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포로후 역사서

포로후 역사서

호리홀리 2022. 5. 25. 18:01

 

                        포로후 역사서

 

               (역대상하,에스라,느헤미야,다니엘)

 

                                                       박인대교수

 

                    역대상.하

 

 

히브리 성경에서의 책 이름은 “디브레 하이야밈”(the things of the days:시대의 사건들)이다. 그러나 70인 역에서는 “생략된 것들”로 번역했다.

기록목적은 한 조상인 아담 이후로 유다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올 때 까지 언약백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언약을 지킬 때 축복하시고 어길 때 징계하시는 신명기적 구도가 계속 이어진다.

 

포로후 역사서의 특징은 다윗이 중심 인물이며,예배드리는 것,레위인,제사장과 언약에 충실했던 왕들의 기록도 있다. 아사,여호사밧,히스기야,요시야 그리고 다윗의 약점(밧세바사건,압살롬사건)이 전혀 기록되지 않는다.

솔로몬도 마찬가지이다. 역대기가 단순히 생략된 기록들이 아니다. 다윗의 약점을 일부러 기록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죄나 약점도 하나님께서 기록치 않고 도말하신다는 성경적 원리를 적용 할 수 있다.

 

에스라가 기록자라는 것을 영,영거,아처등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일치한다. 에스라는 포로로 귀환했고 아론의 후손인 레위지파였으며,토라에 정통한 학자였고,느혜미야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

 

다윗언약이 끝났다고 여기는 백성들에게 에스라는 역대기를 통해서 역사의식을 강조한다. 우리가 누구인가? 정체성의 확립이다. 그래서 족보부터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성막)을 가장 귀하게 여겼던 다윗, 그 다윗을 축복하신 하나님.이제 성전을 중심으로 세워질 하나님나라의 건설, 새로운 언약공동체를 통한 회복을 강조한다. 또한 다윗언약은 끝난 것이 아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그들에게 강조되는 것은 신명기적 구도이다. 언약을 어기면- 바벨론 포로를 경험한 그들에게 -버릴 것이라는 경고가 강조된다. 28:9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실 것이다. 대하15:2절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릴 것이다.

 

예를 들어 사울을 이야기한다. 또한 죄를 지었을 때 회개와 예배를 통한 회복 즉 언약적자비(헤세드)를 강조한다. 다윗이 인구조사로 징계받을 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나아가 회개한다. 그런 다윗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신다. 그 자리가 성전부지가 되며 장차 예수그리스도의 갈보리언약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르호보암도 이집트왕 시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선지자 스마야의 충고에 따라 회개하자,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  히스기야가 교만해져서 재앙이 임했을 때 그와 백성들이 회개하자 여호와의 진노를 거두신다. 므낫세도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으로 끌려가지만 거기서 회개하고 기도했을 때 다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겸비하여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대하7:14) 아비야가 여로보암과 싸울 때 여호와를 의지해 부르짖으니 유다백성을 구원하셨다. 아사가 구스와 전쟁할 때  하나님께 의지해 기도하자 구원하셨다. 아사가 여호와께 헌신 할때 평안을 주셨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의지 할 때 그의 나라를 점점 강하게 만드셨다.  암몬,모압,세일의 연합군이 공격했을 때 여호사밧의 기도로 승리를 주셨다.

 

                             1-9장 족보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1-2:2은 아담에서 야곱의 12아들,2:3-9:2은 지파별로,9장은 예루살렘 거주민의 목록으로 되어있다.

 

1:1-2:2

성경의 족보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여기서는 가인의 족보는 생략된다.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개명된 이름을 기록한다.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모두가 새로운 시대와 함께 새로운 출발이다. 족보의 특징인 줌앤크로즈업 기법이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2장은 이스라엘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다. 북이스라엘이건 남 유대이건 모두 한민족이라는 정체성과 민족의식의 고취로 이스라엘의 족보를 기록한다. 참 이스라엘이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동시에 화해,회복 통일을 보여준다.

 

 

2:3-9:1

이스라엘의 아들 중 가장 중요한 유다지파부터 시작된다. 3장은 다윗의 후손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구조는 대하28:4절이 뒷받침한다. “하나님이 유다지파를 택하사 머리를 삼으시고 유다의 가문에서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노라”

 

유다지파의 족보 중에 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다. 유다의 맏아들 에르의 범죄로 인한 탈락,(2:3). 아간의 범죄(7) .4:9의 야베스는 (야베츠:슬픔)운명을 극복한 인물로 길게 기록하고 있다. 야베스의 인생역전은 그의 기도 때문이었다. 그의 기도는 지경을 넓혀달라는 것, 많은 영향력을 끼쳤고 야베스의 비젼을 당시 1세대인 가나안 정복자들이 공유하여 승리한 것같이 포로이후인 우리도 이 비젼을 공유하자는 의도이다.

 

제1출애굽은 제2출애굽인 포로후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교훈이 된다. 제1출애굽 당시 야베스는 개인적으로 운명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서기관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딴 서기관마을을 형성하게된다. (2:55 “야베스에 거한”은 “야베스에 속한”으로도 번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같은 겐족속이다.)

 

4장은 이방인 출신들을 기록하고 있다. 13절의 옷니엘은 최초의 사사가 된 그나스족 출신이다. 15절의 유다지파의 지파장이며 가나안전쟁 영웅었던 갈렙역시 그나스족출신이다. 이들을 통해 비젼이 공유되었고 그결과 5장의 지경이 넓혀지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5:8절 “미쳤고” 9절 유프라데부터 광야지경까지 ”미쳤고“ 생축이 번성하였음이라. ”미쳤다“는 단어가 반복된다. 11,16,23 이로써 지경이 넓혀지는 비젼이 이루어졌다. 20절에는 도우심을 입었다라고 하면서 야베스의 기도중 ”주의 손이 도우시고”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2차 출애굽인 포로후 백성들인 우리들도 이 비젼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족보 이야기의 한 가운데 야베스의 비젼을 갖다 놓은 의도가 이것이다. 또한 이방출신들을 기록함으로 참 이스라엘 문제가 해결 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혈연관계가 아닌 언약관계인 것을 강조한다. 이방출신으로는 2:3,2:17,2:34-35,4:18,7:14등이 있다.

 

6장에서는 포로 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레위지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아들 중 장자 르우벤 탈락,시므온과 레위는 성격이 포악하여 세겜성 사람들과 거짓언약을 맺어 남자들을 죽이고 탈취한 일로 탈락, 이후 시므온은 우상숭배에 빠져 유다지파에 편입되면서 사라졌다.

출32장, 이스라엘의 금송아지사건으로 하나님의 진멸의 대상이었으나 모세의 기도로 회복된다.,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우상숭배에 앞장선 자들을 쳐라 누가 하나님 편에 설 것인가. 그때 레위지파가 나서서 동족을 3,000명을 죽였다.동족을 죽이기까지 하나님편에선 레위지파는 대대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 수종드는 일을 하게 된다.

 

레위의 세 아들이 중심이다. 게르손,고핫 므라리 이다. 16절에 다시 족보가 시작된다. 유다지파는 민족이 어려울 때 늘 앞장섰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민족의 위기때마다 등장해서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출2장은 민족이 없어질 위기였다. 바로의 명령은 히브리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여라. 그러나 2장에 무명으로 등장하는 “한 레위 남자가 한 레위여자에게 가서 장가들더니“무명의 레위부모는 모세와 아론의 부모였다. 그들을 통해 민족은 구원된다. 

 

사사시대의 위기이다. 언약공동체가 무너질 위기에 나타난 사무엘(6:28)을 통해서 대 반전이 일어난다. 다윗을 통한 회복과 승리 ,그리고 다윗언약. 암흑와 같았던 암울한 시대 모든 제사장이 타락하여 나침반을 잃어버린 것 같은 시대 “주앞에” 신실한 레위 제사장 스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해 세례요한이 탄생한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태어날 수없었던 인물이었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이어져왔다. 이제 너희 레위지파는 이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이 레위지파에 대한 사명이다. 그들의 사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것,찬양하는 것(6:31-33,48-49)이다.

 

 

9:1-44

“유다가 범죄함으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다.” 대하36장은  그것은 그 땅으로 안식을 얻게 함이었다. 언약의 대표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강제로 그와 그 땅을 안식케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멸망이 아니라 일시적 징계에 의한 장소 이동이다(대상6:15 대하36:20-21)

 

제일먼저 돌아온 이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그리고 느디님사람(성전에서 수종드는 집안 사람들)이었다. 황폐한 땅을 살리기 위해 제일 먼저 온 이들이 레위족속이었다.  예루살렘에 거주한 956명의 평민은 유다,베냐민,에브라임,므낫세(3-9),즉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구성되었다. 모두가 하나이며,하나된 회복이다. 귀환공동체,포로공동체의 중심은 예루살렘,다윗,레위지파이다.

 

이제 새로운 회복은 무엇인가? 먼저 족보를 통해서 과거를 보고 현재에 서서 미래를 소망한다. 여기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자비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10-11

귀환공동체의 중심인 예루살렘은 단지 유다 역사가 아닌 온 이스라엘의 역사인 동시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나라의 중심인 것을 말한다.  이제 역대상의 중심인물인 다윗에게로 초점이 모아진다. 10장과 11장은 사울과 다윗을 대조한다.

 

사울의 실패는 언약파기(10:13)이다. 사울에 대한 기록은 짧다. 사울을 왕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대조적으로 다윗에게는 계속 왕이란 호칭을 쓰고 있다. 11:19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11:9). 사울은 완료형,다윗은 진행형을 쓰고 있다. 하나님에게서 떠난자와, 함께 하는자의 대조법이다. 10:13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함이라.“ (마알 바아도나이)  마알은 우상숭배의 죄를 가르킨다.(겔14:13,15:7) 즉 언약파기이다.

 

사울의 실패는 정치적,군사적,경제적 실패가 아니다.

첫째, 주를 배신했다.

둘째,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셋째,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오히려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게 물어보았다.  이것을 종합하면 하나님께 범죄했다(표준 새번역에는 하나님께 배신했다.) 사울과 대조적으로 다윗은 물어가로되(14:10) 다윗이 또 묻자온되(14) 같은 전투에서 두 번의 질문에 반대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다윗을 대조시킨다.

 

11장은 점점 강성하게 되는 다윗을 보여준다. 먼저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장면,이것은 사울을 왕이라 부르지 않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  3절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왕에게 나아와 언약을 세운다.  무조건 항복이다. 

 

여부스족은 마지막 남은 가나안 족속이다. 가장 강력한 요새위에 건설한 예루살렘성 그러나 약점이 있었다. (삼하5:6) 다윗은 수구를 통하여 쉽게 성을 뺏고 수도로 삼는다.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은 아직 블레셋의 수중에 있었다. 다윗의 독백 “누가 저 우물물을 마시게 할꼬” 그때 30 두목중 세용사가 적진을 뚫고 물을 길어온다. 다윗은 생명을 걸고 길어온 물을 여호와께 쏟아부었다. 다윗의 중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었다(나삭)란 말은 제물로 드렸다는 말이다.

 

12장 역대상은 비연대순으로 기록되었다.

다윗이 시글락에 숨어있을 때 ,블레셋 아기스왕의 부하노릇을 하고 있을 때 다윗을 도운자들을 기록한다. “ 아자르“(돕는다)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 도움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이다(.12:18). 군사들이 몰려온다. 모두가 용맹한자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22)라고 표현한다. 다윗이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 제일 먼저 도운 사람들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베냐민 지파들이다(2)사울는 베냐민지파를 선동하여 다윗을 여러번 곤경에 빠뜨렸다.  그리고 갓,므낫세지파이다.

 

다시 장면은 헤브론으로 바뀐다. (23-40)다윗에게 나아온 자들은 “여호와의 말씀대로”(언약대로)23절 나라를 다윗에게로 돌렸다. 먼저 유다지파가 왔는데 그 숫자가 제일 적다. 유다지파 내에서도 견해가 달랐다. 사울이 죽었으나 북쪽 11지파 모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따랐다. 대세이다. 위험을 무릎쓰고 다윗에게로 나아온 자들. 아직은 숫자가 몇천명이다.

그러나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파가 있다. 32절 잇사갈지파이다. “시세를 아는자” 시세의 반대는 대세이다. 시세는 시대적 상황이다. 영적인 상황이다. 모두가 대세를 따를 때 시세를 따르는자. 그리고 그 일을 마땅히 행한자들 , 그들로인하여  이후 지파별로 수만명이 몰려든다. 합이 339,000명이다. 영적인 것은 전염성이 있다. 영향력이다. 도미노이론의 반대이다.

 

지도를 보면 잇사갈 옆에 스불론, 그옆에 납달리,그옆에 단,그리고 아셀이다. 이제 영향력은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들 120,000명  모두 성심으로,일심으로 모였다. 다윗의 승리를 통하여 다윗언약의 계승 그리고 그 언약을 믿는자의 회복과 승리를 포로후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3장은“ 여호와를 찾음”이다. 사울은 묻지 않았다.(3) 언약궤를 모심은 언약(시내산-모압-세겜)을 믿고 회복하겠다는 다윗의 의지이다. 이 사건은 17장의 다윗언약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언약궤는 물건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긴 웃사에 대한 진노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또한 다윗이나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포로가 된 백성들의 질문은 하나님은 죽으셨는가?이다. 그러니 성전은 불타고 나라는 망하고 다윗의 후손은 끊어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웃사의 사건이다.  언약궤 자체에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님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을 가르킨다.

이 사건은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와 다시 언약을 지킨 자에게 회복과 복을 주심을 보여준다. 가드사람,즉 블레셋사람 오벳에돔이 언약궤를 메어 모심으로 복을 받는다. 여호와를 찾는자(우리성경에는 묻는)에게 주시는 복이다. 오벳에돔은 이미 언약궤가 다곤신전을 훼손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언약궤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방이 먼저 복을 받는 아이러니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한다.

 

14:10절 하나님을 찾는(우리말 성경은 ‘물어“)자에게 주시는 복이 이어진다.

 

15장은 “메어”라는 말이 반복된다.(2,3,12,15,28)(신10:8,민4:3-20,7:9참조)하나님을 경외하는 다윗과 미갈이 대조된다. (29)

 

16장 .언약궤가 성소에 자리잡은 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언약체결식이다. 언약을 지키겠다는 서약이 진행된다. 이후 시편이 공적문서로 사용된다. 시105,90,106편이 낭독된다. 15절 너희는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라. 17절 이것은 영원한 언약이다.  그리고 언약백성의 역사의식고취로 이어진다. 이것은 17장 다윗언약의 예고편이기도하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자비하심(헤세드)은 영원하다. 는 것을 강조한다.(41)이제 다윗언약을 위한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17장 다윗언약은 역대기의 핵심이다. 다윗은 “집”에 관한 언약을 받는다. “바이트”(집)는 왕조,성전,집에 쓰인다. 첫 번째 집은 다윗을 위해 세울 왕조이며,두번째 집은 성전이다. (12) 이것은 장차오실 메시야의 소망이며 (사55:3)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있다. 14절 영영히,영원히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다. 포로가 되었다고 다윗언약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윗언약은 곧 하나님의 나라와 같이한다.  삼하7:16은 “네 집과 네 나라“이지만 여기서는 ”내 집과 내 나라”로 바뀌어진다. 다윗언약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나라의 영원성이다.

