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통치 기간은 B.C. 728년에서부터 B.C. 687년까지이다(왕하 18:1-3 주석 참조). 한편, 그의 42년간의 통치 기간에는 그가 병에서 회복되어 수명을 연장 받은 15년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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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라고 평가받은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야(34:2)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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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년(元年) 정월에 - 이것은 히스기야의 통치 첫해, 니산월(태양력으로는 3, 4월)을 가리킨다. 이는 히스기야가 통치권을 맡은 해라기 보다는, 단독으로 통치권을 받았던 해인 B.C. 725년에 해당되는 것이 확실하다(Payne).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 여호와의 전 문이 폐쇄된 것은 히스기야의 부친인 아하스 왕이 통치하던 때였다(28:24), 여호와의 전 마당에 다메섹 신들의 우상을 세워 성전을 더럽혔다. 반면에 경건한 히스기야는 실질적인 통치권을 부여받자 마자, 성전을 복구하고 우상을 척결하는 일을 시작했다.
수리하고 - 왕하 18:16에 따르면 히스기야는 그 당시 여호와의 전 문과 기둥에 금을 입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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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은 히스기야가 성전을 정결케 한 사건을 총괄적으로 요악한 것이고, 본절부터 19절까지는 성전을 정결케 하는 과정을 사건 서술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동편 광장에 모으고 -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며, 대체적으로 성전의 동편 외곽지에 있는 광장일 것으로 추측한다(Keil). 이곳은 스 10:9의 '하나님의 전(殿) 앞 광장'이나, 느 3:26;8:1, 3, 16에 기록된 '수문(수문) 앞 광장'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히스기야 당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모임은 주로 성전 안뜰에서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므로(Bertheau, Benzinger) 왜 하필이면 백성들이 모이는 곳인 이 외곽지의 광장에서 모였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동편 광장'은 성전을 벗어나 수문으로 나가는 광장이며, 이곳에서 백성들이 곧잘 모였고, 성전이 닫혀져 방치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제사장과 레위인 무리가거기에서 모였다고 생각하였다(Curtis). 또한, 이 광장은 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 용이했을 것이고, 성전 마당조차 우상 숭배로 많이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모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5,15,16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가운데 우상으로 더럽혀져 있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모였을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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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성결케 하고 -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의 일을 수행할 때, 몸을 정결케하는 일은 규례에 따른 의무였다(대상 15:12, 14). 이처럼 히스기야가 성전을 성결케하기 위하여 성결의 법에 다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먼저 자신들을 성결케 하라고 명령한 것은 여호와를 향한 신실함과 경외심의 표현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서는 이와 같은 성결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전체의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엇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절대적이라는 이해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 하라 - 여기서 '그 더러운 것'(, 한닛다)은 '불결함'을 가리키는데, 이는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다메섹 단의 모양대로 만든 제단을 비롯해서, 온갖 우상 숭배를 위해 사용된 기구들과 그에 관계된 불결함을 가리킬 것이다. 유사어로 16절에 '더러운 것'(, 핫투므아)이 나오는데 이 또한 우상의 가증스러운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조치는 곧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라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는 첫 행동 지침이었다. 한편 본절에서 '성소'(, 하코데쉬)는 성전 내부의 건축물만을 가리키지 않고, 성전 전체 구석구석을 의미하는 것이며(Curtis), 성전 제사와 관련되는 모든 장소와 사람, 그리고 성전 기구들을 총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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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열조(列祖)가 범죄하여 - 여기서 '우리 열조'란 아하스와 그 당시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구체적인 범죄 내용은 7절에 소개되고 있다.
