미 와 아직(초림과 재림) 빌2:12~13  2:12, how의 법칙

종말론적 믿음이 없으면 잘못된 믿음(시한부 종말론은 잘못된 것)

메시아흐 구약에 40번

 

히 10:25~ 믿음으로 살자

 

11장 믿음의 사람들  여호수아 대신 라합, 야고보서

 

12장, 고난과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

고난 통과(광야) 루터 신학의 진수 성도의 고난은 십자가

스콜라철학은 인내, 성숙, 영성, 훈련, 수양으로 토마스 아켐피스

 

히 11:26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십자가) 모든 성도의 고난은 십자가

십자가의 모양. 크기는 다르지만 언약을 믿고 마 28:20

 

주님 다시 오심을 믿고 13:5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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