 

18장 하나님나라의 확장

사울이 패배했던 블레셋이 다윗에게 항복한다는 것부터 기록하고 있다. 원수 블레셋, 그렇게도 언약 백성들을 괴롭히던 블레셋이 소멸된다.  역시 언약백성을 괴롭혔던 모압이 굴복하며 유프라데강까지 정복한 것은 아브라함언약의 성취를 보여준다. (하맛에서 애굽 강까지:왕상8:65:이 표현은 국경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한다)

  6절 아람을 정복한다. 그리고 이 모든 승리는 여호와의 함께하심의 결과인 것을 선포한다.(6,13) 다윗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여 여호와께 드린다.(11)

이것은 성전 건축에 대한 준비로 쓰여진다. 가장 연약한 나라였던 이스라엘을 가장 강력한 나라로 만드신 하나님 .다윗이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할 때 주시는 복은 오늘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다 할지라도 언약을 믿고 나갈 때 하나님은 함께하신다.

 

20장,가장 고통스러울 때

다윗은 계속 승승장구한다. 20장은 밧세바의 범죄를 생략한다. 역대상은 다윗의 약점을 철저히 빠뜨린다. 20장은 계속된 승리, 특히 블레셋과의 전투이다. 4절 장대한자,5절 ,골리앗의 아우,창자루는 배틀채 같았더라. 6절 키큰자,8절,장대한자. 모두가 거인족이다. 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 전무후무한 승리이다. 그런데도 다윗은 계속된 전쟁과 승리에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왜일까? 사울에게 쫒길 때 잠도 못자고,먹지도 못할 때도 다윗은 평안했다. 두려움이 없었다. 쫒는 사울이 더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왜 그럴까?

 

해답은 예배자 다윗이 예배와 기도,찬송이 끊어졌다. 여러 해 다윗은 이것을 잊고 있었다. 삼손의 힘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때문이듯이 다윗의 힘은 군대가 아니라 예배였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초조해진 다윗은 인구조사를 감행한다. 요압의 청원에도 불구하고 추상같은 명령이 하달 된다.

 

21장. 다윗의 범죄나 약점을 생략한 역대상에서 왜 인구조사의 교만죄를 지적하고 있는가? 교만죄가 가장 큰 죄라서 그런가? 아니다. 중심에 깔려있는 것은 헤세드이다. 회개할 때 다윗이 상상 할 수 없는 자비를 베푸신다. 헤세드를 보이시려는 것이다. 1절은 사단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시켰다. 사탄은 고유명사로 나온다. 정관사가 붙은 대적자가 아니다.

사단이 직접 다윗을 격동시켰다. 아무리 신령하고 은혜로와도 예배가 끊어지면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예배는 우리를 지탱하는 힘인 동시에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새 힘을 얻는다.

 

12세 이상 숫자는 157만명 대단한 숫자이다. 삼하(24:9) 과 다른 것은 레위와 베냐민 사람들을 계수하지 않아서이다. 드디어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다윗은 크게 회개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앞에 중심으로 회개하는 다윗을 받으셨다.그러나 징계는 피할 수 없는 것, 다윗은 세가지 징계중 하나를 선택한다.

 

3일 온역, 가장 가벼운 것을 택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7만명이 온역으로 죽는 징계앞에 다윗은 오열한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회개( 예배)의 장소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다. 다윗은 여기서 언약체결식을 한다. 제의적절차인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다윗은 이장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히 물어보지 못한다. 이장소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모리아산이다. 이삭은 죄없이 제물이 된 예수그리스도의 예표, 표상,모델이다. 언약을 확정지었던 그 장소에서 다윗은 언약체결식을 했다. 여기가 성전 터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장차 모든 언약의 완성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이 여기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다윗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겠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것까지 이루어가신다. 다윗의 회개를 보시고 성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헤세드가 얼마나 놀라운가?

 

교만죄를 넘기가 참 어렵다. 사사들을 보면 모두가 연약한 자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자로 세워 모두들 부끄럽게 하셨다. 탁월한 왕들 아사,히스기야 ,웃시아,다윗등 예외없이 교만죄로 넘어졌다.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은 다른 모든 죄는 손가락 하나로 까딱하시지만 교만죄는 양팔을 걷어붙이시고 대적하신다.

 

22장.당신의 소원은 무엇인가? 다윗의 소원은 성전건축이었다. 그러나 22:8절 피를 너무 많이 흐렸음으로 거절하셨다. 모세의 간절한 소원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석사건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다윗은 불평,원망하지 않고 순종한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본문에 “준비”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된다. 3,4,5,14절에 7번이 반복된다.

모세도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모압평지에 서서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내가 다 하려고한다. 하나님이 일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고집을 부릴때가 많다. ‘나 아니면 안되“의식이다. 다윗의 준비와 하나님의 준비가 맞 물려있다. 하나님도 미리 준비하셨다. 솔로몬의 이름을 미리 정하신 것이다. 샬롬에서 나온 평강이란 말이다. 역시 평강이 반복된다. 9,18절.

 

다윗은 솔로몬의 성전건축에 있어서 매뉴얼을 제시한다. 마치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했듯이 강하고 담대하라,두려워 말라 (13),내가 너와 함께하리라(11,16,18).그리고 중심으로하라(19)

 

23-27장,다윗은 장차 지어질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담당 할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조직과 직무(23:1-26:32),방백들의 조직과 직무,(27:1-34)로 나뉜다. 다시 자세하게 나누면, 레위인들(23:3-32),제사장들(24:1-19)찬송맡은 자(25:1-31),성전 문지기들(26:1-19),성전 곳간 맡은 자들(26:20-28),관리들과 재판관들(26:1-19),군과 행정관리들(27:1-34)

 

특히 26:1-8절의 성전문지기는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뀐 자들이 선정되었다. 고라의 후손이다. 고라는 반역하였으나 아들들은 가담하지 않았고, 그 후손들은 문지기가 되었다. 4절의 오벳에돔은 웃사의 저주에서 자기집으로 모신 언약궤를 지킨 것에서 복을 받아 성전 전체를 지키는 직무를 부여 받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지기는 별것 아니겠으나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는 가장 영광스러운 것으로 제사장,찬송하는자와 같이 기록되었다. 다윗도 시84:10에 “내 하나님 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사찰 집사의 자식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없다. 하나님이 반듯이 복 주신다는 표현 일 것이다.

 

28장 다윗의유언

7절 언약을 지켜라.9절 저를 찾으면(구하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영원히 너를 버리시리라. 신명기적 구도가 이어진다. 그리고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20절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고 놀라지말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니....

 

29장 다윗의 마지막 사명

성전건축의 사명을 위해 간곡히 호소한다. 다윗은 개인 소유의 금 3,000달란트(약110톤)와 은 7,000달란트(약26톤)등 자신의 전부를 드린다.힘을 다하여,즐거이,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라는 말이 반복된다. 또한 이모든 것이 주의것이며,주께 드렸을 뿐이라고 반복한다. 지도자들의 헌신이 이어진다. 6-9절 금5,000달란트 모두에게 기쁨이 된다.

 

다윗의 마지막 유언을 요약하면

1)모든 것이 주의 것이고 주께 속하였나이다. 주의 것. 로드쉽을 강조한다.

2)기쁨으로 헌신하라.즐거이 드려라

 

 

 

 

 

 

 

 

 

 

 

                          역대하

 

 

 

 

솔로몬의 성전건축

다윗은 성전을 지어드리려 했으나 역대상 28:3절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거절 당했다. 대신 모든 준비를 갖추었고 솔로몬에 의해 건축되었다. 솔로몬의 이름 뜻은 샬롬, 즉 평화이다. 평화의 왕에 의해 받으셨다. 솔로몬은 봉헌식에서 성전 건축은 여호와께서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룬 것이라 선언한다. 솔로몬의 기도의 내용는 신명기적 구도에 입각한 축복과 저주이다. 그러나 역시 열왕기상과 같이 포로로 끌려갈 것에 대한 예언과 암시를 담고 있다. 마치 결혼식에 주례자가 이혼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솔로몬의 기도의 핵심은 6:14절이다. 주의 종들에게 “베리트 헤세드”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언약적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6:41절에는 “어하시데카” 접속사 “오”가 형용사 “하시드”(동사는 헤세드)와 결합하여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42절에도 은총(헤세드)를 쓰면서 다윗언약을 기억하옵소서라고 언약적 자비를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나라:“내 집과 내 나라”(대상17:14) 다윗의 왕조는 다윗 개인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나라인 것을 선언하신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좋은 왕과 나쁜왕의 구분은 다윗의 길을 따른 왕이 기준이다. 즉 예배자와 우상숭배자로 나뉜다. 여호사밧,히스기야,요시야는 다윗의 길을 따랐다. 또하나의 기준은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느냐 안하느냐이다.

 

1장 솔로몬은 왜 기브온 산당으로 갔는가?

그곳에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하나님의 회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약궤는 없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이미 모셔 놓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번제를 드리지 않고 기브온으로 간 것은 공식적인 행사이며, 백성들이 주로 찾는 이곳에서 ,또한 대제사장 사독이 여기서 성막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대상 16:39-40)

그러므로 합법성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이 나타나시므로“ 정당성도 부여하고 있다.  일천번제는 한꺼번에 천 마리의 소를 드린 것이다.  그날밤 나타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역대기의 기록은 이렇게 솔로몬의 약점도 가리고 있다. 지혜뿐 아니라 부와 영광도 주셨다.  1:1절은“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천마리를 드리는 솔로몬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보신 것이다. 기도한 것보다. 기대한 것 보다 배나 주시는 하나님, 구하지 않은 것까지 주시는 헤세드의 하나님을 보여준다.

 

견고와 창대의 비결은 무었일까?

 

첫째는 1절의 여호와의 함께하심이다. 재물과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이 떠나시면,저주이다, 사울이 그랬고 엘리의 며느리(비느하스의 처)가 아이를 낳을 때 이가봇이라 했다. 예루살렘성전에서 여호와가 떠났으니 건물만 남은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하심이 축복이다.

 

둘째는 기도이다. 솔로몬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다. 역사서부터 유독 강조되는 ”아도나이“(주) 아도나이의 눈에 합할 때이다. 기도의 양과 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도자의 중심이 중요하다. 유창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기도는 늘 떨려야하고 두려움으로 다가서야한다. (예 말더듬,날라갔나이다)

 

2장 역시 솔로몬의 약점은 감춰주신다. 1절 솔로몬의 결심을 귀하게 여기신다.

2:3절-10절 후람에게 성전건축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1)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2)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5,6  

11-16은 두로왕 후람의 반응이다.

여호와를 찬양한다.  마치 모세의 성막을 오홀리압과 브사렐이 돕듯이 이방인 후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3장.성전의 구조와 기구들

열왕기상에서는 성전건축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면 여기서는  성전과 기구가 갖는 의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포로후 백성들에게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1)성전장소의 의미(3:1-2,5:1)

열왕기는 출애굽 480년을 강조하면서 성전은 성막의 완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역대기는 성전의 지리적위치와 역사적의미를 보여주며 성전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모리아산-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오르난의 타작마당

 

2)성전구조와 기구들의 의미(3:3-14)

성전 재료 중에 ‘정금“이 반복된다. 성전의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창조와 통치를 보여준다. 역대상은 족보를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통치라면, 역대하는 성전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3)성전기둥(대하 3:15-17)

역대기는 이름의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다.  우편은 야긴,좌편은 보아스이다. 야긴의 뜻은 “그가 세울 것” 보아스의 뜻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4)뜰의 기구(대하4:1-10)

대하4:6에서 물두멍은 번제에 속한 물건을  씻는 기능이며, 바다는 제사장들의 씻김을 위함이다.  이 둘의 기능은 정결이다.

 

5-7장.솔로몬의 성전봉헌식은 장막절에 맞추었다. 마지막 절기이며 마지막추수이기도하다. 장막절의 시작인 7월1일 나팔을 불며 장막절을 알리는 나팔절부터 시작한다.  모든 백성이 모여 7월10일 대속죄일 그리고 15일부터 초막절행사가 7일간 진행되며 마지막 날 22일은 대회로 모인다. 초막절 행사에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언약궤가 지성소에 들어갔다. 궤안에는 두 돌판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시내산 언약이 강조된다. 모든 백성들이 기뻐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였더라. 하나님의 임재를,영광을 강조한다.

 

6:4,10은 다윗언약의 성취 11절은 시내산 언약의 성취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을 반듯이 이루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14)헤세드의 하나님.41,42

 

7장은 솔로몬의 기도가 이어진다. 6장에 이어 계속 언약적자비를 간절히 호소한다. 3,6절 인자(헤세드)하심이 영원하도다. 그렇다. 하나님은 언약만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언약적 자비를 통하여 반듯이 언약을 이루어가신다. 솔로몬은 다윗언약의 성취자가 자신인 것을 강조한다.

 

7:7절은 언약체결식의 제의적절차인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솔로몬의 정성은 모든 백성들을 감동시킨다. 8절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하수까지”(유프라테스강에서 나일강 까지)이 경계선은 다윗이 확장한 나라의 경계선이다. 모든 백성들이 모였다. 그들이 가져온 예물은 소가 2만 2천 양이 12만(5절)이었다. 솔로몬의 간절한 기도는 14절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백성(언약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회개하고 겸손히 기도하면 어떤 죄도 고치겠다는 언약적 자비이다. 이것은 마치 사이클 같이 이어진다. 언약을 파기하면 땅과 이 전을 (20-21) 버리겠다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으로 기도하면 사하시겠다는 언약적 자비가 이어지는 것이다.

 

  8절의 일주일의 절기는 장막절이다. 10절의 7월 23일은 대회로 모이는 다음날이다.  이날 모든 백성들을 돌려보낸다.  정리하면 7월 7일부터 7일 동안 봉헌식 그리고 15일부터 이어지는 7일간의 초막절행사, 22일 대회로 끝난다.

 

8-9장. 역대하는 1-9,10-36장,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앞 부분은 솔로몬의 사역, 뒤는 유다왕들의 사역이다.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것은 성전건축을 위해서가 첫 번째이다.  솔로몬에게 부와 지혜를 주신 것은 성전건축을 위함이다. 솔로몬은 약속대로 했기에 더욱 부와 지혜를 주셨다.

 

역대하 전체의 주제인 1:1절 견고와 창대의 비밀을 솔로몬에게서 찾아보자.8:1-6절 까지에서 “바나”(건축하다)라는 동사가 8번이나 반복 강조된다. 3절의 “쳐서 취하고” 5절의 “견고한 성읍“등은 솔로몬이 언약을 지켰을 때 받은 복이다.

 

예배자 솔로몬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혼인하고 그녀를 위한 궁전을 건축한 것이 열왕기상에 나와있다. 본문에서는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언약궤가 이른곳은 다 거룩하기 때문에 이방여인을 성전가까이 있는 다윗의 궁에 거하지 못하게한 것이다. 솔로몬의 경건함을 보여주고있는 것이다.  성전의 거룩함을 유지 보호하려는 그의 노력이다.

