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사무엘하(구속사)

사무엘하7장,다윗언약

호리홀리 2015. 9. 17. 11:36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거하게 하신 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유명한 다윗 언약(4-17)을 주신 때가 다윗 통치 말기임을 보여 준다. 즉 본절에서 가리키는 때는 (1)다윗이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했을 때인데 여기에서 사방의 모든 대적은 블레셋(5:17-25;8:1) 뿐만 아니라 여러 이방 족속(8:2-14)을 의미하므로 그때는 분명히 다윗의 말기이다. (2)또한 그때는 다윗이 백향목으로 지은 예루살렘 궁에 거했을때(2)인데 이때는 두로의 히람 왕과 교류가 있었던 때(5:11)이므로 이러한 사실 역시 다윗의 통치 말기임을 입증해 준다. 5:11 주석 참조. 따라서 본장은 사실상 8장 이하의 내용보다 더 나중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본서가 연대기적으로(chronologically) 기록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일관된 흐름을 좇아 기록되었음을 보여 준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그러나 위의 주장은 7장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7장의 다윗언약은 철저하게 미래형으로 되어있기때문이다.솔로몬이 태어나기전,(12절)과 부딪힌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다윗언약을 체결한 시기보다 그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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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2]

 선지자 나단 - 나단(Nathan) 선지자는 다윗과 솔로몬 양대에 걸쳐 크게 활동한 선지자이다. 그는 본장의 다윗 언약 뿐만 아니라 밧세바와 다윗의 간음 사건, 솔로몬의 등극(登極) 등에 깊이 관여하였다(12:1-15;왕상 1:8-30, 32, 39, 45). 또한 그는 성전예배에 있어서 음악을 장려하였고(대하 29:25),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대상 29:29;대하 9:29).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 예루살렘 정복(5:6-10) 및 주위 대적들을 모두 제압한 때에 다윗은 두로 왕 히람으로부터 뜻아니한 호의를 입었다. 그것은 곧 히람이 다윗을 위해 예루살렘에 백향목 궁을 지어 준 것이었다. 이후 다윗은 그곳에서 거처하게 되었는데 본절은 바로 이 일을 의미한다(5:11).

? 휘장 가운데 있도다 - 여기에서 휘장(curtains)은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놓은 10폭의 앙장(仰帳)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으로 성막(tabernacle) 전체를 덮었다(26:1;36:8). 다윗은 이처럼 천으로 덮여 있는 성막속에 여호와외 궤가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이다(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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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3]

본절의 나단 선지자의 말 중, 전반부는 옳았지만 후반부는 그렇지 않았다. 즉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신다는 말은 사실이었지만(9;5:10;삼상 16:18;18:12) 다윗이 행하려 한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5, 6, 13).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 나단의 이와 같은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한말이 아니었고 단지 자기 생각에 옳다고 느낀 바를 피력한 것에 불과하였다(Keil,Lange). , 그는 다윗의 성전 건축에 대한 소원이 곧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줄로 알고 즉흥적으로 대답했던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견지에서 볼 때 이러한 나단의 생각이나 말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앞장서거나 그에 협력하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본분이기 때문이다(고전 10:31). 그러나 이번 경우에만은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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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4]

 그 밤에 - 나단이 다윗의 의견에 적극 동조한 바로 그날(3) 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의 그릇된 충언(忠言)을 즉각 시정해 주시기 위하여 이처럼 신속히 나단에게 계시하셨던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479).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 아마도 나단은 꿈(12:6;왕상 3:5)이나 이상(12:6;2:19;7:2, 13) 또는 직접적인 계시(26:24;22:20;6:25-27;삼상 3:1-21)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17절에서는 이것을 '묵시'(vision)로 칭하고 있다.