얼굴을 돌이켜 - 성경에서 '얼굴'은 항상 인격의 표현으로 '인격적인 관계'와 연관되어 나타나며, 상대에 대한 인격의 총체, 즉 마음의 표현을 나타낸다. 따라서 '얼굴을 돌이켜'라는 표현은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며, 여호와에게서 그 마음이 떠났음을 나타낸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 이것은 성전 제사를 폐하고, 우상 숭배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삶의 방식까지도 우상을 섬기는 적극적인 표현으로 나타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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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실(廊室) 문을 닫으며 - 28:24 에 따르면 아하스는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여호와께 대한 모든 성전 예배를 완전히 폐지하였다. 그러나 왕하 16:10-16에는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 마당에서 계속해서 번제를 드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Curtis). 그러나 역대기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아하스의 번제는 다메섹의 신들에게 드려진 것이요. 여호와께 드려진 번제 라고 할 수 없다(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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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내어 버리사 - 이는 유다가 아하스 치하에서 아람과 이스라엘에 의해 곤욕을 치른 것과 블레셋과 에돔으로부터 당한 수치스러운 패배, 그리고 앗수르의 디그랏 빌레셀에게 당한 군박(窘迫) 등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유다가 범죄로 인하여 겪게 된 고난을 내버려 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에 해당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 - 28:19에서는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고 이와 유사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이 세 단어들은 불같은 여호와의 진노하심과 심판하심으로 당하는 극심한 고통을 나타내는데(Curtis), 이는 선지자들의 말 가운데 많이 나타나는 표현이며, 특히 예레미야가 많이 사용했다. 이에 대해서는 신 28:25; 렘 15:4;19:8;24:9;25:9,18; 29:18;51:37;겔 23:46;미 6:16 등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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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세워 - 본절에는 여호와와 언약을 세우기 위해 히스기야가 성전을 성결케 했다고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히스기야가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언약체결식을 의미하며 이미 주어진 언약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의미는 갖는다(Williamson, Curtis). 15:12;23:16;34:31;왕하23:3 등에 이와 유사한 표현이 나온다.
마음이 내게 있노니 - 이것은 성전을 향한 히스기야의 열정을 표현한 말로서 이는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품었던 다윗의 열정과 유사하다(6:7;대상 22:7;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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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르지 말라 - '게으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틸솰루'는 '움츠리다'라는 뜻의 '솰라'의 나팔(niphal,단순수동) 동사 미완료형으로서, 본구절은 '너희 자신을 움츠리지 말라' 또는 '방심하지 말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방종하는 가운데 참여치 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욥 27:8). 이는 중요한 시점에서 규모없이 아무렇게나 행동하거나, 어리석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을 경계하는 듯하다.
이미 너희를 택하사 - 이것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이미 율법에 명시한 바(신 10:8)와 같이 특별히 구별된 직분자임을 가리킨다(26:18;대상23:13). 따라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위치를 알게 하여,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역할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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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그핫과 므라리와 게르손의 자손들을 열거함은 레위 족속 전체를 언급하는것과 다름없다(대상 6:1,16-19). 그런데 각 자손들 가운데 2명씩 열거한 것은 적어도 그들이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선출된 대표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희가 그 형제를 모아 - 여기서 '형제'란 레위 지파의 지도자 14명과 그의 가계에 속한 모든 레위인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로 볼때, 히스기야의 개혁 운동은 모든 민족들의 호응을 얻는 대역사로 진행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 히스기야의 명령은 모세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명령을 여호와의 명령과 동일하게 여겼음이 분명하며, 온 회중이 이에 동의했을 것이 확실하다. 혹자는 어떤 선지자의 권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한다(Ba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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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 가서 - 전절(前節)에서는 레위인들이 성전의 외부와 건물 전체를 성결케 하였고(15절). 본절에서는 제사장들이 성전 내부, 즉 성소와 지성소를 성결케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곳에는 재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레위인들은 그곳을 성결케 하였다고 기록하고 일에 참여할 수 없었다(Barker,Curtis, Keil).
레위 사람들이 취하여 - 여기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간의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결케 하기를 시작하여...마치고 - 처음 8일 간은 성전 마당에 있는 것들을 깨끗이 제거하여 태웠고, 그리고 또 8일 간은 성전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정결케 하여, 약16일 만에 성결케 하는 일을 마쳤다. 이는 니산 월 14일에 시작되는 유월절과 이틀이 겹치게 된다((Barker). 따라서 유월절 절기를 염두에 두고 성전을 청결케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 여기서 '성결케 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다쉬'는 '구별하다', '성스럽게
지키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여호와의 전을 깨끗케 하는 작업을 통해서 그들은 여호와의 거룩하심올 인정하였으며, 여호와 예배가 외적으로 회복되었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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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서..가로되 - 그들은 왕궁에 있는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서 모든 일의 경과를 자세히 보고하였다.
