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성경의 신적권위

성경의 신적권위

호리홀리 2014. 12. 5. 11:02

 





                    성경의 신적권위


                                                            박인대교수




성경은 대략 40여명의 기자들에 의해 66권으로 다양하게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권이 갖는 유기적인 통일성은 성경이 갖는 신적 권위를 입증하는 또하나의 증거가 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해 '주 예수의 은혜가 거룩한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마치고 있는 성경은, 다양한 저자들의 시대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66권의 내용이 하나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점이 다른 종교들의 경전들과 구분되는 점이기도 하다. 

  불교의 아함경, 열반경, 범망경, 법구경, 숫타니파타, 자타카, 백유경, 부모은중경, 유교경, 미린다왕문경 등 근본경전 외에, 대승경전으로 불리는 대소품반야경, 대반야경,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관음경, 무량의 경, 유마경, 화엄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여래장경, 승만경, 대보적경, 대승열반경, 대집경, 미륵상생경, 지장보살본원경, 수능엄삼매경, 금광명경, 능가경, 대일경, 금강정경, 원각경, 우란분경 등을 일컬어 산스크리트어로는 '세 바구니'라는 뜻의 '트리피타카'(Tri-Pitaka·경율논 삼장을 지칭, 팔만자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우리에게는 팔만대장경으로 알려짐, 현재 해인사에 소장)라 부른다. 그리고 이 트리피타카를 일컬어 '대장경'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과 같이 대장경 전체를 관통하는 유기적 통일성을 운운하는 것은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각권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66권은 유기적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이 갖는 특징은, 우주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증거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른 종교들의 철학경전들과 달리 ‘하나님의 일하심’이 기록된 성경은 사람의 지혜로는 기록할 수 없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결코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서 하나님의 존재를 비롯하여 우주의 기원, 인류의 기원, 생명, 죽음, 삶의 목적, 사후의 문제 등 인생들이 궁금히 여기는 모든 것을 내포하는 책이 되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한정되어 더이상 기록될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이러한 제한성을 갖게 된 이유는,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되었고 히브리어 성경 39권과 헬라어 성경 27권으로 더이상의 추가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더 이상 기록될 필요가 없게 된 것은, 오순절에 강림하신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과 사도들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이 확정적으로 증거되므로 더이상의 어떤 증거도 소용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것 이외의 증거들 예를 들면 몰몬교의 몰몬경이나, 통일교의 원리강론이나, 이슬람교의 코란이나 심지어 신비주의 신앙인들의 환상이나 계시, 하나님의 음성조차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히브리어 성경 39권만을 인정하고 그 나머지 헬라어 성경 27권을 부정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모든 계시가 완성된 것이다.


유대인들이 성경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큰 차이가 있게 된 것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받지 못하는 까닭에,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성경(구약성경) 39권(유대인들은 24권)만을 유일한 성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27권의 헬라어 성경(신약성경)은 인정치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히브리어 성경 39권은 물론 헬라어 성경 27권 모두를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감동하여 기록하게 하신 생명의 말씀으로 그 신적 권위를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성경과 관련하여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차이 외에도, 히브리어 성경 배열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의 순서를 보면, "창-출-레-민-신-수-삿-삼-왕-사-렘-겔-호-욜-암-옵-욘-믹-나-합-습-학-슥-말-시-욥-잠-룻-아-전-애-에-단-스,느-대"(24권)의 배열로 되어 있다. 이에 반해 현 그리스도인들의 히브리어 성경의 배열은, '창-출-레-민-신-수-삿-룻-삼상하-왕상하-역대상하-스-느-에-욥-시-잠-전-아-이-렘-애가-겔-단-호-욜-암-옵-욘-믹-나-합-습-학-슥-말'(39권)로 첫 일곱 권은 같지만 이후 배열에 있어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 같은 히브리어 성경을 두고 왜 이러한 배열에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70인역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신뢰하던 이 번역서를 부당하게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배열 순서에서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옮긴 가장 오래된 번역서인 이 셉튜아진트는 우리 말로 '70인역'이라 부르기도 하고, 'LXX(50+10+10)'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히브리어 성경의 배열이, 바로 이 70인역본에서 기원한 것이다. 70인역본의 순서가 바로 현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의 히브리어 성경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70인역본에는 토비트, 유딧, 마카베오상하, 바룩서, 시락서, 지혜서 등 7개의 외경이 추가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 개신교인들은 16세기 종교개혁과 더불어 외경 7권을 성경에서 제외시켰지만, 로마교인들은 여전히 외경을 성경에 추가시켜 성경66권+외경7권 등 73권을 한 성경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데에서 개신교와 로마교는 또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이들 헬라어로 된 외경을 39권과 동일하게 영감된 것으로 선포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인간의 역사소설로 물타기한 그릇된 행태가 명백하다.

그러면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본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앎으로,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과 관련하여 적극적인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70인역은 바벨론 왕이었던 벨사살 원년(주전 553년)에 다니엘이 본 환상 가운데 세번째 '표범같은 짐승'(단7:6, 단지 10년 만에 표범처럼 빠르게 세계를 정복했다.)으로 계시된 알렉산더의 헬라화 정책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철학이나 천문학 그리고 물리학 심지어 의학과 심리학 등 제 학문의 언어가 바로 헬라어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헬라제국은 이미 2천년 전에 사라졌지만 헬라문화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헬라문화를 정복 세계에 뿌리 내리는 일에 주력하므로, 당시 지중해 연안 국가는 물론 이집트, 바벨론, 페르시아, 멀리 인도까지 이 헬라 문화 영향권에 귀속시켰다. 


