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역대상(구속사)

역대상19장,미쉬파트와 헤세드

호리홀리 2015. 10. 2. 09:22

본절에서부터 20:3까지는 삼하 10:1-19;11:1;12:26-31과 평형을 이루는 구절이다. 그러나 삼하에서는 이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 밧세바를 범한 다윗 왕의 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으나 본 문맥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이는 다윗 왕의 사적(私的)인 수치는 감추고 될 수 있는 대로 다윗 왕조의 영광만을 나타내려는 본서의 의도에 따라 생략된 것이다.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 - 나하스(Nahash)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치려다가 사울왕에게 패배한 자이다(삼상 11:1;12:12). 한편, 혹자는 '나하스'란 이름이 암몬 자손의 왕이 가졌던 공식적인 이름, 곧 애굽의 바로와 같은 왕의 칭호였다고 주장한다(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나하스'란 본래 ''을 의미하는데 뱀은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므로 당시에 이 이름은 왕에게 명예로운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사울에 의해 패배당하고 죽은 암몬 왕 나하스가 본 대목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약간의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사울이 암몬을 대파한 연대는 B.C. 1050년경(삼상11:1-13)으로 추정되는 반면, 본장에 언급된 사건은 약 60여년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Barker, Wycliffe).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나하스'가 왕의 공식적인 칭호일 가능성이 있다

 

 [대상19:2]

 나하스가 전에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 나하스가 다윗에게 어떤 식으로 은혜를 베풀었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바가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 세 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1) 나하스가 다윗의 즉위식에 특사를 보내어 다윗의 즉위를 축하해 주었을 것임(Lange), (2) 나하스가 다윗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을 것임(The Interpreter's Bible). (3)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 사울 왕에게 패한바 있는 나하스가 다윗의 입장을 동정하여 피할 길을 열어 주었을 것임(Bertheau,Keil). 이 견해들 중 어느 하나를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다윗이 나하스의 은혜를 가슴깊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극한 위기 중에 나하스의 도움을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3)번의 견해를 가장 적당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은혜는 '헤세드'이다. 다윗은 18:14절,공의와 의를 행했고 이제 헤세를 베풀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암몬은 헤세드를 악으로 갚았다.

 

[대상19:3]

 그 신복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 암몬의 방백들은 다윗 왕의 호의를 자기들을 정복하려는 음모로 오해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로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왕 하눈에게 경계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암몬의 방백들이 다윗의 호의에 대해 오해하게 된 것은 당시 확장되어 가던 다윗의 세력에 대한 저들의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Lange, Pulpit Commentary, The Interpreter's Bible). , 그들은 가나안 지역의 최강자인 블레셋이 다윗 왕에게 완전히 정복당하고 모압 역시 다윗 왕에게 끔찍한 형벌을 받은 사실을 듣고서 다윗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다윗 왕의 호의를 오해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본절과 평행 구절인 삼하 10:3에는 본절의 '이 땅''이 성'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 '이 땅'은 암몬의 수도인 랍바(Rabbah) 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본절의 '이 땅'은 암몬(Ammon)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전 지역을 가리킨다. 즉 전자는 히브리어 '아르'를 번역한 것으로 좁게는 '성읍', 넓게는 '주둔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후자는 '에레츠'를 번역한 말로 '확고한 삶의 터전', ''을 가리키는 말이다.이렇게 볼 때 비록 사무엘서와 사용한 단어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는 같은 것이다. , 그들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성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 --> 

 [대상19:4]

그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 고대 근동 지방에서 수염은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었으며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Barker). 따라서 다윗의 특사들이 수염을 깎인 것은 최대의 수치였다(7:20;15:2;50:6;41:5). 한편, 병행 구절인 삼하 10:4에는 '그 수염 절반을 깎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수염의 밑부분을 잘랐다는 의미가 아니고 얼굴의 한쪽 면에 있는 수염을 깎고 다른 쪽은 그대로 놔두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미비하다. 그러나 수염을 깎인 것은 분명히 자신들의 위엄과 관습과 종교에 대한 모욕일 뿐만 아니라 중형(重刑)을 당하는 벌에 해당하는 일이었다(Wycliffe). 또한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잘랐다는 말은 그들의 수치가 드러나도록 잘랐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의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두''발목까지 길게 내리운 옷'을 의미한다. 그런데 고대 히브리인들은 속에 내의를 입지 아니했으므로 그들의 옷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잘랐다는 것은 벌거벗겨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잔인한 행위였다. 그러니 다윗의 조문사들이 당한 수치는 지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 --> 