 

역대기는 솔로몬의 우상숭배나 죄악을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는 다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배자의 모습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또한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으로 솔로몬에 대한 최종평가를 보여준다.  8:12-15에 ”그가 모세의 명을 쫒아“”그 부친 다윗의 정규를 쫒아“”다윗이 전에 명한대로“란 말이 계속 나열된다. 솔로몬이 얼마나 철저하게 지켰는지는 13,14절 ”매일 반차를 쫒아” 그리고 모든 절기를 다 지켰다고 기록한다.

 

첫째,솔로몬을 통해서 성전건축을 이루시는 하나님 그리고 순종하는 솔로몬. 솔로몬을 통해 성취되는 다윗언약, 솔로몬에 대한 언약의 성취로서 솔로몬에게 주신 부와 영광이 역대기의 강조점이다.

둘째,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는 아도나이, 중심을 보시는 주의 불꽂같은 눈에 합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으며,

세째,현재의 어려움을 보지 말고 장차오실 메시야를 바라보라는 것이 역대기의 주제이다.. 다윗도 그림자,솔로몬도 그림자,즉 모형이다. 다윗을 통해 이루어가시는 하나님나라의 영원성을 바라보며 살자는 것이 역대기의 주제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지는, 보이는 예배로서의 기능을 다할 것이다.

 

10-12장

북 왕국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역대기는 포로기간 중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남 왕국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또한 열왕기서와의 차이점은 포로이전과 이후라는 관점의 차이와 역사관의 차이이다.

이제 다시 시작되는 하나님나라는 순수한 믿음의 공동체이어야한다. 그러므로 그들에 있어서 포로후 정체성의 확립은 매우 중요했으며 그것은 이방결혼의 불가로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서 열왕기서와 비교해야 할 것이다.

로호보암의 잘못은 무엇일까? 젊은 사람들의 말을 나이든 신하의 말보다 더 신뢰했기 때문일까? 아니다 르호보암의 죄는 여호와께 물어보지 않은 죄이다(12:14)

또하나의 죄는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걷지 않은 것이다(11:17)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걸었을 때는 강성케 했으나 그렇지 않을 때 징계하셨다. 그러면 다윗과 솔로몬의 길이 무엇인가? 예배이다.

 

다윗언약이 계속 강조된다. 12:5절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르호보암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징계는 멈춘다.

언약적 관계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강조한다.

 

모든 왕들의 기준은 세가지이다.

첫째 언약을 지키는가?

둘째,선지자의 말을 듣는가?

셋째 다윗의 길을 따르는가?

이 세가지로 승리 아니면 패배의 언약적구도가 설정된다.

 

르호보암을 보자

첫 번째의 기준12:1-2절에서 언약을 지키지않는다.

두 번째 기준,11:1,12:5절에서 선지자의 말을 들음으로 파멸은 면한다.

세 번째 기준 11:7다윗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었으면 환경은 약해진다. 반면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있지 않으면 환경은 악화된다. 언약백성 주위의 나라들을 강성케하여 언약 백성을 괴롭히는 설정구도이다.

 

12장에서 애굽의 22왕조를 일으킨 시삭이 침공한다. 시삭은 여로보암의 정치적 망명을 허락한 인물이다. 시삭은 유다의 성읍 156개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성까지 정복한다.   그러나 12:6-7절 반복되는 스스로 겸비하여 구하는 르호보암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잠시 구원하신다. (7:14)

 

13장,아비야는 3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면서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모두의 예측을 뒤엎고 승리한다. 아비야는 40만 여로보암은 80만이었고 전략에서도 13절 복병전술을 취하는 전략적 우위를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이스라엘의 승리일진대 결과는 뜻밖에 아비야의 승리로 끝났다.  역대하는 언약적관계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비야는 산위에 서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언약으로 이스라엘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5)을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에게 상기시킨다.  소금언약은 언약의 영원성을 말한 것이다. 즉 다윗언약이다. 반면에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모시고 전쟁에 임했다.

 

아비야의 경고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치 못하리라”(12) 그러므로 이싸움은 여호와와 금송아지와의 싸움이다. 아비야는 선한 왕의 기준에서 탈락이다. 그럼에도 다윗언약을 믿고 싸웠을 때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신실성을 보고계신다. 

 

여로보암은 탁월한 전략으로 맞섰다. 그러나 유다는 기도한다. 부르짖고 나팔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을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50만이 죽었다. 승리의 비결은 18절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의 “니산”은 믿다.신뢰하다와 같은 뜻이다. 역시 대하1:1절의 견고와 창대의 비결이 적용된다.

 

14-16장 선하지 못한 아비야와 대조적으로 아사는 선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다. 왜 그랬을까? 아사의 시작은 종교개혁이었다. 솔로몬 이후 첫 번째 종교개혁이었다. 10년간은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이방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상을 찍고 유다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했다.”(14:3-4) 이런 행위는 절차만 시행한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기에 쉬운 것이 아니었다. (백성들의 종교적행위는 농경문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셨다.(1,5,6X2,7)

 

아사왕 14년 이디오피아의 100만대군이 쳐들어왔다. 아사의 군대는 58만 , 병거와 첨단무기(철병거)를 동원한 적과의 싸움은 중과부족이었다. 그러나 14:11절의 아사의 기도는 전쟁의 반전을 가져다준다. 언약적 자비를 호소하는 아사의 기도이다. 이런 언약기도는 히스기야같이 하나님과 적의 싸움으로 바뀌게된다.

 

아사랴선지자는 아사에게 개혁의 원리를 설명한다 15:2절에서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지라” 언약적관계를 말하고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언약적관계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아사의 두 번째 개혁은 철저했다. 15:8절 선지자의 말을 들었을 때 북쪽의 사람들 까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내려온다.

온 백성을 다 모은 아사는 언약체결식을 하고 하나님앞에 언약을 지킬 것을 맹세한다.  개혁의 대상에는 모친 마아가까지 포함되었다.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든 이유로 태후의 위를 폐한 것이다.  이런 개혁은 아사왕 35년까지 진행되었다. 1:1의 성취이다. 이것이 역대하의 주제이다.

 

그러나 16장에서 아사는 무너진다. 북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침공하자, 아사는 가볍게보고 세속적방법을 택하기 시작한다. 아사는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고 아람왕 벤하닷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16:3절은 “베리트”로 시작된다. “나와 언약하사“ 하나님과의 언약보다 아람과 언약을 맺고 의지하며 예물까지 바치는 세속적 방법을 쓴다.

아람은 북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깨트리고 전쟁에 승리한다. 그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여호와를 의지하지않은 것을 경고한다.  아사는 오히려 옥에 가두며 핍박한다.  언약을 지켰을 때는 평안을 주셨으나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16:12절 죽을 병에 걸린 아사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이 말은  아사의 실패의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사람을 의지하는 아사를 보여준다. (니산:의지가 반복된다.)

 

17-20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여호사밧)

대하1:1절의 견고와 창대의 비결이 계속된다. 여호사밧이란 단어의 뜻대로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 5절, 견고와 부와 영광(창대)는 첫째 3절 여호와께서 함께계시니 둘째 4절 “하나님께 구하며“이다. 6절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다. 역사서(사무엘)이후 아도나이의 호칭이 강조된다. ”아도나이의 눈“은 늘 중심을 보신다.

여호사밧은 우상을 철폐하고 철저히 하나님을 섬겼다.

여호사밧은 제사장들을 성읍들에 파송하여 토라를 가르치게한다.

 

18장의 배경은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합이 다스렸으며 남왕국보다 훨씬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사돈관계를 맺어,(이제벨의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아합은 아람을 칠 때  여호사밧에게 군대를 요구했고 여호사밧은 거절 할 수가 없었다.  아합과 여호사밧을 대조시킨다. 이것은 역대하의 구조이기도하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선지자를 의지하고 기도하는 여호사밧과 아합을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미가야선지자와 400명의 무능한 선지자를 대조시킨다.

 

19장,아합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선지자 예후의 말에 순종한다. 역대기의 선한왕과 악한왕의 기준은 다윗의 길로 가느냐이다. 또하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느냐 아니냐이다. 여호사밧은 아무리 피치못할 상황이더라도 아합과 동맹하지 말아야했다. 그리고 명분없는 전쟁에 참여하지 말아야했다.  아합의 탐욕에 동조한 죄를 예후는 책망하고있는 것이다.

회개한 여호사밧은 19:4절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산지까지 다니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했다. 직접다니며 말씀을 가르쳤다. 11절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자와 함께 계실지로다”

 

20장, 여호사밧이 언약을 잘 지켰음에도 고난이 온다. 시험이었다. 모압,암몬,마온의 연합군이다. 아람도 공격한다. 사면초가이다. 3절 여호사밧은 두려워한다.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여전히 두렵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모든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한다. 그리고 여호사밧의 기도 내용을 보면 7절 아브라함언약,9절 솔로몬에게 주신 언약을 상기시키며 기도한다. 이것이 언약적기도이다. 언약적기도는 100%응답된다. 그것도 속히.....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응답은 언약적 관계를 상기시킨다. 15,17“두려워말고 놀라지말라“ 17절에 두 번 ”함께 하리라“ 이에 확신을 얻은 여호사밧은 이상한 전술을 사용한다.

 

21절,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찬양하세 그의 인자하심(헤세드)은 영원하시도다” 전쟁에서도 언약적 자비를 간구한다. 그렇다 언약적 자비는 우리의 모든 삶속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것이기에... 전쟁은 큰 승리로 끝난다.

20:30절은 !:1절의 성취이다. “태평과 평안을 주셨더라“ 여호사밧의 허물이 많음에도 감추시는 하나님,오늘 우리의 과거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현재성 ,지금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를 보시는 하나님. 나에 대한 최종평가도 이와 같음을 우리는 확신해야 할 것이다.

 

21장은 여호사밧이 죽은 후 아들 여호람의 통치기록이다. 당시 북왕국은 오므리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들과는 우호관계에 있었으나 국경을 마주대하고 있었던 아람(수도는 다메섹)과는 적대적 관계였다. 아합과 이제벨과의 혼인을 통한 동맹관계,그리고 아합은 자신의 딸을 유다왕 여호람과의 혼인을 통한 동맹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예후의 반란으로 오므리 왕조는 끝난다. 그러나 놀랍게도 남유다에서 아달랴에 의해서 부활한다.  다윗 언약이 끊어질 위기 속에 극적으로 요아스에 의해 왕위는 계승된다.

 

여호사밧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유다의 주요 요새들을 나누어주어 통치를 강화한다. 이것이 왕위에 오른 여호람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여호람은 왕이 되면서 형제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아마도 부인 아달랴의 책략일 가능성이 많다. 그의 통치가 그나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언약 때문이었다.

여호람은 우상숭배에 깊이 빠졌고 엘리야는 편지를 보내 경고한다. 그러나 여호람은 그 경고를 무시했고 유다의 조공국가들이 일시에 유다를 공격함으로 왕궁은 약탈당하고 말째아들 여호아하스를 제외하고 모두 죽는다. 이후 여호람은 중병으로 예언대로 죽는다. 열조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한 수치를 안고서 말이다.

 

22장 아하시야 즉 여호아하스는 22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1년도 못간다. 이유는 철저히 아합의 길로 갔기 때문이었다. 3-4절에서 “아합의 집”을 세 번 반복하며 강조하고 있다.  이제벨이 그랬던 것처럼 아달랴는 아들을 부추겨 악행을 일삼는다.

아하시야는 북왕국 요람을 도우러 갔다가 예후에게 죽는다. 아달랴는 아들이 죽은 후 유다의 왕족들을 모두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여 6년을 통치한다.  그러나 고모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난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보호되고 왕으로 추대된다.

역대하는 아달랴를 공식제위기간으로 보고 있지 않는다. 여호야다는 백성들과 하나님과의 언약체결식을 통하여 바알 숭배를 버리고 여호와의 언약백성으로 살 것을 결단한다. 

 

24장,요아스는 유다의 왕들 중에 가장 어린나이인 7살에 왕이 되어 40년을 다스렸다. “여호야다가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더라”(24:2) 이 말은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3절에서 여호야다는 요아스의 두아내를 간택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으며 두 아내를 통하여 많은 자녀를 생산케 한 것은 아달랴사건을 반면교사로 하고있는 것이다.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예루살렘중심의 성전 정화운동으로 밀려난 유다방백들이 전면에 나선다. 요아스는 그들을 신뢰했고 요아스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또한 선지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의 말을 듣지 않고 성전에서 스가랴를 죽인다.

 

역대하의 왕들의 세가지 기준,

언약을 지키는가?

선지자의 말을 듣는가?

다윗의 길을 가는가?

요아스는 셋 모두 거부한다.

 

마태23:35,눅11:51절에는 예수님이 스가랴의 죽음을 인용하고 있다. 아벨의 피(창세기)에서부터 스가랴의 피(역대하)까지를 구약 시대의 의로운 피로 규정한 것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이 역대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요아스에게 기다리는 것은 심판 뿐이었다.  당시 아람왕 하사엘은 바다를 통해 가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공격했다. 왕하 12:17-18에 요아스는 성전 곳간의 보물을 바쳐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했다. 그러나 역대기의 평가는 다르다. 그 일이 스가랴를 죽인지 1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인 것을 강조하면서(23)철저히 하나님의 의도가 개입된 사건임을 강조한다.

아람과의 전쟁에서도 패배한 이유를 여호와를 버림으로 일어난 일인 것을 강조한다. 또한 요아스는 암살당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여호야다는 130까지 장수하여 왕의 묘실에 장사되지만,요아스는 수를 누리지 못한 채 암살당하고 왕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25)

 

25장, 아마샤는 요아스가 암살당하고 25세에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아마샤는 아버지의 암살에 간여한 자들을 죽이지만 그 자녀들은 죽이지 않는다. (참고 신24:16).아마샤 역시 요아스와 마찬가지로 “정직히 행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았다.”즉 한결같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교훈이 반면교사가 될 법도 하건만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만다. 아마샤는 에돔정복을 통해 2만명을 죽이고 오늘날 페트라로 추정되는 교역의 중심지 수도 셀라를 정복하는 큰 성과를 거둔다. 에돔정복은 왕의 대로와 향길(향료를 파는 길)이 지나는 교역의 중심을 확보했으며 홍해의 입구 항구도시인 에일랏을 확보했다.(참고:26:2) 아마샤는 에돔을 정벌하기 전에 북왕국의 도움을 받으려고 용병 10만을 은 100달란트를 주고 샀다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들을 돌려 보낸적이 있었다.

 

에돔의 정벌은 유다가 강국이 될 수 있는 기회였으나 아마샤는 에돔의 우상을 가져와 섬겼고 선지자의 경고도 무시했다. 하나님의 진노가 서서히 다가옴을 감지 할 수 있다.  아마샤가 에돔의 우상을 섬긴 것은 부를 가져오는 우상을 통한 축복이었기 때문이었다.

 

에돔을 정복한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선전포고한다.(17) 아마샤의 선전포고는 북왕국의 용병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유다땅을 약탈한것에 대한 응징이었다. 북왕국의 왕 요아스는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자고 제의 하지만  아마샤는 전쟁을 일으킨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로 끝난다.