범죄할 때에 모든 기구 - 이것은 아하스가 훼파했거나, 내다 버린 전(殿)의 기구들울 가리키는데(28:24), 구체적으로 놋제단과 놋바다, 그리고 놋대야 등이다(왕하16:14,17). 본절은 이것들을 다시 수리하고 복구하여 원래 놓아야 할 위치인 여호와의 단, 즉 번제단 앞에 두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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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 여기서 귀인들이란 주로 방백들(24:17;30:1-4)을 가리킨다(Barker). 이렇게 귀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국가적인 일이 있을 때 통례적으로 흔히 있는 일이다(Cur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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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절에는 히스기야가 제사를 위해 드린 속죄 제물을 세부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과 어린 양 일곱 - 이것은 번제를 위한 제물이다(24절). 반면에 숫염소 일곱은 속죄 제물이다(23절). 여기서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하고 구별된 의미를 가진 수이기 때문에,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의 수를 '일곱'으로 하고있다(민 28:11 ff.; 겔 45:23). 한편, 이 두 종류의 제사는 성전을 성결케 하여 재봉헌하는 의미를 지닌다(Curtis).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 일반적으로 번제는 여호와와 화해하기 위한 제물이어서,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따라서 그의 구속함을 의미하며, 이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도 행하여졌다(레 1:3, 4;14:20;16:24). 따라서 히스기야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 제물을 삼은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위한 제사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총체적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새롭게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구약시대의 예배에서 번제는 필수적이었다. 그것은 백성들의 일반적인 죄를 용서해 주어 평안을 주는 기능을 가졌다. 반면에 속죄제는 특정한 범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려졌다(Curtis). 따라서 여기서의 제사는 단순히 성전의 재봉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하스 때에 이스라엘 전체가 범죄한 모든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사죄를 구하는 의미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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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를 잡으매 - 제사장이 번제(燔祭) 의식의 규례를 따라 수소를 잡고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또한 숫양과 어린 양도 그렇게 하였다. 한편, 수소, 또는 수송아지의 희생제사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출 24:5에서 발견되어지고, 출 29:1,3;레4:3;8:2,14 등에서도 발견된다. 그리고 숫양의 희생 제사는 창 22:13에서 최초로 언급되는데,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숫양으로 제사하였다. 숫양의 희생 제사는 출29:15-21과 레 5:15;8:2, 22 등에서도 발견된다. 한편, 어린 양의 희생 제사는 출12:3-7과 출 29:38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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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제물로 드릴 수염소 - 숫염소는 일반적으로 번제로 드려졌다(레 1:10;3:12). 숫염소가 속죄제로 드려진 사실은 본절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며, 그 이후에 스 8:35에서 한번 언급되고 있다.
저희가 그 위에 안수하고 - 왕과 회중은 제사장이 이끌어 온 숫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어 속죄제의 의식올 거행했다. 그런데 본래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의식은 번제가 드려질 때 행하여 졌다(레 1:4). 그러나 여기서는 속죄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언급되었다(Curtis, Williamson). 즉, 아하스로 말미암아 저질러진 여호와께 대한 범죄를 염두에 두고,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구속을 강조함으로써 속죄제를 더욱 의미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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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피로 속죄제를 삼아 단에 드려 - 속죄제의 피는 번제의 피와는 아주다르게 처리된다. 즉, 번제의 피는 단에 뿌리는 반면에(22절), 속죄제의 피는 번제단 뿔에 손가락으로 찍어 바르고 그 단 밑에 쏟아버렸다.(레 4:25, 34).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 여기서는 단순히 남유다만을 가리키지 않고 이스라엘 12지파 모두를 가리킨다(30:5). 이는 '유다를 위하여' 드린 것(21절)과 대조를 보이는데, 히스기야 왕은 속죄 받아야 될 대상을 북왕국까지 확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히스기야의 속죄 행위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시행되었다. 이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전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합법적인 성소였기 때문이다(Keil).