 [대상19:5]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 여리고(Jericho)는 요단계곡에 위치한 성읍으로서 암몬(Ammon)의 랍바(Rabbah) 성에서 예루살렘(Jerusalem)으로 들어 오는 길목에 있었다. , 이 지역은 예루살렘 동북쪽 28km 지점에 위치해 있었는데 출애굽시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넌 후 첫 번째로 함락시킨 비옥한 도시이다(5:8-10). 한편 이곳은 종려나무 산지로 유명해 일명 '종려나무 성읍'(the city ofpalms)으로도 불리웠다(1:16). 그런데 다윗은 그의 특사들을 수염이 자랄 때까지이 같은 지역에 머물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지위와 명예를 보존해 주었던 것이다.

) --> 

 [대상19:6]

 밉게 한 줄 안지라 - 여기서 '밉게 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아쉬'는 본래 '고약한 냄새(악취)가 나게 하다'는 뜻의 기본 어근으로 상징적, 혹은 도덕적으로는 '무례하다', '미움을 받다'란 의미이다. 이 용어는 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나일강물(7:18, 21), 개구리 재앙으로 더럽혀진 애굽의 땅, 벌레가 생겨 못먹게 된 만나(16:20) 등에 적용되었던 용어로 타인에게 악취를 풍기듯 매우 혐오스러운 행동을 한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암몬 자손은 다윗의 특사들에게 행한 자신들의 행위가 다윗에게 큰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던 것이다.

 

 은 일천 달란트 - 이는 암몬 왕 하눈(Hanun)이 용병을 고용하기 위해 일시에 지불한 돈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게로 따지면 약 37(ton)에 해당하며(Payne),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드라크마(Drachma)로 환산해서 돈의 가치로 따지면 6백만 드라크마(1달란트는 6,000 드라크마임)에 해당되는 것이었다(삼하 10:6). 즉 이것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을 60,000원으로 계산할 때 900억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돈이었으나 아람 왕 하눈은 다윗의 커진 세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경제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람 나하라임 - 병행 구절인 삼하 10:6에는 이에 해당하는 나라가 '벧르홉 아람'(Syrians of Beth-rehob)''(Ish-tob)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많은 경우처럼 필사자의 오기(誤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아람 나하라임(대부분의 영역 성경은 Mesopotamia로 표기되어 있음)은 문자적으로 '두 강의 아람'이라는 뜻(Wycliffe)으로 삼하 10:6에 기록된 두 나라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명칭인 것이다(Curtis, Payne). 한편, 벧르홉 아람은 단 지파의 성읍인 라이스(Laish) 북쪽에(13:21;18:28), 돕은 이스라엘의 길르앗 지경 내에 있었던 아람 족속의 도시 국가였다(11:2, 5). 사실 돕은 길르앗 지경 내에 있었지만 암몬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그들을 지원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사무엘서와는 달리 본절에는''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람마아가 - 마아가(Maacah)는 다메섹 근처에 있는 아람 소국(小國)이다. 이 소국은 바산의 북동쪽(3:4), 헬몬 산 남서쪽, 곧 다메섹과 갈릴리 사이의 소바 남서쪽(Wycliffe)에 위치해 있었다.

? 소바 - 본절에 언급된 소바(Zobah or Zoba)'주거'라는 의미로 사울과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을 침공한 소국을 가리킨다(18:3, 5;삼상 14:47;삼하 8:3). 이 소국은 특히 병거와 마병으로 유명한 데 '아람소바'로도 불리웠다(60).  18:3 주석을 참조하라.

) --> 

 [대상19:7]

 

 

 마아가 왕과 그 백성을 삯 내었더니 - 삼하 10:6에 의하면 마아가 왕의 군사들은 일천 명이 동원되었다.

 

 메드바 앞에 진치매 - 메드바(Medeba)는 르우벤 지파의 성읍이 있던 곳으로 헤스본 남쪽 약 6km 지점에 위치했다. 그리고 이곳은 암몬의 랍바(Rabbah) 성에서 북서쪽으로 약 6km 지점에 위치했던 요단 동편의 고원 지대였다(21:30;13:9, 16;15:2). 그런데 이 메드바가 평행 구절인 삼하 10:6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 모든 성읍으로 좇아 모여와서 싸우려 한지라 - 다윗의 세력을 두려워한 암몬 자손들이 아람의 연합군이 메드바에 진쳤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내어 모인 것이다. 이들은 아람의 연합군이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 --> 