 

[삼하7: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과 관련된 당신의 뜻을 직접 다윗에게 계시하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일단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전달토록 간접적인 방법을 취하고 계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하나님의 뜻과 나단 선지자의 조언(3) 간의 불일치로 인해 다윗이 당혹치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2)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代言)하는 사명을 지닌 선지자들의 고유직분을 존중하셨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네가...건축하겠느냐 - 다윗의 성전 건축 의사를 분명히 반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7:4에서는 '너는...건축하지 말라'고 더욱 확실한 부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 이유를 대상 22:8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것은 곧 다윗이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할 자로서의 적합한 이미지는 아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 II, p. 345).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본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성전을 건축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겠다는 다윗의 진실한 마음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 이는 다만 아직 그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씀일 뿐이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에 이르러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것만 보더라도 알 수있다(13;대상 17:12;대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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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6]

7절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다윗의 의사를 반대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들려주고 있는구절이다. 그 이유는 곧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한번도 고정된 곳에 계시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며 이동용(移動用) 건축물에 계셔왔다는 사실이다.

 

 내가...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과거 430년 동안 종노릇하였던 애굽 땅에서 건져 내셨던 역사적인 날을 가리킨다. 정통주의 학자들에 따르면 그날은 B.C. 1446년경 아빕월 15일이었다고 한다(12:41).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이트'(1)어떤 재료로 만들어진영구한 건축물(16:21;19:2;33:17), (2)예배 장소, 또는 성전(23:19;왕상 6:5),(3)사람이 거하여 안식하는 장소(17:13;12:5)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영구히 거하시며 안식하시며 경배 받으실 만한 견고한 건축물을 의미한다.

 

 장막과 회막 - 장막(tent)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단순히 이동할 수 있는 임시 거주지', 곧 천막을 의미한다(삼상 17:54;대하 14:15). 반면 이와달리 회막(tabernacl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슈칸''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놓은 장막'을 의미한다. '미슈칸'의 동사형 '솨칸'은 본래 '자리잡다', '앉다', '휴식을 취하다', '살다'란 뜻이다. 이렇게 볼 때'미슈칸'의 의미는 하나님의 가견적 보좌, 곧 법궤가 자리잡고 있는 장막을 의미하는것임을 알 수 있다(25:9;1:50;46:5;84:2). 그러나 이와 같은 두 용어의 차이점은 본절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본절에서 중요한 것은 두 용어가 모두 이동용 거처를 가리킨다는 사실이다. ,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고정된 집에 거하시지 않고 이동용 천막에 거해 오셨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이와 같이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귀와 영광으로 가득 차신 여호와 하나님(대상 16:27;39:7)께서 화려한 장소에 계시지 않고 비천한 장소에서 거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사랑하사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해 인간의 수준으로 낮아지신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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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7]

 무릇...더불어 행하는 - 여기에서 '행한다'(, 할라크)는 말은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모든 행사를 의미한다(Lange).

 먹이라고 - 여기서 '먹인다'(, 라아)는 말은 본래 목자가 가축을 돌보는것을 의미한다(37:13;14:33;삼상 16:11). 따라서 이 말은 주권자가 백성을 다스리거나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을 인도하는 사실을 묘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삼하 5:2;23:1;10:2). 여기서도 이 말은 백성을 '통치하다', '지도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Keil).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 학자들은 본절의 '지파'라는 말을 놓고서 서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즉 그들은 이 말에 대하여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지파를 사사로 보는 견해이다(Bertheau, Ewald, Thenius). 이러한 사람들의 주장은 본절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17:6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파'(, 쉬브테)라는 말이 대상 17:6에서는 '사사'(,쉬프테)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본절의 '지파''사사'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한다. (2) '지파'란 말을 그대로 인정하는 견해이다(Keil, Lange, Hengstenbery, Maurer). 이 견해에 따르면, 여기서 '어느 지파'란 다윗 이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단과같은 지파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두 견해 중 우리는 어느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두 견해를 다 염두에 두고 본절을 대하는 것이 보다 무난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사(士師)들 대부분이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단과 같은 지파 출신이기 때문이다.