 

요아스는 아마샤를 포로로 잡고 승리의 표시로 예루살렘성벽을 400규빛쯤 헐고(23)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보물을 전리품으로 취해 본국으로 돌아간다.이런 아마샤의 패전에 대해 성경은 아마샤가 에돔신에게 구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았음으로 하나님의 징계라고 말한다. 급기야 아마샤는 반란군에게 쫒겨 라기스로 도망하지만 그곳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 이유도 역시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다.

 

26장,웃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 북 이스라엘에 전쟁에 패하고 민심은 이반되었으며,아버지는 반란군에게 피살 당하고 성전은 약탈당하고 나이는 겨우 16세였다. 유다의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도 낙관적으로 보지않았을 때이다.

 

웃시야의 생애는 형통과 징계로 나눌 수 있다.

형통의 원인은 3-4절이다. “웃시야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형통의 초점은 “하나님을 구했다”(다라쉬)이다. 사울을 비롯한 실패자의 원인은 “여호와께 구하지 않았다” 이다. 반면에 다윗의 성공은 여호와께 물었다는 것이다. 5절 선지자를 신뢰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 구했다.

형통의 내용은 하나님의 도우심(7,15)과 강성함이다(8,15) 웃시야는 서쪽 블레셋을 물리치고 확장시켰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농업을 강화시켰다. 또한 군비를 강화했다.  그러나 16-21절은 징계이다. 강성하여 교만죄를 지은 것이다.

 

열왕기하에서는 간단히 문둥병에 걸린 것을 기록했으나 역대하에서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웃시야는 교만해져서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분향을 하려한 것이다. 이는 명백히 언약을 어긴 것이다. 레위기에서 아론의 아들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었다.

사울의 경우도 제사장 대신에 분향했다가 왕위를 뺏긴 것.웃시야의 경우도 이런 언약적 관점에서 같다. 용맹한 제사장 80명이 몸으로 막았으나 왕은 분향을 강행했고 즉시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다. 가장 큰 징계는 죽을 때까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21)

 

27장은 요담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기록한다. 또한 “여호와의 전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원문에는 문장의 앞에 ”다만”이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 웃시야의 경우를 상기하여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는 것을 금했다는 표현이다. 요담은 아버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요담을 형통케하셨다.

 

28장 ,아하스에 대한 평가는 우상숭배만 하다가 징계를 받고도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는 왕이다. 2절,“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힌놈의 골짜기에서 분향하고,이방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녀를 불사르며, 산당과 나무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한 것이다.

 

열왕기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침입으로 앗수르의 도움을 요청했고 앗수르에 의해 아람과 이스라엘이 멸망했고 이어 히스기야 때 앗수르의 공격을 받는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5절 그러므로 아하스의 징계가 시작된다. 다메섹과 이스라엘의 침공이다. 언약적 관계에서의 ‘붙였다“는 단어를 쓰신다. ”여호와께서 아람왕의 손에 붙이시매“ 12만명이 죽고 20만명이 사마리아로 끌려가는 치욕을 받는다.

 

29장의배경은 북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남유다는 아하스의 악정으로 성전 제의가 마비되고 정치적으로는 최악의 상태에서 시작된다. 히스기야는 즉위 즉시 종교개혁을 단행해 성전제의를 회복하는 동시에(29장-31)예배를 통해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남은 백성을 껴안는 정치적 통일을 이룬다. (30)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신뢰함으로(32) 다윗시대에 버금가는 전성기를 마련한다.

 

왕하18:4절 단 한절만 기록된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이 역대하에서는 29-31장 으로 확대된다.

히스기야는 즉위 즉시 성전 문을 열고 성전성결과 보수를 명령한다. 6절,조상들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던 ,그리고 지금도 진노아래 놓여있는 죄를 회개하며 10절 언약체결식을 거행한다. 특이한 것은 레위사람들의 위치를 격상시켜 그들에게 종교개혁의 선두에 서게한다. 레위인들은 제사장의 수종 드는자로 인식되어왔던 것을 불식시키고 너희도 동일하게 여호와를 위해 선택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12-15절은 레위인들이 왕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약체결식은 성전 재봉헌과 백성을 위한 속죄제(21-24)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31절 언약체결식이 끝난 후 백성들을 감사제에 초청한다.  백성들이 제물을 너무 많이 가져오자 제사장들만으로 부족했다. 레위인들은 제사장보다 더 열심히 참여했고 온 백성들이 기쁨으로 참여했다.

 

30장, 성전이 재 봉헌되고 성전제의가 회복되자 히스기야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알려 유월절을 지키자한다. 보발꾼들이 왕의 말을 전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여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린 것은 예루살렘에서 드려지는 예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 그러나 대부분은 보발꾼을 조롱하며 소수만 응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절 한달 연기된 유월절에 수많은 무리가 모였다. 유월절은 기쁨으로 7일간 진행되었으며 7일을 더 연장했다. 온 이스라엘이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포로후 백성들에게 유다나 이스라엘이 아닌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히스기야 시대의 유월절 행사를 부각시킴으로 강조한다.

이 장면은 역대하의 두부분 중에 절정이다. 전반은 솔로몬의 성전봉헌과 언약체결식, 후반은 히스기야의 성전재봉헌과 언약체결식,그리고 유월절이다 .오늘 우리(포로후 백성)가 사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유월절이후 남북은 하나된다. 예루살렘이 남북의 수도역활을 한다. 남북이 다시 정치적,종교적 통일을 이루었다. 우상을 철폐하고 일어난 종교개혁은 종전과 같은 위에서 부터의 개혁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었다.

 

32장,열왕기하에서 기록된 정치적 사건은 여기에서 3/1로 축소된다. 유다는 산헤립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한다. 열왕기하에서는 산헤립의 침공으로 많은 성읍을 잃은 히스기야가 겁에 질려 성전과 궁전의 보물을 털어 산헤립에게 바친다. 

그러나 역대기에서는 다른 관점에서 조명한다. 산헤립에 포위된 히스기야는 부하들과 의논하여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성 밖에 있는 샘을 막고 실로암을 안전하게 한다. 또한 무너진 성벽을 수축하고 망대를 쌓고 외성과 다윗성을 보수한다.

  히스기야는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신속하게 대처했고 백성들을 격려하는 탁월한 리더쉽을 보여준다. 그러나 승리한 후 히스기야는 교만에 무너진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회개하자 하나님의 징계는 유보된다.

 

히스기야의 개혁을 정리하면

첫째,하나됨을 강조한다. 남북은 하나이다.

둘째,언약에 기초한 개혁,

세째,왕은 올바른 방향제시, 그리고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이다.

결국 히스기야의 개혁에 온 백성들은 기뻐한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그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경의를 표하였다.”(32:33)

 

33장,열왕기와 달리 역대하에서는 므낫세의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킨다. 그러나 역대하33장은 므낫세의 죄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자녀들을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침으로 우상숭배의 절정을 보여준다.

므낫세의 두 번째 잘못은 성전을 더럽힌 것이다. 7-10절 자신이 만든 우상을 성전에 세워 다윗과 솔로몬과 맺은 언약을 깨트린다. 이제 언약적 저주가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므낫세의 악행은 유다 모든 백성들의 타락에 결정적 영향력을 끼쳤다. 므낫세의 악행은 최악이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였더라”(9절) 역대기는 므낫세의 악행보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그의 교만이 심판을 가속화시켰다고 강조한다.

언약파기.선지자의 경고무시,다윗의 길을 걷지 않음, 하나님의 세가지 판단에 므낫세는 도를 넘었다.

 

므낫세는 앗수르에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장차 그의 백성들이 당할 징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11절 우리성경은 ‘쇠사슬로 결박하여“이나 원문은  갈고리(”호아흐“)” 네호세트”(놋쇄로 된 쇠사슬) 뜻은 (코에) “갈고리를 채우고 청동의 족쇄로 묶어“ 끌고갔다. 이것은 후에 여호야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므낫세는 극적으로 회개한다.

첫째,12절, 얼굴을 구한다.  우리말 성경엔 ”여호와께 간구하다“이나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그분의 언약적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민6:24)

둘째 므낫세는 ”크게 겸비하여“” 7: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스스로 겸비하고 나를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므낫세의 회개가 그를 다시 복권케 한다.

 

절망의 나락에서 회개를 통해 회복을 체험한 므낫세의 통치방식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진다. 여호와가 하나님인 것을 고백한다. 그리고 우상을 제거한다. 므낫세의 회복은 포로후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보여주는 해답이다. ’비록 우리가 언약을 어겨 징계를 받았다 할 지라도 므낫세가 회복한 것 같이 우리도 회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므낫세의 뒤를 이은 암몬은 더욱 악행을 감행한다. 암몬과 므낫세를 대조한다.  결국 암몬은 암살로 생을 마감한다.

 

34장,분열 왕국에서 남유다는 20명(아달랴포함) 북은 19명의 왕들 중에 긍정적인 평가는 히스기야와 요시야이다. 특히 요시야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왕하23:25에“요시야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다”고 기록한다.

 

역대기의 강조는 유월절이다. 열왕기하에서는 단 두줄로 끝나지만 역대하에서는 19절을 기록한다.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 남유다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었다. 므낫세와 아몬의 57년의 악정으로 우상숭배는 극에 달했고 아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8살이던 요시아가 왕이 되었다.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영국의 윈저성 꼭대기에 에드워드6세의 동상이 서있다. 9살에 왕이 된 에드워드, 동상의 왼손은 성경을 펼쳐있고 오른손의 홀은 성경의 한 구절을 가르키고 있다. 바로 대하 34:1-2절이다. 요시아와 비슷한 어린나이에 왕이 되었으나 요시야같이 위대한 왕이 되었다.

 

요시야를 도운 인물들이 있었다. 대제사장 힐기야, 여선지자 훌다, 서기관 사반,선지자 스바냐,예레미야... 2절은 역대하의 기준인 다윗의 길로 행했고, 우상타파,특히 산당을 모두 없앴다. 요시야가 직접 유대뿐 아니라 북이스라엘까지 다니며 우상을 박멸했다. 성전을 수리하다. 연보궤 아래에서 모세의 친필 언약책(신명기)을 발견한다.

언약책을 듣는 요시야는 옷을 찢으며 회개한다. 신명기의 핵심이 무엇인가? 언약파기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이 아닌가.(신28장) 웃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 정확히 유다멸망 54년(멸망 주전586년)전이다.

 

언약책 발견이 주전622년 즉 멸망 36년전이다. 언약책으로 인해 예레미야서가 기록되고 말씀운동이 일어난다. 34장엔 말씀이 여러번 반복된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말씀회복운동이다. 그리하여 포로기간 중에 회당을 중심으로 말씀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시야는 모든 백성을 모으고 언약체결식을 거행한다. (29-32) 이 언약체결식에는 제의적절차인 번제,화목제가 생략된다. 그저 말씀의 회복운동이다. 그리고 회개운동,우리가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이겠는가? 그것도 모세의 친필 언약책이 발견되었으니 당시의 국제정세는 유다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었고 이 위기 앞에 요아스는 철저한 반 바벨론 정책을 수립했던 것이다.

 

35장 역대기는 레위인의 위치를 강조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심에 설 자들이 레위인이다. 그러므로 역대상의 족보에서부터 레위인의 역사의식을 강조해왔다. 35:3절에서는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자로 나온다. 요시아의 개혁에도 레위인들은 앞장선다.

성전 보수공사기금도 레위인들이 거둬들인다. (34:9) 유월절 의식에서도 레위인들은 유월절 양을 잡고 가죽을 벗기는 등 제의행사에 적극 참여한다. 역대하에서 강조하는 절기는 유월절이다. 왜? 정체의식,우리가 누군가? 언약백성이다. 포로된 우리를 구원하시고 언약을 세운 절기인 유월절을 강조한다.

 

유월절을 통해 남북이 하나라는 것을 강조한다.  남북이 하나라는 의식은 역대하의 중요한 주제이다. 역대상1-9장의 족보에서도 이스라엘이 나온다. 34-35장에서도 북 이스라엘지역인 므낫세,에브라임,시므온,납달리까지 모이게했고 성전보수에도 참여시켰다. 

유월절은 히스기야때처럼 남북 모두 참여하여 성대히 치러졌음을 강조한다. 대하34:14절은 “모세가 전한 율법책”으로 모세의 친필 신명기인 것을 강조한다. 이 신명기는 개혁의 근거가 된다. 언약을 어길때 포로가 된다는 말씀을 듣고 요시야는 회개한다. 백성들도 그 말씀을 듣고 언약백성으로 살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정세는 주전 612년 앗수르는 메대와 바벨론의 연합군에게 멸망한다. 그러나 남은 앗수르의 군사들이 저항하자 애굽의 바로 느고는 바벨론을 탐탁치 않게 여겨 그들을 도와주러 하란으로 가고있었다.  앗수르의 멸망을 고대하던 요시야는 느고의 원정을 막기위해 므깃도로 올라가다 부상으로 전사한다.

 

36장,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역대기는 마지막장에서  절망적인 유다의 마지막 4왕들에 대한 기록과 고레스의 칙령으로 인한 회복의 소망으로 끝난다.

 

주전 609년 요시아의 죽음으로 둘째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올랐으나 3개월 후 애굽의 느고에게 폐위되어 애굽으로 잡혀간다.  느고는 요시아의 큰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여호야김은 11년간 유다를 통치한다. “여호아하스와같은 평가가 내려진다.”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김이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것과 성전의 기구들이 느브갓네살의 산당에 놓인 것은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598년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으나 석달만에 느브갓네살에게 쫒겨난다. 성경은 같은 평가를 내린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마지막왕인 요아스의 셋째아들 시드기야가 왕이된다. 11년 통치 기간 역시 같은 평가를 내린다.

 

시드기야에 대한 역대하의 기준은

첫째,선지자예레미야의 말을 거부한다.

둘째,언약파기(13)

결국 유다는 망한다. 그러나 열왕기와 달리 역대하의 평가는 21절 ,땅이 70년 안식을 누릴 것 이라 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유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고 페르샤는 회복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특히 고레스의 칙령을  회복의 출발로 삼고 있다.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헤세드(언약적 자비)를 베푸시어 당신의 언약을 성취해 나가신다. 하나님나라의 역사 진행과 역사의 방향을 바로보고, 포로후 에는 언약을 지켜나가야 할 그들은 여전히 실패한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언약의 성취를 결국 이루어나가신다.

 

 

 

 

 

 

 

 

 

 

 

 

 

 

 

 

 

 

 

 

 

 

 

 

 

                         에스라

 

 

 

에스라-느헤미야는 시간적으로 구약의 마지막 연대기를 다루고 있다. 성전은 불타고 유다는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백성들의 질문은 다윗언약은 끝났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온다.

 

에스라-느헤미아서는 “여호와께서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스1:1)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감동시키시매“는 ”잠자던 사람을 깨운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잠자는 역사를 깨우셨다는 것이다.

 

고레스를 도구로 쓰셔서 그를 깨우셨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돌아온 백성들의 숫자는 너무나 미약했다. 출애굽은 200만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몇 만에 불과하다.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의 명령은 막중했다. 에스라-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 반복한다.(스7:6,9,28.8:18,22,31 느1:10.2:8,18) 느헤미야는 일을 할때마다 기도로 도우심을 간구했다.(느2:4.4:4-5,9 .5:19.6:9,14.13:14,22,29,31) .스8:21-23.