 [대상19:8]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 - 이는 요압의 정예 부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총병력을 의미하는 말로는 '온 이스라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17;삼하 10:17). 참으로 다윗 왕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연합군을 물리치기 위해 요압의 소수 정예 부대만을 파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아마도 여러 국적의 사람들로 구성된 연합군이 숫자는 많을지라도 결속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다윗왕이 간파했기 때문에 취한 조치였을 것이다. 결국 다윗 왕의 이러한 조치는 현명한 조치였던 것으로 판명된다. 왜냐하면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대승했기 때문이다(14,15). 한편, 혹자는 '용사''온 무리' 사이에 '와우'를 첨가하여 '용사와 온무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Thenius, O. Zockler). 그러나 본절을 이렇게 해석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요압의 군대는 용사들과 백성들로 구성된 무리가 아니라 소수 정예 부대이기 때문이다.

) --> 

 [대상19:9]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앞에...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 본절은 암몬과 아람 연합군이 남북으로 거리를 두고 진을 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요압의 군대를 협공(挾攻)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암몬은 자신들의 성문, 즉 랍비의 성문 앞에 진을 쳤던 것이다(Wycliffe). 한편, 암몬의 군사들이 자신의 성 앞에 진치고 앞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돈으로 용병을 고용했기 때문에 그들이 대신 싸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 --> 

 [대상19:10]

 이스라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 이 구절은 요압이 자신의 정예 부대를 둘로 나누어 협공을 노리는 적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Barker). , 요압은 그의 적들의 진영이 둘로 나누어져 있음을 보고 그들의 양 진영을 동시에 공격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저들의 협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계책이었다. 한편, 본절의 '뺀 자'라는 말은 히브리어 '바하르'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시험하다', '선택하다', '지정하다'라는 의미로, 골라 뽑은 모압의 군대를 둘로 나눈 사실을 입증해 준다.

) --> 

 [대상19:11]

 그 남은 무리는...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치게 하고 - 요압은 일군(一軍)을 아우 아비새에게 맡기고 암몬 자손에 대하여 진치게 하였다. 아람 연합군과 암몬 군대를 비교해 볼 때 아람 연합군이 훨씬 강한 군대였기 때문에 먼저 아람 연합군을 물리쳐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암몬 군을 공격하다가 후미(後尾)에서 아람 연합군의 공격을 받는 날이면 요압의 군대는 빠져나갈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압은 자신이 일군을 거느리고 아람 연합군을 선제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뒤에서 협공을 노리는 암몬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아비새로 하여금 그 앞에 진치도록 하였던 것이다.

) --> 

 [대상19:13]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 요압은 여기서 이스라엘의 성읍들을 '하나님의 성읍들'(the cities of our God)이라고 말하면서 군사들에게 담대히 하자고 권하고 있다. 이러한 요압의 권면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모든 기업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확신한 그의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성읍을 위하여 싸우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지키는 명분있는 싸움이므로 이 전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요압은 권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담대하게 된 요압의 군사들은 명분없는 싸움에 임하고 있는 아람의 용병들보다 사기 면에서 훨씬 앞서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 하나님의 성읍이 죄악된 이방인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지켜지는 것이 하나님의 선()이다. 따라서 이러한 요압의 말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승리를 확신하는 말이다(삼하 10:12). 한편, 본문에 언급된 '선히 여기시는 대로'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하토브 베에나우'이다. 그런데 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주의 눈에 선한 것을'이라는 말이다. 이는 주님의 눈에 선해 보이는 것이 곧 완전히 선한 것이라는 의미로 여호와 중심의 사상이 강력히 내포된 구절이다. 이와같이 참으로 하나님만이 선악의 유일한 기준인 것이다(25:8;33:5;1:7;19:17;2:4).

) --> 

 [대상19:14]

 저희가 그 앞에서 도망하고 - 아람 연합군의 패주는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1) 처음부터 명분없는 싸움에 임하고 있었으며(Grotius, Patrick). (2) 여러 나라의 군대가 함께 섞여 있었기 때문에 서로 선봉에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3) 그러나 이에 반해 요압의 정예 부대는 사기 충천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읍을 위한 명분과 목적이 분명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무리 많은 숫자일지라도 단합되지 아니한 군대는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선한 싸움을 싸우는 자는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후 10:4;살전 5:8).