 

 백향목 집 - '백향목'(cedar)은 그 당시 최고급 건축 자재이며 궁궐과 성전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5:11 주석 참조. 그리고 ''(, 바이트)은 이미 6절에서 나온 말로 영구히 거할 수 있는 견고한 구조물을 의미한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이는 곧 궁궐이나 성전 따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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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8]

본절에서부터 17절에 이르기까지에는 이제 그 유명한 '다윗 언약'이 기록되어 있다. 즉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가상(嘉賞)한 마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윗왕조에 대한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이다. 특히 이는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임하실 메시야(Messiah)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는바(13-16) 더욱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8-17절 강해, '다윗 언약 속에 나타난 메시야 사상' 참조.

 

 내가...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는 아비의 양을 치던 자였음을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삼상 16:11).

 

 주권자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일꾼을 의미한다. 6:21 주석 참조. 따라서 이 말에 포함되어 있는 강한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selection)이다. 즉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양치는 목자에서 일약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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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9]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하실 때에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바 있다(12:2). 그런데 이 언약은 개인적으로 다윗의 존재와 인격 그리고 그에게 속한 후손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전존재''인격'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25:19-26 강해, '이름짓기' 참조. 그러나 이 언약은 단지 다윗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언약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미 이스라엘의 '주권자'로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5:1-5). 따라서 이 언약은 다윗의 통치하에 있는 이스라엘이 열방들로부터 우러름을 받게 될 것이라는 거국적(擧國的)인 축복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은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상당한 성취를 보았다(8;대상 20;대하 9). 그러나 그 궁극적인 성취는 다윗의 먼 후손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이다(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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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10]

 저희를 심고 - 여기에서 '심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는 본래 '나무를 심는다'는 의미이다(2:8;19:23;5:2). 그런데 이 말이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해서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정착된 거주지를 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24:6;9:15). 따라서 이 말은 과거 사사 시대에 주변국가의 잦은 침략에 시달려 이리저리 쫓겨 다니던 신세에서 벗어나(6:2)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완전히 한곳에 정착하여 사는 자들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시대에 그들은 이 같은 평화와 안녕을 구가(謳歌)하였다.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 여기서 '옮기지'란 말은 그릇된 번역이다. 왜냐하면 이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즈''옮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두려움 으로) '떨다'(2:25;4:4;32:11)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바른 해석은 '다시는 두려움으로 떨지 않게 하며'이다(Lange, Keil). 즉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이제 신정 국가 이스라엘은 과거 사사 시대의 혼란했던 무정부(無政府)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평화스러운 나라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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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11]

 평안케 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사사시대의 일시적이고 국지적(局地的)인 평화와는 달리 다윗 시대에는 보다 영속적이고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약속해 주신다. 그런데 이것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질 진정한 평화(죄와 사망에서의 해방)를 예표하는 것이기도 하다(2:14;5:1;1:20).

 

 - 여기에 나오는 집은 앞에서 이미 언급된 집(5, 7)과는 의미상 큰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된 집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짓고자 했던 성전을 의미하나 여기에서의 집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지어 주실 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지으시겠다고 약속하신 집은 단순히 다윗이 거할 웅장한 건축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미 웅장한 백향목성(1, 2;5:11)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세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집은 외형상의 집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집으로 이해해야 할것이다. (1)성경에서 ''이란 말은 '가족', 곧 부모나 자식이나 친족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용례가 있다(7:1;35:2;2:1;왕상 11:38;12:16;13:2). 따라서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은 무엇보다도 그의 온 가정을 복되게 세우시겠다는 내용의 말씀이다. (2)이 집은 또한 '나라'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근거로 16절에서 '네 집''네 나라'가 서로 병행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집이 곧 다윗의 나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시겠다는 언약의 말씀은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시겠다는 의미이다. (3) 집이란 용어 속에는 '다윗의 후손들'이란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12, 16, 19, 26, 29). 왜냐하면 다윗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곧 그의 후손들을 통하여 가능하기 때문이다(Ka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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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12]

 네 수한이 차서...잘 때에 -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때는 나이 30세이다. 이후그는 40년간 백성들을 통치한 후 서거(逝去)하였는바(5:4, 5;왕상 2:10, 11) 그때 그의 나이 70세였음을 알 수 있다.