속죄하니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카페르'는 '계속해서 덮어 버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주로 '보상하다'(atone), '화해하다'(reconcile) 등의 뜻으로 쓰였다(Barker). 이 단어는 '역청으로 칠하여 덮다', '구속하다', '화해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카파르'의 피엘형(Piel;강조형 능동) 부정사이다. 이러한 제사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라보게 하는 임시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희생 제물을 통한 구속으로 죄가 없다고 인정되었으며 이러한 속죄 제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바른 관계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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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절은 히스기야가 전통에 따라 레위 사람들을 성전에 두어서 악기를 연주하게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다윗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의 명한 대로 -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찬양케 하고 악기를 연주토록 한 사람은 다윗이었다(8:14).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사역에 선지자 갓과 나단이 관여했다는 언급은 본절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Curtis). 짐작컨대 갓과 나단은 성전 예배와 레위인들을 24반차로 나누는 일에 관여했을 것이다(대상 29:29).
이는...명하셨음이라 - 이 구절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여호와의 손 안에서 그의 선지자들의 손으로 하신 명령 때문이라'(For in the hand of YHWH the command by thehand of His prophets)이다. 여기서 '여호와의 손'과 '그의 선지자의 손'은 설명적동격이라고 볼 수 있는데(Keil), 이것은 선지자들의 중개에 의하여 하나님의 명령이 수행되는 것을 뜻한다(Zockler).
그 선지자들로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손'(, 야드)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어떤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잡는 힘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시 아래 모든 일이 수행되었음을 가리킨다. 한편, '선지자들'이라는 호칭 속에는 다윗이 포함되지 않는다. 물론 8:14에서는 다윗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갓과 나단을 가리킨다. 이처럼 하나님의 손, 권능 아래 있던 선지자들의 명령에 의해서 다윗이 이 일들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본절의 '선지자'라는 호칭은 다윗보다 선지자들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을 그 주체로서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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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악기 - 이는 다윗이 만들어 예배에 사용케 했던 악기들을 가리키는데(대상23:5), 앞절(25절)에서 열거한 악기들이다(대상 15:16 참조).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 - 본래 나팔을 부는 일은 제사장의 임무이다(5:12;대상15:24;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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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르-야웨'는 문자 그대로 '여호와의 노래'((NASB)를 의미하는데, 히스기야 당시에 정경화된 시편들을 가리키는 듯하다(Payne).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 - 문자적으로는 '다윗의 악기에 의하여'인데(Zockler), 이는 악기의 연주가 회중의 노래나 제사장의 나팔 연주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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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은 모든 회중들의 경배가 있으면서 노래와 나팔 연주가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다윗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노래하는 자 중에 다윗의 악기를 연주하는 자가 있었음을 의미한다(23:12; 대상 25:1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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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경배하니라 - 번제와 속죄 제사를 마치자, 왕과 그 함께 있는 자가 다 엎드려 경배하여 예배의 절정을 이룬다. '경배하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쉥타하우'는 단지 육체적인 자세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세를 말한다. 즉, 이는 존경과 경외가 커지고, 충성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심령에 큰 감흥이 있어서 우러난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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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詩) - 이는 27절에서 이미 언급한 '여호와의 시'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즉, 히스기야 시대에 정경화되어 있던 시편들 가운데는 다윗의 시편인 1권과 4권, 그리고 솔로몬의 시편인 2권(시 42-72편), 선견자 아삽의 시(시 50, 73-83편) 등이 포함된다(Payne). 역대기 저자는 본절에서 레위인들이 바로 이러한 시편들로 하나님을 찬양한 사실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Keil). 한편 아삽을 '선견자'(, 호제)라고 불렀는데, 성경에서는 아삽의 자손들이 성전 예배시에 노래하는 직분을 맡은 레위인으로 소개되고 있다(20:14;대상 6:39;15:19;25:1, 2;스 2:41;3:10;느 7:44;11:22;12:46). 이 선견자라는 칭호는 레위인 헤만(대상 25:5)과 여두둔(35:15)에게도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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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히스기야가 일러 가로되 - 히스기야는 제사와 찬양, 그리고 온 회중과 왕의 경배를 마치자, 백성들로 하여금 화목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에 바치도록 권고(勸告)했다.
너희가 이제 몸을 깨끗케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너희가 여호와께로 향한 너희 손을 가득 채웠으니'(you have filled your hand to YHWH, Green)이다. 이 구문은 주로 무엇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봉헌하는(consecrate) 의미로 사용되었다(Barker). 그런데 본문을 앞서 드린 제사와 연관지워 볼 때, 제사에 참여한 모든 회중과 제사장, 레위인이 성결케 되었음을 가리킨다.