 

또 하나의 강조는 언약적자비 (헤세드)이다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는 계속되고 있었다. 구약에 250번이나 나오는 헤세드, 에-느에서도 8번 나온다.(스3:11.7:28,9:9 느1:5.9:17,32 .13:14,22) 특히 느9:17의 에스라의 언약적자비를 구하는 기도 “용서하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에-느의 가장 중요한 강조는 성전과 제의의 회복이다.

 

 

에-느의 역사적배경

 

고레스(Cyrus 2세:주전559-530)는 메대와 소아시아,바벨론을 점령하고 페르샤를 세웠다. 후에 알렉산더에게 망할 때까지(332) 200년이 넘도록 가장 큰 제국이었다.  이 기간 동안 유다 역시 페르샤의 속국이었다. 고레스는 포로된 백성들을 귀환 시켰다. 그리고 자신들의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후원 하였다. 이는 변방을 안정시키며, 세금과 공물을 통한 국가 수입의 증대를 가져왔다.

 

세스바살(스룹바벨)이 최초의 귀환자들을 이끌고 돌아왔다.(스1:8,11) .그러나 요세프스의 기록대로 이미 안정된 삶을 버리고 돌아오려는 사람들은 적었다. 다윗왕국의 회복에 대한 열정과 믿음의 사람들이 참여했을 것이다.  돌아온 그들은 이년 이월(스3:8)에 의욕적으로 성전 공사를 시작했으나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 땅에 거주하고 있었던 자들(사마리아)도 참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거절했고 긴장은 고조되었다. 결국 충돌이 일어났다.  유대인들은 실망했고 고레스가 전쟁에서 죽은 후 지원도 끊어졌고 돌아온 이들은 생계유지도 힘들었다. 결국 성전공사는 중단되었고 오히려 언약을 의심하는 자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때 고레스의 아들들이 왕권을 다투는 중에 다리오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된다.(522-586) 이런 와중에 페르시야 제국 전체가 민족 독립운동의 불길이 일어났다. 귀환한 유대인들 역시 잠자던 소망이 일어났다. 학개는 “만국을 진동시킬 때가 왔다”(학2:6-7),라고 예언했고, 스가랴의 예언(슥1:15-21)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 그들은 흉년이 들었다. 경제적 곤란은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고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빠졌다. 

 

선지자들은  총체적 난관이 성전건축의 사명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선포했다.  갖은 어려움속에 다리오 6년 아달월(3월)에 스룹바벨성전이 봉헌되었으니 성전이 파괴된지 꼭 70년 만이었다.(슥1:12,7:5) 스룹바벨성전은 언약공동체를 하나되게 했다. 그러나 페르시야의 후원으로 지어졌기에  페르시야 왕을 위한 제물과 기도가 드려졌다. (스6:10) 이스라엘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했다.

 

다리오의 뒤를 이어 아하수에로가 즉위했다.(485-465) 그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바벨론의 반란을 진압했다. 에스라 4:6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아하수에로에게 고소했고 성벽건축의 중단명령이 내려졌다. 아하수에로가 죽고 와스디 사이에서 태어난 아닥사스다가 왕이 되었다. (464-424) .유대인들은 계속 귀환했다. 스룹바벨이후 총독들은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고 그들의 사욕을 채웠다.(느5:4,15). 유대인들은 다시 성벽재건을 시도했으나 그 땅의 백성들이 계속 반대했다. (스4:7)

 

공사는 또 중단 되었다. 이때 에스라가 왕의 전권대사 자격으로 1500명을 이끌고 귀환한다.  에스라는 언약체결식을 통해 언약공동체를 세운다.   에스라가 귀환한지 12년후 느혜미야가 귀환한다.(3차귀환,445년,느2:1) 느혜미야는 숙원이었던 성벽공사를 불과 52일 만에 완공한다. 그리고 개혁을 시도하며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금지시켰다. 주위의 민족들과 섞이면 안되기에 언약공동체를 회복하는 관점에서 금지시킨 것이다.

 

 

에-느의구조

 

히브리어 성경에는 한권으로 되어있다. 느혜미야서 1:1절에 “아닥사스다왕 제 이십년 기슬르 월에”이라고  우리말 성경에 기록되었으나 히브리어 성경엔 “제 20년”이라는 말만 나온다 우리말 성경에 삽입한 이유는 당시의 독자들은 왕이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책이 아닌 한권이라는 것이다. 또한 두권이 아닌 한권 이라는 것은 두책의 내용이 서로 섞여 있다는 것이다. 에-느는 약 100년을 다루고 있다.

 

내용

1장,고레스는 사44:28-45:7에 이사야가 150년 전에 예언한 인물이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귀환케하신다. 역사의 주인은 고레스가 아닌 여호와라는 것을 “여호와께서” 라고 계속 강조한다. 하나님나라의 역사의식을 강조하고있는 것이다.

 

고레스는 주전539년에 별다른 저항없이 바벨론 성에 입성했다. 고레스는 주전538년 조서를 통해 성전재건을 명령한다.  이에따라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42,360명이 귀환한다. 선지자 학개,스가랴의 지도와 에스라의 통곡기도(스9:3),느헤미야의 눈물의 기도(느1:4)를 들으셨다. 그들은 끊임없는 역경을 이겨냈고 마침내 다리오 2년(주전519)에 재건 된 건축이 다리오 6년에 완공시켰다.(주전516)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도우심인 것을 선포하고 있다.

 

2장,1차 귀환:스룹바벨, 2차귀환:80년후 에스라, 3차귀환:느헤미야

2:2절에 나오는 느헤미야는 총독 느헤미야가 아니다. 모르드게도 동명이인이다. 명예로운 귀환자들의 명단을 보자. 제사장은 4259명(36)이다. 전체가 42,360명 인데 거의 10분의 1정도나 된다.

제사장은 포로시에도 직분을 유지했다. 또한 새로운 하나님나라의 건설에 앞장섰다. 그러나 레위인들은 고작 74명이다. 어찌된 것인가? 레위인들의 지위는 제사장과 달리 보잘것 없었다. 그들은 레위인의 직분을 버리고 세상 직업을 갖기 시작했다. 43절의 느디님들이 누구인가? 옛날 여호수아와 거짓 언약을 맺고 하나님 성전에 나무패며 물 깃는 자들 ,즉 기브온족이 아니던가? 그들이 은혜(감동)받고 돌아온 것이다.

또한 55절의 솔로몬의 신복(노예)들도 돌아왔다. 천대 받던 그들이었으나 믿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59절 이하에 족보가 없는 자들 중에도 돌아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즐겁게 성전건축의 역사를 시작했다. 

 

3장:성전재건의 단계

1단계  성전재건 착수(3:1-13,4:1-5)

2단계  사마리아인의 반대와 폐르시야의 비협조(4:6-23)

3단계  다리오왕2년에 재건(4:24)

4단계  학개,스가랴의 활동

5단계  봉헌과 유월절(6:13-22)

사마리아인들의 연합을 왜 반대했나? 하나님나라의 건설 목적이 다르다. 정체성이 다르다.

 

3장,6절,땅의 백성들이 적의에 찬 눈초리로 지켜보는 가운데 7월 초하루부터 번제를 드림으로 제의의 시작과 함께 성전재건이 시작된다.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며 울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기뻐한다. 7월 1일은 나팔절이며 초막절기가 시작되는 달이다. 그들은 감격스럽게 번제를 드림으로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11절, 시편을 낭독하며 하나님의 헤세드를 노래하고 있다. 성전건축의 역사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며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4장,귀환공동체의 환호성은 그 땅의 백성들에게는 재난의 전조처럼 들렸다. 그들은 교묘하게 방해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도 여호와를 예배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하17장은 그들을 우상숭배자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그들과의 연합은  신앙의 순결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대적자들의 의도는 결국 방해라는 것을 알게된다. 자신들의 기득권 상실앞에 오랫동안 방해공작을 펼친다. 538년 귀환해서 520년까지 중단된 것이다.

 

대적자들은 사마리아인이다. 북이스라엘이 망한 후 수도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혼혈을 이루어 살던 사마리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은 귀환공동체였다. 그들이 성전을 세우고 성전중심으로 하나된다면  그들에게 가장 큰 위협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집요하게 방해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늘 대적에게 부딪힌다. 사람,환경이다. 귀환공동체 ,그들은 어떻게 극복하고 승리했는가?

 

사마리아인들은 먼저 함께하자 했다. 물론 거짓이다. 귀환공동체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혼합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마리아인들은 본격적으로 방해하기 시작했다. 뇌물을 주어 페르샤 관리들을 매수했다. 에스라 느헤미야는 100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끊임없이 성전과 성벽공사를 방해해온 그들이다. 6절 아하수에로부터 아닥사스다,다리오 까지 뇌물 공세를 폈다. 결국 그들의 상소는 받아 드려졌고 다리오 이년에 성전공사중단의 조서가 내려왔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23-24) 그럴수 없다.

 

5장에서 선지자들은 성전재건에 적극 개입한다. 5:1-2은 학개와 스가랴의 멧세지를 요약한 것이다.선지자들의 격려와 도움이 있었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가 하나되었다. 5절은 하나님이 돌아보셨다. 결국 6:13-15절 성전공사 재개를 허락받았고 다리오 6년에 완공된다.

 

6장은 성전재건의 완성과 봉헌식을 소개한다. 이스라엘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12마리로 속죄제를 드리고 성전봉헌식을 행한다. 새로운 공동체는 12지파모두의 공동체인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킨다. 유월절은 정체성 확립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언약백성이다.

 

7장,에스라서는 성전과 제의회복,느헤미야서는 성벽재건과 모세의 율법에 기초한 공동체 건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에스라는 성전재건 후에 개혁하고 느헤미야는 성벽재건 후 공동체를 개혁한다. 에스라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6장은 제2성전 건축 ,7-10장은 부흥운동이다. 1절의 ‘이일 후에는“ 성전건축 후 58년이 지난후이다. 포로에서 돌아온지는 약 80년이 지났다. 그들의 신앙은 형식적이 되었고 먹고 사는 일에만 분주했다. 또한 토라를 가르칠 사람도 없었다.

 

에스라는 개혁의 주체인 자신의 정통성을 족보를 통해 보여준다. 다윗 때 대제사장 사독의 오대 손, 아론의 16대 손으로 대제사장의 후손인 것과 학사(모세의 율법에 정통한자)인 것,그리고 페르샤의 고위관리인 것을 보여준다. 학사 에스라는 서기관,율법학자,대제사장으로 아닥사스다왕의 조서를 가지고 돌아온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구하며 돌아온다. 무사히 돌아오자마자 28절 감사기도를 드린다. 기도 중에 은혜(헤세드)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하나님의 언약적자비에 대한 감사를 드린다. 6절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으나 에스라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채 귀환한다.

 

8장, 귀환자의 명단은 1,772명이나 가족,종들을 합해 약 1만명정도로 추산 할 수 있다. 에스라는 제의의식의 준비를 위해 레위인을 수소문 했으나 한명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셔서 38명을 확보한다. 감사하게도 느디님사람 220명이 자원했고 그들의 영광스러운 이름들이 기록되었다. 

 

돌아온 사람들이 제사장,다윗의 자손 12지파,레위인이라는 것은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에스라는 18절 성전의 기명을 운반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강조한다. 이전 까지 일인칭이었으나 34,35절은 3인칭으로 바뀐다. 출발전에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구하였다. 왜냐하면 왕의 조서와 금,은 성전의 기명들이 있었고 주위에 도적,강도,매복자들이 있었기에 무사귀환을 놓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무사히 돌아왔다 .

 

9장은 에스라의 부흥운동이다.성전은 완공되었고 제의는 회복되었으나 형식적인 신앙으로 변질되었다. 더구나 이방결혼이 성행한 것을 보고 기가막혔다. 그것은 곧 우상숭배와 직결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시간이 흘러 언약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방결혼의 금지는 정체성회복이다. 오늘날 국제결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에스라는 기가막혀 옷을 찢고 괴로워하며,하루종일 하나님앞에 근신한다. (3-5)

 

에스라의 행동은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방결혼의 금지라기보다. 주변 인종과의 금혼이었다. 에스라의 기도는 하나됨,고백,변화의 결단,언약적자비에 대한 믿음이다. 에스라는 1인칭복수 “우리”를 쓰며 자신이 먼저 회개한다. 부흥은 자신의 죄,지도자의 자복부터 시작한다. 에스라의 고백은  과거의 죄,열조의 죄,언약파기의 죄를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적자비(헤세드)를 구하고 있다. 9절 우리의 언약파기에 하나님은 헤세드를 베푸사 우리를 멸하지 아니하시고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셨는데 우리가 언약적자비를 배반하였나이다. 9절의 긍휼은 “헤세드”이다.

 

10장 백성의 남녀,어린아이의 큰 무리가 에스라와 함께 크게 통곡한다. 순식간에 회개운동이 번졌다.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에스라와 함께 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그들의 결단은 언약적자비(헤세드)에 대한 믿음이다. 그들은 3절에 언약체결식을 한다. “우리”라는 말이 9장과 10장에 반복됨으로 공동체의식이 고조된다. 이때는 우기여서 큰 비가 내렸다.(9,13) 오래동안 살고 있었던 이방인 아내와 자녀들을 내어보내면서까지 그들은 언약을 지키려 힘썼다.

 

 

 

 

 

 

 

 

 

 

 

 

 

 

 

 

 

 

 

 

 

 

 

 

 

 

 

 

 

 

 

                        느헤미야 

 

 

 

느헤미야의 리더쉽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주전465-424)의 술관원으로 신임을 받았고, 민족을 사랑했으며,기도의 사람, 비져너리 ,탁월한 행정가, 비젼을 소유했던 인물이다. 암울했던 시대에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했고,언약공동체를 회복시켰으며,영적부흥운동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1.관심과 사랑의 리더쉽

왕의 신임을 받고 왕이 가장 신뢰하는 ,그리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던 느헤미야,그러나 늘 예루살렘이 그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은 그는 수일동안 슬퍼하며,금식하며,기도했다.

 

2.기도의 리더쉽

예루살렘을 위해서도 기도했지만 왕에게 나가기 전에도 기도했다.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다. 성경적 리더쉽은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또한 기도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하시며 모든 능력은 기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느혜미야는 하나님의 언약적자비를 구하며 “우리“라는 말을 반복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

 

3.비젼의 리더쉽

비젼은 야망,꿈,욕망과 다르다. 하나님이 주체가 된다.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이다. 성령이 함께하신다. 비젼은 기도 할 때 보여주신다. 느헤미야는 기도 할 때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느2:12)에 대한 비젼을 가지고 이 비젼이 형통하게 이루어 지도록 기도한다.

 

4.때를 기다릴 줄 아는 리더쉽(느2:1-4)

느헤미야는 기도로 왕의 마음과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처음 소식을 접한 때는 기슬월, (11월-12월) 중순이다. 그 때부터 니산월, 즉 3월-4월 중순까지 4개월 이나 기도하며 왕에게 나아가고자 기다렸다.  드디어 하나님은 기회를 주셨다. 기도하며 기다릴 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준비하신다.