 

 네 몸에서 날 자식 - 여기에서 '자식'(seed)이란 말을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본래 다윗 언약의 내용은 다윗 당대와 그 후손, 그리고 영원한 세계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8-17절 문단 강해 참조. 따라서 '자식'의 개념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해석해야 한다. (1)여기에서 '자식'은 집합적(collective)인 의미를 가진다. , 이 말은 다윗의 사후(死後)그의 뒤를 이을 모든 왕들을 집합적(集合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이 자식(seed)이 다윗왕조를 대대로 이어나가면서 견고케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자식'은 곧 다윗의 왕손(王孫)들 모두를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2)'자식'은 한 자손, 곧 솔로몬을 지칭한다. 왜냐하면 첫째, 이 말은 단수(singular number)이며, 둘째, 본몬은 이 자식에 의해 성전이 건축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13).(3)또한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왜냐하면 본절과 16절에서 이 '자식'에 의해 세워질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며 견고한 나라라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나라를 최종적으로 세우신 이는 오직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1:31-33;2:29-31;13:2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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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13]

 집을 건축할 것이요 - 여기에서의 집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지어 줄 상징적인 집(11)을 가리키지 않는다. 대신 이는 다윗이 그토록 건축하기를 희망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훗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에 의해 비로소 건축된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대하 3-5). 하지만 이상과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이 집은 단순히 건축물(建築物)로서의 성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이 집은 외형적인 집과 아울러 본질적인 집, 상징적인 집까지도 함께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집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지은 집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여호와의이름은 여호와의 존재, 그의 영광 등을 의미한다. 9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 집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거하시면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곳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집은 (1)솔로몬에 의해 지어질 성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2)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영원히 드러내 주는 예수 그리스도(1:14;2:19)와 그의 교회(14:23;고전 6:19;2:21;3:6), 그의 영원한 나라(21:1-3)까지도 의미하는 것이다(K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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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14]

 그 아비가 되고...내 아들이 되리니 - 훗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던 말씀이다(1:5). 이로 보더라도 다윗 언약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1:1)에 대한 약속을 담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윗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까지는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을 뿐이다(Matthew Henry, Wycliffe). 아무튼 다윗 언약의 극치인 본절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1)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다윗 왕국의 기원(起原)을 말해 준다. ,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것 같이 다윗 왕국은 하나님에 의해 탄생한 나라라는 사실을 증거해 준다(Lange, Kaiser). 한편 이러한 언약의 내용은 모세 언약의 장자(firstborn)개념과 일치한다.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새로운 나라, 곧 제사장 나라, 거룩한 나라로 세워 온 민족 가운데 뛰어난 장자가 되게 하신 것(4:22;19:4-6)처럼 하나님께서는 새로이 다윗 왕국을 견고한 나라로 세우신 것이다. (2)또한 여기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사랑으로 연합된 관계라는 점에 주목해야 된다(Keil). 따라서 하나님은 비록 다윗 왕국이 범죄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사울의 왕국처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15;삼상 13:8-14;15:10-21) 징계로써 인도하시는 것이다(12:7-15).(3)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상속하고 상속받는 관계란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아버지인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기업을 물려받은 다윗 왕국은 영원토록 멸망할 수 없는 것이다(16).

 

 막대기와...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 아비가 아들에게 체벌(體罰)을 가하면서까지 훈육하듯 하나님께서도 당신 백성들을 징계하면서까지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뜻하는 문학적 표현이다(89:32;3:12;12:6, 7).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의 범과(犯過)한 자손들에게 가하셨던 징계의 손길은 열왕기 군데군데에 언급되어 있다(왕상11:14-40;왕하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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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15,16]

메시야 왕국을 예표하고 있는 다윗 왕국은 사울 왕조처럼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몰락하는 불완전한 나라(15)가 아니며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존속되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는 구절이다.