) --> 

 [대상19:15]

 암몬 사람은...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으로 들어간지라 - 암몬 자손은 처음부터 자기네들이 다윗과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아람의 용병들을 막대한 돈을 주고 고용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아람 군대는 병거와 마병을 갖춘 부대(6, 7;삼하 10:18)로서 강력한 힘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의지가 되었던 아람의 용병들이 패주하자 암몬의 군대들은 전보다 더욱 겁에 질려 성안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 다윗 왕의 특사에게 수치스런 모욕을 보인 암몬 자손들을 공격하지 아니하고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회군한 것은 약간 이상하게 보이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1) 랍바(Rabbah) 성은 소수의 병력으로 정복하기 어려운 견고한 요새였으며(삼하 10:3). (2) 이때에 전쟁하기에 합당하지않은 겨울이나 우기(雨期)가 닥쳐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Payne, The Interpreter'sBible, Keil). 그런데 후자의 견해가 20:1'왕들의 출전할 때'라는 말에 비추어 볼때 매우 신빙성이 있다(Wycliffe).

) --> 

 [대상19:16]

 아람 사람이...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 여기서 강 건너편은 유프라테스(Euphrates) 강 건너편의 동쪽(Wycliffe), 혹은 북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들을 부른 것은 언젠가는 또다시 침공해 올 가능성이 있는 다윗의 세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아람 족속에게 특사를 파견한 것이다. 그러나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들을 소집한 것은 암몬의 특사들이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병행 구절인 삼하 10:16에 의하면, 그들을 소집한 것은 소바 왕 하닷에셀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닷에셀은 지난번 메드바(Medeba) 전투에서 실추된(삼하8:3, 4)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소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하닷에셀에게 조공을 바치는 소바에 속한 속국의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소집하기가 비교적 쉬웠을 것이다(Lange). 한편, 여기서 소바 왕 하닷에셀은 당시 유프라테스 강 유역, 곧 메소포타미아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대상19:17]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온 이스라엘을 모았다는 말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국민병(國民兵)을 소집하였다는 의미이다. , 이 말은 다윗이 전과 같이 요압의 정예부대만으로 대처하지 않고(8) 국민병을 전국에서 소집하였던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닷에셀의 군대가 전과 같이 정신적으로 해이해져 있지 않고 반대로 자신들의 국가의 명예를 위해 정신적으로 무장된 강한 군대였기에 그에 대해서 적절히 대처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저희를 향하여 진을 치니라 - 병행 구절인 삼하 10:16에 의하면, 아람 군대가 진을 친 곳은 '헬람'(Helam)이라는 곳이었다(Barker, O. Zockler). 그런데 이 헬람은 지난번 요압(Joab)이 아람 연합군을 물리친 메드바(Medeb) 들에서 북쪽으로 약 60km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갈릴리 바다로부터 동쪽으로 약 48km 떨어진 오늘날의 알마(Alma)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소바의 북쪽 국경에 위치한 오론테스(Orontes) 골짜기의 하맛 근처(18:3)에서 대치했던 것이다.

) --> 

[대상19:18]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승의 군사와 보병 사만을 죽이고 - 본문에는 병거 칠천 승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병행 구절인 삼하 10:18에는 칠백 승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칠백 승은 너무 적은 숫자로 여겨지며 칠천 승에 대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인 것으로 보여진다(Payne, Wenham, Wycliffe). 혹자는 본절의 칠천 승은 다윗 왕의 승리를 확대해 보이기 위해 저자가 의도적으로 더한 숫자라고 주장하나(Curtis) 이는 지나친 억측이다. 한편, 보병 사만은 병행 구절에서 마병 사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혹자는 보병 사만 역시 이만이 사만으로 와전된 것으로 추측한다(Wycliffe). 왜냐하면 이 전쟁에서 최초의 군사 수가 삼만 이천으로 기록(7)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박이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합한 것(16)을 고려할 때 이는 잘못된 가정인 것 같다.

) --> 

 [대상19:19]

 하닷에셀의 신복 - 이는 하닷에셀의 신하들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그에게 조공을 바치던 '하닷에셀의 속국들'을 의미한다(Lange). 그래서 병행 구절인 삼하 10:19에는'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혹자는 이 신복들 중에는 속국의 왕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Wycliffe).

 

 다윗으로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 , 이 말은 아람의 왕들이 다윗의 속국이 되고 그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는 말로서, 다윗 왕의 승리가 완전한 승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 --> 

 

'구약 > 역대상(구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상21장,성전건축  (0) 2015.10.07
역대상20장,다윗의 승리  (0) 2015.10.05
역대상18장,승리의 비결  (0) 2015.10.01
역대상17장,다윗언약  (0) 2015.09.30
역대상16장,언약체결식  (0) 201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