 

5.구체적 전략을 세우는 리더쉽(느2:11-16)

비젼을 이루기 위해서 느헤미야는 구체적 전략을 세운다.정확한 현실직시, 철저한 준비로 불과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한다.

 

6.동기부여하는 리더쉽(느2:17-18)

격려하고,동기를 부여하는 느헤미야는“ 일어나 건축하자” 라고 백성들에게 외친다. 비젼에 동참할 분명한 동기부여,그리고 목표제시를 통한 격려의 리더쉽이다.

 

7.팀웍의 리더쉽(느3:1-31)

성벽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어 책임지게 했다. 성벽 전체를 40개 구역으로 나누었고 조화롭게 진행되었다. "next" 라는 말이 반복된다.  은사별로 분담하고 조화로운 팀웍이 비젼을 성취했다.

 

 

내용

 

1장. 에스라는 주전457년 귀환하고 12년 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20년 즉 주전445년에 예루살렘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12년을 머문다.  이후 느헤미야는 다시 바벨론으로 돌아갔다가 예루살렘으로 오게된다. 느혜미야는 왕의 최 측근인 술관원장으로 있을 때 3절의 예루살렘성의 소화사건을 듣게된다. 이 사건은 에스라 4:23의 사건으로 주전 458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느헤미야는 문제해결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내용은 신명기를 기초로하고 있다. 5절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언약적 자비를 구하는 기도이다. 긍휼은 ”헤세드“이다. 느혜미야가 보여주는 최고의 리더쉽은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2장.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왕은 술 관원인 느헤미야가 수심이 깊음을 보고 그 이유를 물으며, 예루살렘성 중건을 허락한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면서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를 받게된다. 느헤미야는 밤에 비밀리에 예루살렘 성 시찰에 나선다. 이후 성재건을 시작하게 된다.

 

느헤미야는 성문 소화를 듣고 왕앞에 나가기 까지 4개월을 기다리며 기도한다. 왕에게 말할 때에도 지혜롭다. 3절 “나의 열조의 묘실에 있는 성읍” 예루살렘이란 표현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는 지혜로운 표현이다.4절 왕앞에 나갈 때도 목도(잠시 기도하는 것)한다. 기도가 생활화 된 것을 보여준다. 느헤미야는 왕의 조서를 통해 안전하게 유다에 올 수 있었던 것과 성전건축의 목재를 얻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인 것을 고백한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느헤미야의 첫 번째 대적자들이다. 산발랏은 벧호른의 토착민이다.(사마리아 총독) 도비야는 암몬사람이다. 도비야의 뜻은 “여호와는 선하시다”이다. 아마 그의 부모는 여호와를 믿었을 것이다.  도비야는 유다 여러 귀족들과 서신 왕래를 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쉽과도 교제했으며 예루살렘 성전 뜰에 방을 가지고 있었다.(느13:7) 도비야는 암몬지역을 다스리던 총독으로 보여진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온지 3일후 야간 잠행을 나간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대상이었던 것이다. 골짜기 문부터 분문 까지 약 500미터 정도이다. 이후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이 선포되자 대적자들은 두가지 반응을 보인다. 업신여김과 비웃음이었다.

 

3장.느헤미야가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와 경건,그리고 리더쉽,지혜,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전 445년 그러니까 주전 586년 멸망한지 141년이 지났다. 예루살렘은 불탔고 성벽은 무너져 거대한 돌들이 골짜기로 굴러 떨어진 채 방치되었다.  성벽 수축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445년8월 1일에 시작하여 그해 9월 21일 즉 52일 만에 완공한 것이다.

 

어떻게 이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첫째,자신의 집 부근의 성벽을 쌓게했다.

둘째,그들은 다른지역으로 이동 할 필요가 없다.

셋째,공격을 받을 경우 가족을 위해 끝까지 싸울 수 있었다.(동기부여)

넷째,은사에 따라 진행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naxt:29번 등장)라는 말이다. 그들은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졌다.(ex,김장) 그리고 계속 격려한다.(격려공동체,위로공동체) 무너진 성벽(가정,교회,민족)을 수축하는 일은 이렇게 가능했다.

 

성 안 뿐 아니라 성 밖의 사람들도 동원 되었다. 여리고,드고아,기브온,미스바에 사는 이들은 예루살렘 거주자들이 할 수 없는 지역을 맡았고 이를 잘 수행했다. 제사장들도 참여했다. 그들은 양문을 수축했다.  이문은 성전으로 예배하기위해 통과하는 문이기 때문이었다.동시에 가장 중요한 문이었다. 예수님도 이 문으로 십자가지고 나가셨다.  또한 금장색,향품장사,레위인,상인,심지어 여자들도 참여했다.

 

성벽재건의 순서는 북쪽에 있는 양문에서부터 시작되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어문은 고기를 들여오는 문이었다. 멀리 드고아 사람들도 참여하였으나 정작 드고아 귀족들은 동참하지 않았다. 8절,관리들도 참여하였다. 10절에 보면 (23,29,에도) 자기 집과 마주한 성벽 즉 작은 부분이지만 자신에게 할당된 일에 최선을 다했다. 12절은 예루살렘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과 딸까지 이일에 참여했다.  14절의 분문은 힌놈의 골짜기로 통하는 문으로 쓰레게를 버리는 곳이었다. 후에 가룟유다는 여기서 쓰레기인생?을 마감한다.

 

4장.대적을 이기는 법.성벽공사가 시작되자 산발랏은 크게 분노한다. 느헤미야측과 산발랏측의 대조를 극대화시킨다. 산발랏은 페르시야에 고소장을 보낼수 없었다. 느헤미야가 이미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산발랏은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분노에 가득찬 산발랏의 말에 도비야가 가세한다.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성벽이다”. 왜 그들이 이토록 방해 할까? 귀환 공동체가 성전을 완공한지는 71년이 지났다.(주전516) 그러나 성전 중심의 제의는 여전히 불안했다. 왜냐하면 성벽이 훼파된 상태에서는 안전을 보장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귀환공동체가 성벽을 완공한다면 강력한 국가가 될것이고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에 그들은 집요하게 방해해 왔고 성공시켰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달랐던 것이다. 75년전 귀환 공동체는 대적의 공격으로 16년간 중단되었던 성전건축이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격려로 4년만에 완공했다. 하여 느헤미야는 이일의 성공은 하나님의 뜻임을 알기에 간절히 기도한다.

 

대적자들의 공격도 한층 속도를 내기시작했다. 아라비아,암몬,아스돗까지 확산되었다. “힘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자”고 했다.유다공동체의 위기였다.그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하며,파수꾼을 세워 방비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절망에 빠진 자들도 있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대적이 가까운 곳에서는 느헤미야에게 10번이나 와달라고 연락하고 있다(12절).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이 성벽공사에 집중 할 수 있도록 경계망을 강화하고 공동체 전체가 협력하게 한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귀환 공동체의 성벽재건의 목적이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온전히,그리고 자유롭게 예배드리기 위함이다. 이것을 잘못 적용하여 교회건축이나 확장에 무리하게 적용하려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적에게 승리하는 법은 기도와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여준다. 절반은 성을 수축하고 절반은 그들을 지켰다. 출17장에서 여호수아는 산 아래서 싸우고 있었고 모세는 산위에서 기도하고 승리를 얻었다. 사탄의 전략은 조롱,수치,절망을 무기로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듯이 승리 할 것이다. 적은 계속 침략 할 것같이 했으나 결국은 침범하지 못했다.  반복 단어는 “우리“이다. 느헤미야서에서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라는 표현을 쓸 뿐이다.

 

5장.내부의 어려움. 75년전 중단된 성전공사를 재개했을 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너무 유사하다. 둘다 흉년의 문제이다. 생계의 어려움(2)밭,포도원,집을 저당 잡히고(3) 그 담보로 세금을 내었다.(4) 가난한 사람들은 종으로 팔렸고,재산은 남에게 넘어갔다. 이에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을 책망한다. 언약공동체로서의 규정들을 지켜 나갈 것. “우리”공동체(8,9,10)를 강조한다. (참조 4:4) 자신을 포함한 우리 공동체, 이 말에 모두 아멘하고 그대로 행하였다.(13)

 

느헤미야의 재임기간은 주전445-443,(아닥사스다왕20-32)이다. 이전 총독들은 착취하였으나 느헤미야는 토지도 사지 않았다. 녹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19절의 언약적자비를 호소하는 기도는 13장에서도 세 번이나 반복된다.

 

6장.위기와승리,

성벽재건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적자들은 느헤미야를 죽이기 위해서 오노 평지에서 만나자한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영적통찰력은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4번이나 거절한다.  이제 그들은 5번째 편지는 일부러 봉하지 않은채 다른이들이 볼 수 있도록한다.

그 내용은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은 페르샤에 모반하려는 것이라 소문을 내기위한 것이었다.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나자하였으나 느헤미야는 역시 거절한다. 급기야 그들은 선지자 스마야에게 뇌물을 주어 거짓말로 느헤미야를 꾀게한다. “성전안에서 나와 함께 있어야 산다”. 갖은 공격과 위협속에서 결국 승리한다. 16절, 52일 만에 역사가 이루어졌으며, 모든 대적이 두려워 스스로 낙담하였다. 느헤미야서에는 자신이 한일이라고 한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7장.우리가 흔히 제2 성전시기라고 불리우는 시기는

페르시아통치기 주전539-331,

헬라통치기331-140,

하스모니아왕조 독립기140-63,

로마통치기63-주후70년 이다. 이 시기에 묵시문학이 발전했다.

 

1.페르시아통치기:대제사장의 위치는 포로 이전보다 상승했다. 총독은 정치를, 대제사장은 종교를 양분하여 통치하던 시기였다.  땅에 남은 자와 귀환자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사회적 불안 요소는 여러 분파들을 낳았다.

 

2.헬라통치기:알렉산더의 통치는 문화,정치의 통일성을 가져온다. 무역과 대규모 농사는 지파개념을 파괴했고 빈부의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했다.

 

3.하스모니아왕조와 로마시대: 마카비시대에는 대제사장의 권한이 더욱 커져 왕으로서의 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들어서면서 대제사장의 권위는 추락하며 주후 70년 멸망후에는 성전 중심이 무너진다. 또한 종말론 사상이 강하게 나타나며 제2성전 말기에 외경,위경,쿰란 문서들이 생겨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성전은 매우 중요하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언약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집이 성막이다. 그 성막이 출애굽한지 거의 500년 만에 솔로몬에 의해 건축되어 성전 중심의 삶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이후 제2성전 시대에는 무너진  다윗 왕조를 대신하고 있었기에 더욱 중요했다.

 

유다가 망한 해가 586년, 예레미야의 70년예언 대로 라면 516년에 해방되어야하는데 사실 1차 귀환은 537년인 포로49년 만이다. 어떻게 된것인가.? 예레미야의 예언이 틀렸는가? 아니다.

성전파괴가 586년, 제2성전 건축이 516년, 바로, 다리오 6년이 성전건축 완공의 해이다. 이처럼 성전 재건까지를 포로기로 본 것이다.   에스라의 기록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성전의 중요성과 언약, 이제 성전중심으로 언약을 지키며 살자, 다시는 실패하지 말자. 느헤미야서는 이 성전을 보호하는 성벽재건의 역사이다.

 

8장.백성들은 율법을 듣고자하여 수문앞 광장으로 모여든다.  에스라에 의해 읽혀진 율법책(신명기)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린다. 이는 회개의 눈물이다. 신명기의 클라이막스가 어느 부분인가? 신28장이 아니던가? 거기에 기록된 것이 무엇인가? 언약을 파기하면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는 것. 그리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 아닌가?

예언 대로 된 것에 대한 회개,그리고 눈물. 다음날 다시 모인 그들은 전날에 이어 듣기 시작한 곳이 초막절 부분이었다. (아마 신명기16장) 수문 앞에 모인 날이 마침 7월 초하루였다.  “초막절을 지키자“라고 그들이 말했다. 17절 여호수아 이후로 이런 초막절이 없을 정도로 은혜의 초막절이었다.

 

9:1절 많은 백성들이 다 모였다. 회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은혜는 멈출 수가 없었다. 하여 38절 언약체결식을 거행한다. 특이한 것은 제의적절차가 생략되었고 대표자들이 도장을 찍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포로 이후에는 언약체결식에서 제의적절차가 생략되고 말씀부흥운동이 일어난다. 포로기간동안 회당중심의 말씀운동,서기관들의 성경연구가 말씀운동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들의 명단이 10장에 기록되었다.

언약체결식은 자발적이었고. 아래로 부터의 개혁이었다. 또한 대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말씀운동이다. 제의적요소는 이제 말씀운동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어져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1장,  예루살렘 성전건축에 참여하지 못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 따로 성전을 세우고 자신들의 정통성을 세우려한다.

느11장은 예루살렘 주변에 정착한 사람들의 목록을 다루고 있다. (참고7장) 그들은 대상9:2-9,10-13,13-16,17-27과 거의 일치한다. 공통점은 지도자-제사장-레위인-기타 봉사자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11장은 변방이 중심이 되는 비젼이다. 성벽이 완공되었으나 적의 침공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아무도 예루살렘에 거주하려하는 자가 없었다. 이에 지도자들의 솔선수범,그리고 전체인구 중 10/1을 제비뽑아 이주시킨다. 그리고 자원하는 사람들이었다.

 

12:27-43의 성벽봉헌은 7:1-3과 연결된다.  12:31,38,40에서 1인칭으로 기록된다. 성벽을 봉헌하는 기쁨의 축제는 시편의 음악과 악기를 연주하며 마치 성전 봉헌식 같이 성대하게 행해진다. 전체 이스라엘이 참여하는 하나되는 축제였다.

 

13장은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총독임무를 마치고 페르샤로 가기전(1-3),그리고 페르샤에서 귀국한 후 두 번째 임무를 수행한 때(4-31)이다.

첫 번째 개혁: 이제 성전과 성벽이 완공되었다. 느혜미야는 모든 백성이 모인 자리에서 말씀회개운동을 일으킨다.  백성들은 즉시 시행한다. 그리고 서약한다.

두 번째 개혁:느헤미야는 12년을 총독으로 있다가  페르샤로 갔다. 다시 424년 귀국한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 사이 대적들이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모든 개혁을 망쳐놓았다.  하여 다시 개혁을 시작했다.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도비야였다. 도비야는 예루살렘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성전에 방을 내어 거주했다. 십일조와 헌물의 저장고에 그의 방이 있었다. 성전의 재정을 장악했다. 레위인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 레위인들은 농사지으러 떠났고 성전의 기능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여기부터 청결케 한다. 재물을 쥐고 있었던 도비야를 축출하고 제사장들과 레위인이 생계 걱정없이 성전을 섬기기로 서약케하고 실행한다. 대제사장 엘리아쉽도 축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헤세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13:14,22 헤세드가 주제 단어이다. 하나님의 자비 없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또한 우리가 감동(은혜)받지 않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역동적인 에스라 느헤미야에 의해 성전과 성벽공사가 완공됨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 된 것이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처음에도 마지막에도 기도로 마치고 있다.