 

 네 집과 네 나라가...영원히 견고하리라 - 이 같은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국은 다윗과 솔로몬 사후(死後) 남북 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왕상 12) 급기야는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으로 말미암아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하기에 이르렀다(왕하 25). 따라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원한 나라는 보다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나라를 의미함을 알 수 있는데 곧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메시야 왕국이다(12:28).

 

 [삼하7:17]

 묵시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존'은 밤에 무의식 상태로 꾸는 꿈(*, 할롬)과는 다른 것을 가리킨다. 즉 구약 성경의 용례를 살펴보면,이 말은 대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에 사용되었다. (1)깨어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주시하는 계시적(啓示的) 사건을 의미한다(1:17;8:1, 2, 13;삼상 3:1). 따라서 이 용어는 선지자가 기도 중에 보는 특별한 계시를 가리키기도 한다(9:21). (2)하나님의 말씀, 또는 교훈을 의미한다(89:19;29:18;2:2;1:1). 이상에 의거할 때 나단이 받은 이 묵시는 그가 밤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주시하여 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Keil, Lange). 

 

 [삼하7:18]

 여호와 앞에 - 이 말은 하나님의 궤를 안치해 둔 장막(6:17) 앞을 가리킨다. 아마도 회막(tabernacle)으로 친다면 그 앞의 바깥뜰(27:9-19)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Pulpit Commentary).

 

 앉아서 -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반드시 앉아서 기도했음을 중명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1)유대인들은 좀처럼 앉아서 기도하지 않았으며(왕상 8:22;8:4;9:4), (2)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브'도 반드시 '앉아 있다'는 뜻이 아니라 '머물러 있다', '지체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기도 '자세'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 다윗이 시간을 내어 기도한 '행위' 자체를 묘사하고 있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Lange, Wycliffe).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 다윗은 그의 기도 첫 마디에서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비천한 자신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대조적인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놀라운 약속이 자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은혜와 축복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는 마음 자세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의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로 시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32:10;8:5;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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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19]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 여기서 '이것'이란 곧 이어 나오는 '영구히 이를 일'과 대조되는 것으로 다윗과 그 가정이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의미한다. ,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베푸신 현재의 복도 감당하기 어려운 데 거기에다가 미래에 대한 더 큰 보장까지 해주신 데 대해 크게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일 - 이에 해당하는 '레메라호크''미래에 관한 일'이란 뜻이다. 원래 이 말의 기본 뜻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조트 토라트 하아담'은 직역하면, '이는 인간의 율례입니다'이다. 그러나 이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해석이 분분하다. (1)'토라'를 율례로 보지 않고 '교훈'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은 '주 여호와여, 인간이 그 이웃에게 교훈을 하듯이 당신의 원대한 뜻을 깨닫게 하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토라'가 교훈이란 의미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옳지 않다. (2) '토라'를 인간의 도리, 또는 관습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은 '주 여호와여 당신은 사람의 도리, 즉 사람이 자기 후손의 장래를 축복하듯 나와 내 가문에 축복을 베푸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Clericus). (3) 본절을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전 인류를 지배할 명령입니다'라고 해석하는 견해이다(Pulpit Commentary, Vulgate). 그러나 이는 전체 문맥과는 약간 동떨어진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4)'토라'를 구약 성경에서 대개 그러하듯 하나님의 율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그럴 경우 여기서의 '토라''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19:18;6:8)는 인간 상호간의 규례로 보아야 한다(Keil, Hengstenberg). 따라서 이 견해에 의하면, 본절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규례에 따라 한 인간이 이웃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줌과 같이 주 여호와께서 나에게 극진한 사랑과 친절을 베푸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Lange). 이상에서 본절의 전후 문맥과 비교적 일치되는 견해는 (2)(4)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평행 구절인 대상 17:17에 의거할 때 보다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견해는 (4)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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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20]

 종을 아시오니...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 다윗은 그 마음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벅찬 감사를 도저히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말로 나타내기 보다는 자신의 속마음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신 속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139:1-4;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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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21]

