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디모데후서

디모데후서 2:1-2 ,멘토링

호리홀리 2015. 6. 29. 09:26

딤후 2:1-2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앙을 가정을 통해 전수했습니다.  디모데도 본래 외할머니의 신앙이 어머니에게로 또 그 신앙이 디모데에게 가정 교육을 통해 전달된 것입니다(딤후 1:5).

예수님은 이들을 단순히 가르침만 주고 홀로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특히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그의 가르침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보혜사의 역할 중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르친 직접 제자가 다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이 때에도 역시 성령은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직접 교사가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27에 보면 요한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성경에서 기름부음은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즉 성령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행할 바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본문 디모데후서 2:1에도 바울은 “내 아들아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은혜 안에서 강건해지는 것은 주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 신자는 영적인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신자는 직접적으로 어떤 인간 교사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 갈 수 있습니다. 신자는 이 훈련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신앙이 전수되는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에 대해서, 그것은 본문 2절에 나와 있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전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 말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신앙을 배웠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믿음의 자녀)이라고 한 것을 보면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단순히 학교에서 지식을 배우듯이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자녀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양육하듯이 삶으로서의 신앙을 배운 것입니다. 이렇게 지식뿐만이 아니라 삶까지도 가르쳐주는 사람을 흔히 ‘멘토’라고 합니다. 또 그렇게 가르쳐주는 것을 ‘멘토링’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멘토였고, 바울은 편지를 통해서 멘토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단은 대개 이단에게서 배운 사람에게서 또 파생됩니다. 우리나라 교계에서도 요즈음 크게 부흥하는 교회를 보면 대개 큰 교회에서 부목사님을 하다가 그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을 멘토로 삼아 신앙과 지도력을 배워 큰 교회로 성장한 경우가 아무 많습니다. 독일에서는 박사 과정 지도교수를 Doktorvater, 즉 박사과정 학생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신학자들의 경우에도 유명한 신학자는 유명한 학자 밑에서 배운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인간 멘토의 도움 없이 자수 성가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여전히 역사 속에 있는 멘토에게서 배웁니다. 책을 통해서, 정신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지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좋은 멘토가 있어야 합니다. 신자는 성령을 우리의 영원한 멘토로 삼는 것이지만 인간 멘토도 필요합니다.  목사는 신자들의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한 목사가 모든 성도들을 다 돌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목사를 돕는 또 다른 멘토들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부교역자들일 것입니다. 부목사님, 전도사님들이 제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줍니다. 하지만 교역자들이 교회의 모든 일을 다 담당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역시 평신도 멘토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또 있습니다. 

 

 첫째는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 안의 “신실한 사람들”(충성된 사람들)의 사명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였을 때 해야 할 것은 성경을 textbook으로 해서 삶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멘토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여기에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성경도 잘 모르고, 인격에도 자신이 없는데, 내가 우리 구역원보다 못한 점도 있는데,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완벽해서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먼저 신앙을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또 가르치면서 많이 배우게 됩니다.

두 번째 사명은 “전달하는” 것입니다. 본문 개역 성경에 보면 바울이 충성된 사람들에게 바울이 말한 것을 “부탁하라”고 되어 있는데 그 뜻은 “전달하라”는 것입니다. 전달이 무엇입니까? 내 것을 많이 덧붙이기 보다는 들은 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들은 것은 바울의 메시지를 말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메시지를 다른 신실한 일꾼들에게 잘 전달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멘토들도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리더의 또 한 가지 사명은 돌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내 아들아”라고 합니다. 물론 바울은 대부분 성도들을 향해서는 “형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개인 서신에서, 자기보다 연하의 젊은이에게, 또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 자에게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한다는 뜻으로 “내 아들”이라고 마음 속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인간 멘토와 학생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벧전 5:2-4)으로 아버지와 아들(딤후 2:1)로 그리스도 사역을 위한 동료 군사로(딤후 3;1)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선교 단체나 교회에서도 이것을 다양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목자(U. B. F.), 순장(C. C. C.), 구역장, 목장 리더....  본문은 “충성된 사람들” 다른 말로 하면 “신실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은 섬기는 지도력입니다. 주장한다거나 방치하는 태도를 취하면 안 됩니다. 섬기는 자세로서 늘 돌보고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동료 지도자들에게 권면한 가르침은 아직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너희 중에 있는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부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4:2-3)

리더를 존중하고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공적으로 임명된 지도자를 존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혹 부족한 점이 있을지라도  리더를 존중하고 그를 통한 가르침을 배워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6에는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존경과 존중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지도자를 포함해서 우리는 공적인 지도자를 어떤 경우에도 존중해야 합니다. 집안에 아버지가 성자라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지위를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존중입니다. 존경은 마음 속에서 우러 나와 상대방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할 수 있다면 존중과 존경을 다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존경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도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사회인으로서, 기독교인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를 가르치고 디모데는 신실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가르침이 4대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 안에서 모든 신자는 학생이어야 하고, 또 동시에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교만한 태도입니다.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또 한 부류는 배우기는 좋아하는데 배운 것을 전달하고 가르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그것을 삶에 옮기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을 명심하십시오. “신실한 자들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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