 

 

 

 

 

 

 

 

 

 

 

 

 

                        다니엘

 

 

 

 

유다왕 여호야김 3년에 바벨론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성전기구들과 다니엘,유다왕족과 귀족을 끌고간다. 그리고 바사왕 고레스 3년에 이상을 통하여 다니엘에게, 바사시대를 지나 헬라(10:20,11:2)시대까지 보여준다. 주전 605-160년 까지의 긴 기간을 보여주고 있다.

 

다니엘서의 가장 큰 주제는 세상통치와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관련되어 지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나라는 하나님의 섭리안에서만 유효할 뿐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언약백성이 고난을 받고있을 때 위로가 되며 결국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세상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준다. 다니엘이 기도 할 때 하나님은 이 비젼을 보여주셨다. 또한 다니엘에게 지혜도 주셨다. 우리도 다니엘같이 기도하면 지혜와 비젼을 주신다.

 

 

배경

 

요시아왕이 주전 609년 죽은 후 이집트와 바벨론에게 농간을 당하던 시기는 매우 불안한 시기였다. 이후 유다의 멸망과 성전파괴,바벨론 포로는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다. 다니엘서는 이 시기의 배경을 갖고 있다.

 

고대근동의 강자였던 앗수르는 626년 아술바니발의죽음으로 세력이 약화되었고 그사이 바벨론과 이집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느브갓네살(Nabooolassar,625-605)은 625년 바벨론 왕조를 세운다. 616년 느브갓네살은 앗수르를 공격했다. 신흥국가 바벨론을 견제했던 이집트가 앗수르의 패잔병들과 바벨론을 대적했다. 처음엔 바벨론이 불리했으나 메대가 바벨론과 연합함으로 전세는 판가름났다. 결국614년 수도 앗술이 함락되었고 612년 니느웨가 함락되면서 앗수르는 멸망한다.

 

  이집트의 느고가 앗시리아의 패잔병을 돕기위해 출동했다가 므깃도에서 요시아와 전투를 벌였다. 요시아는 부상으로 죽고 느고는 방향을 바꾸어 예루살렘을 공격했으며 전쟁배상금으로 금1달란트와 은 100달란트를 요구했다. 왕이된 여호아하스(3개월 통치)를 애굽에 인질로 끌고가고 형 여호야김을 세운다.

 

메데-바벨론 연합군과 이집트 앗수르 연합군이 605년 갈그미스에서 결전을 벌였다. 결과 바벨론의 대승으로 끝났으며 이집트는 2인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바벨론과 이집트의 완충지대인 가나안에 이집트는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바벨론은 605년 갈그미스에서 이집트군을 대파한 후에 여세를 몰아 유다를 정복하러 나섰다. 가나안지역에서 이집트의 영향력을 뿌리 뽑겠다는 계산이었다. 유다는 바벨론에게 정복당했고 귀족,지식인,장인들을 끌고간다. 제국건설에 사용하겠다는 의도였다. 다니엘도 이때 끌려간다.

 

유다는 바벨론과 이집트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여호야김은 이집트가 세운 왕이요 또한 이집트에게 충성서약을 한 왕이었다. 그러나 바벨론에게 정복된 후 바벨론에게 충성 서약한다. 이런 상황에서 601년 바벨론은 이집트와 또 한번의 전투를 치르지만 무승부로 끝난다.

바벨론은 본국으로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은 후 598년 재차 가나안을 침공한다. 유다는 다시 전란에 휩싸였으며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가 바벨론에게 떨어진다.

 

여호야김은 함락되기 3개월 전에 죽는다. 그리고 597년 3월15일 느브갓네살에게 함락된다. 이때 약 8,000의 포로를 끌고간다. 이 가운데 에스겔이 있었다. 여호야긴왕을 끌고가고 꼭두각시 시드기야를 세운다. 이집트의 끝없는 압력과 로비 그리고 주변국가들의 동조로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하고 이집트에 충성맹세한다.  이때가 589년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바벨론은 다시 가나안을 공격했다. 유다를 즉시 돕겠다던 이집트의 지원군은 오지않았고 유다는 1년을 포위속에 버텼지만 결국 586년 여름 예루살렘성은 함락된다.

 

시드기야는 두 아들의 사형집행을 본 후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시드기야의 행방은 알 수 없다. 아마 가다가 죽었으리라 추측된다. 성전은 불타고 언약궤의 행방도 묘연해진다. 이렇게 유다는 멸망하고 만다.

 

이때를 배경으로 하는 다니엘서의 주제는 하나님나라의 영원성이다. 세상나라인 바벨론,이집트가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영원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당한 모든 원통한 것은 하나님께서 반듯이  갚아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역사는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여 나가고 결국 세상나라는 멸망 할 것이다.

 

 

구조

 

이중적 언어사용과 인칭변화를 주목해야한다. 1:1-2:4상 은 히브리어,2:4하-7:28은 아람어,8-12장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또한 1-6장은 3인칭 중심으로 ,7-12장은 1인칭 중심으로 되어있다.

 

1-6장은 왕궁의 사건 중심으로 꿈에 대한 해몽과 이방 왕들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보여준다. 7-12장은 미래계시가 중심이다. 하나님은 온 열방의 왕이시며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1-6장의 왕은 느브갓네살(1-4장),벨사살(5),다리오(6)이며 7-12장은 벨사살(7-8),다리오(9),고레스(10)로 구성되는 ABCD패턴으로 되어있다. 결국 2-7장의 아람어 본문은 교차대구법의 구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네 왕국(2장)                      A'.네 왕국(7)

          B.열방의 이스라엘 핍박(3)         B'.열방의 이스라엘 핍박(6)

       C.열방에 대한 하나님의섭리(4)    C'.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5)

 

 

이 구조에 의하면 다니엘서의 중심은 4-5장이다. 4장은 느브갓네살, 5장은 벨사살을 향한 하나님의 최후경고이다. 이들은 바벨론의 처음과 마지막 왕이다. 그러므로 2-7장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성취됨을 강조한다. 

 

세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바벨론에게 멸망했던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은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세계 공용어인 아람어를 2-7장에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통치계획을 만방에 알리려는 의도일 것이다.

 

 

신학적주제

 

다니엘서는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137:1-6은 슬픔으로 가득찬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여전히 언약백성을 사랑하시며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다니엘을 통해 보여준다. 9장의 다니엘의 기도는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보다 약해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언약을 이행치 않은 것에 대한 징계인 것을 보여준다. 징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약속의 땅으로 회복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1.유일신 사상 강조

다니엘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호칭인 여호와,아도나이,엘로힘을 통해 이방신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소유격과 같이 사용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함께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강조한다. 더구나 이방 왕들의 입으로 고백되는 하나님이다. “신들 중의 신”,“왕들의 주”,“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열방을 통치하시고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2.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왕들을 폐하시고 나라를 폐하시며,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가시는 하나님나라, 세상나라는 유한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하다. 다니엘에게 현실을 이기는 지혜를 주시고 미래를 볼 수 있는 비젼을 보여주셔서 하나님나라를 보게한다.  그러므로 세상 왕이나 권력자에게 무릎 꿇을 수 없다는 것이다.

 

3.다니엘서에 나오는 메시야사상

3장에 나오는 불속에 다니엘의 세 친구들과 같이 있는 존재가 누구냐? 6장에 사자굴속에 다니엘과 함께 있는 천사가 누구냐?

 

풀무불 속의 존재에 대한 4가지 견해

첫째,3:25의 “신들의 아들”이 인자(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견해이다. 제롬,칼빈,영 등이 동의 한다.

둘째,카일은 느브갓네살이 인정한 그대로 신들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는 비약이다.

세째,엘도스같은 이는 천사라 한다,

넷째,비평학자들은 본문 전체가 후대의 기록이므로 누구인지 물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현현은 성육신 하기전의 예수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을 구원하실 때 구원자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심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9:24-27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나온다. 9장은 다니엘의 기도이다. 주제는 언약의 하나님이다. 4절의 “내 하나님 여호와” 호칭이 언약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 언약과 헤세드 즉 언약적 자비를 호소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70년 후에 다시 회복시켜주겠다는 언약에 의지한 언약기도이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20-27절 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가지고 온다. 70년 보다 더 기다려야한다. 70이레라고 한다.  그때에 용서와 구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허물이 마치고,죄가 끝나며,죄악이 영원히 속죄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서 전체의 주제인 하나님나라의 영원성을 이해 한다면, 예언의 이중성,앞의 70년은 포로귀환, 뒤의 70이레는 메시야의 오심이 된다.

 

가브리엘은 믿는 백성에게 세가지 긍정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 예언한다.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 다는 것이다.

 

지극히 거룩한 자는 정관사가 없다. 메시야를 가르키는 것이다. 70이레 즉 70곱하기 7은 70은 포로귀환의 때이며 곱하기 7은 완전 수 즉 영원한 포로에서의 해방인 것이다. 또한 70곱하기 7은 490년, 즉 완전수인 490이 나타내는 그때쯤 오실 기름부음받은자이다.

10:5절의 세마포 입은 자는 계1:13-16절과 유사하다.

 

4.종말론 사상

메시야의 약속은 여호와께서 미래에 하실 일에 대한 계획과 그 계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해석에 있어서 그 중심에 메시야가 없으면 잘못된 해석이다. 다니엘이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메시야가 통치하는 나라이다. 그 나라는 영원하다.

 

다니엘서를 해석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숫자의 해석이다. 다음은 종말의 때를 계산하려는 시도이다. 다니엘서는 역사속에서 일어난 구체적인사건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백성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갖게하기 위함이다. 결국 그 소망은 메시야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있는 바벨론 포로인 언약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후에 돌아 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후에 일어날 여러제국과 왕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는 영원하지 못하다. 지상나라에는 구원의 소망이 없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가 임할 때 언약백성들을 구원 할 것이다. 그 나라는 기름부음받은 자를 통해서이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으로 승리하여라. 이것이 다니엘을 통해서 주시는 메세지인 것이다.

 

5.묵시문학

다니엘서에 상징과 은유,암호,숫자등이 사용된 이유는 다니엘서의 형식이 꿈과 환상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니엘서의 말씀은 묵시이다. 즉 꿈과 환상을 전하고 있다. 구체적이라기 보다 암시적이고 직설적이기 보다 비유적이다.

묵시문학으로 표현되어야 할 시대적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바벨론 포로시대의 바벨론치하 그리고 페르샤의 속국으로 이어지는 억압된 삶 속에서 암호같은 묵시의 상징 등이 문학작품으로 자리잡으며 다양한 해석을 갖게 된다.

 

 

내용

 

1장의 배경은 주전 605년 제 1차 바벨론 포로이다. 2절, 이 모든 일은 “주께서“하신 일이라 선포한다. 느브갓네살이 주권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자임을 선포한다. 느브는 그 도구일 뿐이다.

1장에서는 3번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개입을 통하여 일을 진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1장의 구조는 왕의 명령(3-5)과 신하의 순종(18-20): 하나님의 명령과 순종이다.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 것인가?  이것은 다니엘서를 보는 관전포인트이다.

 

다니엘은 왕의 명령에 불순종한다. ”뜻을 정하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이셨고 다니엘은 창조적 대안을 제시한다. 또한 탁월한 지혜를 다니엘에게 도구로 주신다.

우리도 세상과 싸울 “뜻을 정하면” 하나님께서 탁월한 지혜를 주신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이때가 아닌가? 믿음도 흔들리고,가치관도 흔들릴 때 뜻을 정하는 믿음이 있어야겠다. 하나님은 뜻을 정한 사람을 들어 쓰신다. 아브라함,모세,바울 모두 하나님께로 뜻을 정한 사람들이다.

 

욥은 고난속에서 하나님 앞에 순전을 지켰고 다니엘은 절대 권력앞에 순전을 지켰다. 바벨론 왕궁의 특별교육 3년은 바벨론화하는 교육이었으나 다니엘은 승리했다. 오늘의 세상교육과 가치에서 승리하는 것은 ‘뜻을 정하여’이다. 다니엘은 21절 고레스의 칙령으로 바벨론이 망하고 포로들이 귀환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결국 다니엘의 승리로 끝난다.

 

2장의 대조는 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이다.

세상나라의 눈에 보이는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와의 대조이다. 세상나라의 첫 나라인 바벨론의 느브는 왕이 된지 2년 후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바벨론의 술사,술객들을 불러들인다. 느브가 꿈을 꾸고 두려워하는 것은 절대 권력자보다 위에 계신 초월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기가 꾼 꿈의 내용도 일러주지 않고 해석을 명하는 폭군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한다. 다니엘도 죽을 상황에 놓인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보여주신다.

 

왕이 꾼 꿈은 거대한 신상이 왕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무서웠다(31) 신상의 엄청난 크기가 왕의 나라를 상징 한다면 거기서 나오는 두려운 광채는 이 나라가 뿜어내는 권위를 가르킨다.

 

신상의 몸의 일곱 부분은 다른 재료로 되어있는데 머리는 정금으로,가슴과 팔은 은으로, 배와 넓적다리는 놋으로, 다리는 철로, 그리고 발은 철과 진흙이 섞여 있었다. 재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올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한 뜨인돌이 날아와 신상을 부셔 가루가 되었고 날아온 돌이 태산을 이루고 온 땅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새로운 하나님나라를 의미한다.

 

다니엘은 왕에게 꿈의 내용을 말해 준 후 해석을 한다. 왕을 왕중의 왕이라 부르며 하나님께서 왕에게 이 땅을 다스리는 왕권을 주신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치자로 삼았으니 당신이 바로 금 머리인 것을 말한다. 다음의 나라들은 세계사 속에 나타날 나라인데  이들은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나라는 영원 할 것이다

 

왕은 엎드려 다니엘에게 감사하며 하사품을 내린다. 왕은 하나님을 “신중의 신” “왕들의 주”로 부르며 그 분만이 비밀을 계시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다니엘이 이 비밀을 알려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후 다니엘에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는 지위를 주었으며 친구들도 도를 다스리는 지위를 얻었다.

느브는 최고의 권력자,가장 넓은 땅의 주인,가장 강력한 군대,지상에서 최고의 성공자로 대변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 평안이 없었다.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평안이다. 가장 큰 복도 평안(샬롬)이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다니엘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안하다. 그리고 기도 할 때 해결할 지혜를 주신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유한한 것, 하나님나라만이 영원한 것이다.

 

3장의 사건은 느브가 금 신상을 만들어 모든 사람에게 낙성식에 참여하게 하여 절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느브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엎드렸으나 회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사드락,메삭,아벳느고는 이 낙성식에 참여하지 않았고 ,불만을 품은 자들이 왕에게 참소한다. 화가 난 느브는 그들에게 금신상에 절하게 하지만 그들은 거절한다.

왕의 분노로 결국 세 사람은 풀무불 가운데 던져진다. 그러나 그 불속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얻게되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본 왕은 감동한다. 마침내 왕은 하나님을 높이며 세 친구의 지위도 높여준다.

 

 

      왕의 질문(15)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답변(17)“”우리 하나님이... 능히 건져내시겠고“

 

 

대조법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 18절의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는 세 친구들의 절대신앙을 보여준다. 우상 숭배에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이다.