제물과 감사 제물 - 여기서 '제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제바힘'은 희생 제물 전체를 가리키는 총체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화목제의 성격을 지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희생 제물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레 7:11-21, 29-36). '감사 제물'(, 토도트)은 이미 받은 어떤 특별한 은혜 때문에 희생제물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성전에서 여호와의 예배가 다시 새롭게 시작된 것을 기뻐하여 드린 제물을 가리킨다. 이 희생 제물은 기름을 떼어서 제단 위에서 태우고,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 부분은 제사장에게 바치며, 나머지 부분은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 먹게 되는데, 유월절 절기 때와 유사하게 치러 진다(Curtis). 본래 번제와 속죄제의 경우,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속죄제의 경우 태우지 않는 부분이 제사장에게 돌려졌으며, 더욱이 번제는 완전히 태워지는 것으로 그 제물은 마음에 원하는 자만이 바칠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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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의 가져 온 번제물의 수효는 - 이렇게 회중들이 스스로 자원하여 가져 온 번제물의 수효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당시에 회중들의 신앙이 얼마나 열정적이었고 순수하였던가를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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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구별하여 드린 - 여기서 언급된 동물들은 감사 제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감사 제물들을 대부분 백성들이 먹고 즐겼을 것이다(Cur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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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 레 1:6에 따르면 번제로 드릴 짐승을 잡고 그 가죽을 벗기며 각(脚)을 뜨는 일은 예배자들이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이 일을 제사장의 임무로 간주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레위기와의 차이에 대하여 보통 두 가지 견해가 지배적인데, 제물을 공적으로 드릴 때는 그 일을 제사장들이 수행하였다고 보는 견해이다. 따라서 이 일은 특징적인 제사장의 직무가 아니기 때문에 레위인들이 도울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Keil,Barker). 탈무드 문학에서는 제사장들이 도살자들로 지목되고 있다(Curtis). 한편 당시 이 일을 맡아 볼 제사장들이 부족했던 것은 번제 제물의 수가 너무 많았거나(32,33절), (2) 아하스 왕 이후로 우상 숭배로 한 제사장들(28:24,25;왕하 16:15,16;18:4)이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직무 정지를 받아 그 수가 감소되었기 때문인듯하다. 그래서 우상 숭배에 가담한 제사장들은 다시 성결함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Zockler).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誠心)이 있었음이라 - 제사장들은 레위인들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그들이 국정(國政) 전반에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기 때문에, 레위인들보다 오히려 덜 종교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에도 소극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제사장들이 비록 직분때문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했어도, 레위인들보다 성심이 부족했던 것은 그들이 아하스의 우상 숭배에 더 많이 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Keil). 또한 혹자는 역대기 저자가 레위인들을 더 선호하고 제사장들을 싫어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Benzinger, Cur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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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절에서는 위에 언급된 일 이외에 다른 많은 일들로 제사장들이 분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제사장들은 단 위에 피를 뿌리고 제물을 태우는 일 외에 감사 제물과 화목 제물, 자원하는 번제물(31절) 등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일까지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Curtis,Keil).
전제(奠祭) - 전제(the drink-offering)에는 포도주가 사용되었데 피를 붓는 것처럼 제단 밑에 부었던 것 같다(민 15:1-16,Curtis).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 이것은 성전을 성결케 하고 재봉헌하는 일 뿐만 아니라 정규적인 성전 예배가 완전히 부활되었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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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갑자기 되었을지라도...기뻐하였더라 - 이것은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을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은혜로 보고 그 일이 속히 이루어진 것을 히스기야와 백성들이 기뻐하였다는 뜻이다(Curtis). 이와같이 사악한 아하스의 배교(背敎)로 인하여 우상을 섬기던 상태에 있다가 여호와께 대한 열심과 충성의 상태로 급속하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하스 치하에서도 히스기야와 같은 신실한 자들을 예배해 두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그들은 기뻐한 것이다. 이처럼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은 인간의 시각에서 볼 때는 갑작스럽게 된 일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오랜 준비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잠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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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은 히스기야가 성전 성결 사업과 재봉헌식을 마친 후에 지킨 유월절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열왕기에는 기록되지 않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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