 이 모든 큰 일 - 여기에서 '이 모든 큰 일'이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4-17)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계시를 '큰 일'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계시가 (1)시공간(視空間)을 초월한 하나님의 우주적(宇宙的)인 계획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며 (2)또한 다윗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베푸신 큰 은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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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7:22]

주제1: [다윗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 주 외에는 참 신이 없음이니이다 - 과거 모세가 토로(吐露)하였던 것과 같은 신앙 고백이다(15:11). 물론 다윗은 그의 조상들로부터 참신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고 들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는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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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삼하7:23]

주제1: [다윗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분명한 역사적 근거를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여기에서 다윗은 과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세우셨는가를 회상하며 그의 은혜를 묵상하고 있는 것이다.

? 땅의 어느 한 나라가...같으리이까 -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점은 이스라엘의 위대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이다. , 다윗은 여기에서 그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누리지 못하였음을 밝힘으로써 옛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을 찬송하고 있는 것이다.

? 주의 명성을 내시며 -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시며(12) 대적들의 위협에서부터 보호해 주시는 것과 같은 구속적(拘贖的)인 사역을 통하여 당신이 참된 하나님이심을 열방 중에 스스로 증거하신 것을 의미한다(4:3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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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삼하7:24]

주제1: [다윗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 주의 백성을 삼으셨사오니...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 이것은 과거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은 시내 산 언약의 주제이다(19:5;7:6; 14:2; 26:18). 그러나 우리는 본절이 단순히 시내 산 언약에 대한 다윗의 회상(回想)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절에 나타난 언약의 주제는 시내 산 언약의 주제보다 더 발전되고 성취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내 산 언약 체결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겨우 구원받은 백성에 불과했으나 이제 다윗 언약이 수여된 시점에서는 모든 대적들을 물리친통일 국가이며 공의와 사랑으로 통치되는 성숙된 신정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그 뿐 아니라 시내 산 언약에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할 경우 반드시 형벌을 받으리라고 명시되어있으나 다윗 언약에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할지라도 하나님께선 사랑의 징계로써 인도하시겠다고 하는(14, 15) 단계로 발전해 있다. 따라서 다윗의 이와 같은 고백은 단순히 시내 산 언약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그 언약을 다윗 통치하에서 더욱 발전시키고 구체화 시킨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감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19:1-6 강해, '성경의 주요 언약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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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삼하7:25]

주제1: [다윗 언약]

주제2: [다윗의 감사 기도]

하나님을 찬양하던 가운데 그의 은혜를 확신한 다윗이 담대함을 얻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장면이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 본절은 다윗의 간절한 소원(26-29)이 사적(私的)인 생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묵시를 통해 보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4-17)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 준다. ,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시고자 했던 그의 생각(1-3)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그의 소원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이제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깊고 오묘하며 원대하시다는 것(55:8, 9)을 깨달은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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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26]

 주의 이름을 높여 - 다윗이 간구한 모든 소원의 최종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6:9, 13). 이는 곧 우리들에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신 사도 바울의 교훈을 생각나게 해준다. 만군의 여호와 - 5:10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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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하7:27]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 여기에서 '알게 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갈리타 에트오젠'을 직역하면, '귀를 열어 놓았다'는 뜻이다. 혹자는 이 말에 대해 설명하기를, "귀 밑까지 내려 쓴 모자를 벗거나 덮힌 머리를 젖혀 '귀를 열어 놓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The Interpreter's Bible). , 이 말은 하나님의 원대한 뜻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인생에게 그 뜻을 밝히 알려 주기 위해 굳게 닫힌 비밀의 문을 열고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 활동(啓示活動)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철저히 깨달을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삼하7:28,29]

하나님의 말씀에 다윗이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 내용이다.

 

 허락하셨사오니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다베르'는 기본형이'다바르'로 주어의 능동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강의형(Piel) 동사이다. 따라서 이 말이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이 언약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다윗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의 선포를 의미하는 강의형 동사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