 

4장,느브갓네살의 두 번째 꿈

2장의 꿈은 강대국의 운명을, 두번째 “큰 나무”의 꿈은 강력한 왕의 운명을 보여준다. 이 둘은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하나님은 국가의 장래 뿐 아니라 개인의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1-18절 까지는 왕이 자신의 꿈 이야기를 1인칭으로 진술한다. 그러나 19절 이하,특히 28-33절에서는 3인칭으로 바뀐다. 인칭의 변화는 네레티브기법이다.

왕이 꾼 꿈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초자연적 계시이다.  땅의 중앙에 하늘에 닿은 큰 나무는 마치 바벨론의 중심에 세운 바벨탑을 연상케한다.  교만의 상징,혹은 인간의 형통을 상징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큰 나무가 왕을 가르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순찰자의 경고는 하나님의 경고임을 말한다.

 

왕에게 회개를 권고한다. 회개의 방법은 공의와 인자의 시행이다. 하나님의 속성인 공의와 인자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베풀라는 것이다. 인자는 “헤세드”를 쓰고 있다. 여기서 왕은 자신이 꾼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사실을 천명한 후에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 미친상태의 일을 3인칭으로 기술함으로 자신이 겪은 일을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왕의 교만은 30절 1인칭을 반복사용하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정한 기한이 찼을 때 왕이 하늘을 우러러 바라본 것(34)은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린 후 처음 한 일은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회복한다. 왕은 공적인 고백과 경배로 마친다. “그러므로 나 느브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오니....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다니엘서의 제1 청중인 포로된 백성들이 이 말씀을 보았을 때 자신들을 끌고온 세계최고의 권력자가 하나님앞에 무릎꿇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속에 얼마나 위로를 얻었을까? 동시에 하나님나라의 영원성을 알고 언약을 지키려 얼마나 힘썼을까?

 

5장,벨사살은 느브갓네살의 손자이며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다. 그는 바벨론의 영화를 과시하기위하여 큰 잔치를 열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기명들로 포도주를 마실 참이었다. 그들이 성전 기물들로 술을 마시고 신들에게 찬양할 때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등잔 맞은 편에 있는 하얀 벽 위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그 벽은 등잔을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벽에 쓰인 글씨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벨사살도 느브갓네살처럼 글자를 해석하기위해 점쟁이,점술가등을 부른다. 해석하는 자에게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겠다한다. 그러나 아무도 해석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하나님이 계시한 사람만 풀수 있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왕궁사람들 앞에 다니엘이 나타났다. 다니엘은 포상을 거부하고 해석을 시작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느브에게 통치권과 권세를 주었으나 교만하여 쫒겨났다. 들나귀와 함께 지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왕위에 세워 통치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벨사살은 이 모든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을 낮추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가지고 온 기명들로 포도주를 부어 마심으로 큰 죄를 범했다. 그리고 글자를 해석한다.

 

이것은 아람어로 쓰여진 것으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다. 메네는 “세어지다”라는 뜻으로 이미 벨사살의 통치의 날을 세어서 그 종말을 정하셨다. 데겔은 “저울에 달리다”라는 뜻으로 왕을 저울에 달아보니 모자란다는 뜻이며,바르신은 “나뉘어지다”라는 의미를 갖는 페레스에서 나온 말로 ,왕의 나라가 나뉘어 메데와 파사사람에게 넘겨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우바르신의 “우”는 “그리고“라는 접속사이다.

 

다니엘이 벨사살에게 해석하자,왕은 명령을 내려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는다. 다니엘은 거절하지 않는다. 금방 멸망할 나라,왕에게 상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바로 그날 밤 벨사살은 죽고 메대왕 다리오가 그 나라를 차지했다.

 

6장은 다니엘이 이방 궁정에서 겪는 6가지 사건 중 마지막 장면이다. 다니엘을 시기한 관리들은 다니엘을 무너뜨릴 음모를 시도한다. 30일 동안 오직 왕에게만 경배케하는 칙령을 반포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중단하지 않는다.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경배한다. 이것은 솔로몬의 성전봉헌식에서의 언약체결식의 내용이다. (참조:왕상 8:23-53)“...이곳을 향해 기도하면 들으소서...”

 

이를 본 신하들이 왕께 고하고 벌을 내리기를 간구한다. 그들은 교묘하게 먼저 왕의 조서를 확인하고 다니엘을 고소한다. 왕은 어쩔수 없이 사자굴에 던진다. 살아나면 무죄요 죽으면 유죄인 제도이다. 물론 살아나온 자는 없다. 그러나 왕의 말처럼 “너의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구원하셔서 다니엘의 무죄를 입증하셨다. 이제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과 그 가족들이 사자굴에 던져졌다. 그들이 땅에 닫기도 전에 그들의 몸을 사자들이 뼈까지 부수었다. 하나님을 의뢰한 자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왕은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려 다니엘의 하나님을 “사신 하나님”이시요“영원히 변치 않으실 분”으로 선포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넘어 만방의 왕임을 선포케 하신다.

 

기독교의 스피릿 중의 하나는 탁월성이다. 환경,고난,조건,현실을 뛰어 넘는 탁월성이다. 요셉,야베스....신28:1절 “언약을 지키면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겠고....” 단순한 비젼이 아니라 언약이다.

다니엘의 탁월성도 언약의 성취로 되어진 것이다. 6장은 다니엘의 믿음을 절정을 보여준다. 바로 “알고도의 신앙”이다. 죽을 줄 알고도, 감시하고 있는 줄 알고도,사자굴에 들어가야 할 줄 알고도......이것은 순교자적 신앙이다.

 

7장에는 히브리어“하자”(보다)라는 단어가 10번이나 나온다.(다니엘서 전체에는 18번) 이것은 하나님의 이상이 집중된 것임을 보여준다.

1-8절:첫째 짐승의 이상

 

 

2장                        해석                         7장

1.황금머리                바벨론    첫째짐승:독수리 날개가 달린 사자(4)

2.은으로된 팔과 가슴      메데,파사    둘째짐승:세개의 갈비대를 문 곰(5)

3.동으로 된 넓적다리      헬라      셋째짐승:네개의 머리를 가진 표범(6)

4.철로 된 다리             로마         넷째짐승:용처럼 생긴짐승(7)

5.철,진흙의 발가락        적 그리스도    작은 나팔(8)

6.뜨인 돌                 그리스도       하나님의 통치

 

 

13절의 “인자 같은 이”는 오실 메시야를 나타낸다. 그분은 7절의 옛적부터 계셨고 미래에도 영원히 통치하실 분이다.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특히 계시록13장에서는 악을 상징하는 어떤 짐승이 바다로부터 올라오는데 이는 다니엘서7:3의 바다에서 올라온 네 짐승을 연상케한다.

 

다니엘서의 인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준다. 계1:7절 구름타고 오시는 심판주는 단7:13의 “하늘 구름타고 오는 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단7:9절의 예수그리스도의 모습과 계1:12-16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같다. 다니엘서의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통치는 계시록의 영원한 하나님나라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하겠다.

 

8장의 이상은 벨사살왕 3년에 본 것이다. 3-4절의 두 뿔을 가진 수양은 20절의 메데-파사제국을 나타낸다. 로마역사가 Ammianus Marcellinus에 의하면 페르샤 통치자들은 군대 앞에서 행진 할 때 금으로 만든 양의 머리를 가지고 가곤 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두 뿔 중 나중에 나온 뿔이 더 크게 자랐다는 것이다. 페르샤의 고레스가 왕위에 오르기 전 메데는 거대한 나라였고 페르샤는 작은 나라였다. 그러나 주전 550년 고레스는 메데를 정복했고 서쪽으로 바벨론,시리아,소아시아를 정복하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북으로는 카스피해까지 남으로는 이집트 이디오피아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대 제국을 건설했다.

 

5-8절, 그때 갑자기 공격적인 숫염소가 나타나 숫양을 공격했다. 이 숫염소는 21절 헬라제국임을 밝히고 있다. 그 염소의 두눈 사이의 난 현저한 뿔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킨다. 그는 주전336년 20세에 왕이 되어 페르샤를 멸망시켰고 “ 그의 발이 땅에 닿지 않을 만큼 빨리 땅을 정복해 나갔다”(5) 알렉산더는 지상최대의 제국을 이루었다. 그러나 33세에 말라리아로 갑자기 죽게 되면서 4명의 장군들에 의해 나눠진다. 이것은 8:8절의 “현저한 뿔 넷“을 가르킨다.

 

9절,그 네 뿔 중 하나에서 작은 뿔 하나가 또 나오는데 이 뿔은 안디오쿠스4세 에피파네스(주전175-163)를 가르킨다고 본다. 작은 뿔로 시작했으나 그는 남쪽으로 진군하여 팔레스틴을 정복한다. 이 작은 뿔은 교만해져서 거룩한 백성들(24)을 멸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그는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며,성전을 약탈했고 성전 안에 제우스신을 위한 제단을 쌓았으며 유대인이 불결한 짐승으로 여기는 돼지를 잡아 바쳤다.

 

11절,안디오쿠스는 그 자신과 그리스의 신들이 여호와보다 우월하다고 보았고 유대인들을 핍박했다. 그는 안식일과 절기를 폐했으며 자신과 그리스신들을 섬기게 했다. 또한 성전제사를 금지시켰다.

12절의 “범죄함을 위하여”의 히브리어 “페사”는 주로 언약을 파기한 죄를 가리킨다.

13절 거룩한 백성에 대한 박해가 언제 끝날 것인가?라고 한 천사가 다른 천사에게 묻는다.

14절 그때는 2,300일 즉 주전 167년 12월 성전안에 제우스제단을 쌓은 날부터 이다. 박해가 끝난후 유다 마카비어스는 성전을 정화하고 재봉헌한다. 그리고 하누카 축제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9장.다니엘서의 전반부인 6장까지는 다니엘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나라를 주관하시며 구원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계획과 정한 때,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한 때까지 박해를 받지만 이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보여준다.

“랠리”(time)가 7-12장의 주제이다. 그들은 이방민족속에 어떻게 살아야하는가?그리고 소망을 잃지말 것을 깨닫게 된다.

 

9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간구하는 다니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언약에 기초한 언약기도이다. 4절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헤세드)를 베푸시는 주여, 2절 예레미야로 약속하신 70년이 다가왔음을 깨닫게 된다. 5-6절에 여섯 개의 동사를 나열하며 언약을 파기한 죄를 고백한다. 그러면서 언약적자비에 호소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24절의 응답은 70이레의 기한이다. 이레는 히브리어의“샤브임”인데 일곱들이란 복수이다. 하여 70이레는 문자적으로는 490년이다. 그러나 계시록과 같이 문자적 숫자의 해석은 의미가 없다. 상징적 숫자이다. 포로는 70년이 찼고 그 이후의 완전수가 찰 때 죄악이 영속되며.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즉 메시야 예언인 것이다. 예언은 늘 이중적 구조를 띠고 있다.

 

10장-12장,그동안 거시적관점에서 하나님나라를 보았다면 이제 미시적 관점에서의 하나님나라를 보여준다. 다니엘이 70주 예언이후 2년후 537년 본 이상이다. 10장에서 시작되는 이상은 12장 까지 연결되는 다니엘서의 마지막 부분이다. 숫양과 숫염소의 환상을 을래강가에서 보았는데 이번엔 티그리스(힛데겔)강가에서 보았다. 역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 그가 본 사람은 에스겔1:26-28,계1:12-16절과 같은 예수그리스도이다.(Young,Longman등이 주장)

 

그는 다니엘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페르샤부터 알렉산더와 헬라제국, 그리고 헬라의 분열,셀쥬크왕조와 이집트를 통치했던 톨레미왕조의 갈등 그러나 이것은 서론에 불과하다. 가장 강조하는 인물은 안디오쿠스4세이다. 역사상 가장 핍박한자이며 적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인물이다.

 

고난의 끝에 오실 메시야, 그를 통하여 시작되는 하나님나라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통치자 예수그리스도,다니엘은 저 먼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누카

성탄절 때 성지를 가보면 유대인들도 성탄절을 지키는 것 같이 12월 25일부터 8일간 절기를 지키는 것을 보게 된다. 아니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하누카”축제이다. 그 기원은 헬라제국의 왕,안디오쿠스4세 에피파네스가 유다종교정책을 말살하려 성전을 더럽히고 학정을 하자 마카비를 중심으로 싸워 성전을 정화하고 수복한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주전 164)

 

헬라제국은 종교 관용정책을 베풀었다. 그러나 안디오쿠스가 왕이 된 후 탄압정책을 시작한다. 성전기명 약탈,할례금지,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으며,돼지고기를 강요했다. 이를 거부 할 경우 공개처형, 능지처참했다. 유대인들은 순교와 배교 사이에 서게 되었다. 여기에 대항한 이가 마카비 일가였다. 중간사시대의 이 기록은 마카비 상,하와 요세푸스의 역사서에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마카비 군사들이 성전을 탈환 할 당시 그들에게는 하루 쓸 분량의 기름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기적적으로 8일간 사용하게 된다. 이것을 기념하여 하누카 축제의 상징인 가지가 8개 갈라진 촛대를 사용한다. 하누카 축제는 성탄절과 같은 시기에 있기에 성탄카드에도 종종 촛대가 8개인 카드가 그려있는 것을 보게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레포트주제

 

1.역대하에 나오는 유다의 왕들 중 최선의 왕과 최악의 왕을 두사람 비교해서 써보시오

A4용지3장, 10포인트로

 

2.느헤미야의 리더쉽 10가지 정도를 써보시오

A4용지5장

 

문제

 

1.포로후 역사서의 특징 중 아닌 것은(3)

1)중심인물은 다윗이다.

2)다윗과 솔로몬의 약점은 생략한다.

3)족보를 통해 혈연공동체를 강조한다.

 

2.다음중 메시야와 관계없는 것은(2)

1)아나우나의 타작마당

2)헤브론 산지

3)이삭의 모리아산

 

3.역대상 족보의 특징이 아닌 것은(1)

1)아브람,야곱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2)가인의 족보는 생략된다.

3)남북은 모두 하나다.

 

4.역대상 족보가 강조하는 레위의 세아들이 아닌 것은(3)

1)게르손

2)고핫

3)고라

4)므라리

 

5.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레위지파가 아닌 것은(2)

1)모세의 부모

2)느디님사람

3)사무엘(역대상 족보)

 

6.사울의 실패가 아닌 것은(3)

1)주를 배신

2)말씀을 지키지 않음

3)우상숭배

7.언약체결식의 제의적 요소는(1)

1)번제와 화목제

2)번제와 소제

3)번제와 속죄제

4)번제와 감사제

 

8.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으로 간 이유중 아닌 것은 (1)

1)언약궤가 있었기 때문에

2)성막이 있었기 때문에

3)대제사장 사독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9.여호사밧에 대해 틀린 것은(3)

1)아합과 혼인동맹을 맺었다.

2)아들은 여호람이다.

3)아람과 혼인동맹을 맺는다

 

10.유다의 왕중 가장 어린나이에 왕이 된 사람은 (1)

1)요아스

2)요시야

3)여호람

4)아마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