특히 알렉산더는 주전 332년 자신을 기념할 목적으로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를 세울 때, 그는 이 새 도시 안에 특별히 유대인을 위한 구역을 설정하여 주었고, 또 그들에게 완전한 시민권까지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익숙해진 헬라어를 위해서 히브리어된 성경을 헬라어로 옮길 필요성이 생겨 70인 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따르면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비치를 위한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있다.

대략 주전 100년 경의 문서로 간주되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70인역의 유래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이 편지의 작가인 아리스테아스는 편지에서 밝힌대로, 두번째 프톨레미 왕인 필라델푸스(주전285-246재위)의 신하로, 자기 형제 필로크라테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다녀온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이 편지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의 궁중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고 있던 데메트리우스 팔레류수가 왕에게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 소장을 제안하자, 왕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엘리에셀에게 정중한 편지와 예루살렘 성전에 바칠 예물을 사절단의 손에 들려 예루살렘으로 파송한다. 이 사절단의 일원으로 아리스테아스가 방문한 것이다.


엘리에셀은 왕의 청을 가납하여 72명의 번역자들을 이집트에 보내게 된다. 왕은 이들 72인의 지혜를 테스트하고 이레동안 연회를 베푼 후에 파로스 섬에 두어 결국 72일 만에 번역을 마칠 수 있었다. 완성된 번역본을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읽어주자 그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면서 한 부를 복사하여 자기들의 지도자들의 손에 들려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나서 이 번역성경은 왕 앞에 읽혀졌다. 왕은 과거 어떠한 역사가나 시인도 이처럼 훌륭한 책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표시하면서 이 책을 신중히 관리할 것을 당부하였다 한다.


그런데 3세기의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전체 히브리어 성경이 번역된 것이 아니라, 단지 창-출-레-민-신명기서만이 번역된 것이다. 초기 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나, 현재의 많은 이들이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헬라어 성경이 전체가 다 번역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실상은 초기 다섯권만이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1세기 이전까지 이 헬라어 번역성경이 점진적으로 완역된 것이라는  번역과정에서 역자들은 이 성경의 순서에 대해서 고민 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성경의 배열은 대개 역사적 기록 순서에 따른 것이나, 이 70인역의 배열은 역사적 순서보다는 성경의 역사적 내용을 좇아 재편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은 토라(율법서) 5권(창-출-레-민-신), 다음으로 네비임(예언서) 8권(전기예언서4권:수-삿-삼-왕, 후기예언서4권: 사-렘-겔-소선지서) 그리고 케투빔(거룩한문서) 11권(시가서3권:시-욥-잠, 오축서5권:룻-아-전-애-에, 예언서1권:단, 역사서 2권:스,느-대) 등 총 24권으로 분류하였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39권으로 구분하였다.


특히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절기 예를 들면, 유월절에는 아가서를 낭독하고, 오순절에는 룻기서를, 초막절에는 전도서를, 주전587년 예루살렘 멸망 기념일에는 예레미야 애가서를, 부림절에는 에스더서를 낭독하여 그 절기를 기념했지만,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은 이러한 유대인 절기를 무시하고 다만 그 성경 내용의 연속성을 좇아 성경의 순서를 배열했던 것이다. 물론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과 첫 7권 곧 창-출-레-민-신-수-삿까지는 일치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사기의 내용과 연관시켜 다음으로 룻기를 배치했고, 이어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과 동일하지만, 사무엘서를 상하로, 열왕기서를 상하로 나누어 사무엘상하-열왕기상하를 배치했다. 물론 유대인들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각각 한권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다음으로 열왕기 이후의 내용과 관련시켜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를 다음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로부터 에스더서까지를 역사서로, 그리고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의 시편-욥기-잠언서의 순서와 별도로 욥-시-잠-전-아가서를 배치했다. 유대인들의 오축서 곧 유월절에 낭독하는 아가서와 초막절에 낭독하는 전도서를 그리스도인들은 시가서에 편입시켜 하나로 이해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시피 네비임(대언서)을 전기 네비임과 후기 네비임으로 나누어 토라 이후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시가서, 5축서, 예언서, 역사서 등의 성문서(Hagiographa)를 네비임 이후에 배치하므로 내용상 배열이라기 보다 그 권위의 경중을 따라 그리고 기록 순서에 따라 배열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로부터 에스더까지를 그 역사적 내용을 좇아 배열하고 이어 시가서를 배치했다. 그리고 이어 이사야로부터 말라기까지 대언서를 시가서 이후에 배치하므로, 시가서 5권과 더불어 대언서 17권을 역사서 해석과 이해의 원리로 삼았다.


다시 말해 창세기로부터 에스더서의,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인 우주 및 인류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거된 역사서 전체를, 그리고 시가서는 하나님의 일 통찰을 통한 이스라엘의 서사시라면, 대언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밝혀진 세계 열방은 물론 온 이스라엘의 망령된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한 권고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시가서 각 책은 또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인간의 판단 오류 가능성에 대한 경고시(욥), 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통한 하나님의 일에 대한 화답시(시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지혜와 지식에 대한 통찰시(잠), 하나님의 일에 대한 사람의 무위지사에 관한 성찰시(전), 이성간의 일향적인 사랑에 대한 대화시(아)로 그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가서 5권은 창세기로부터 에스더서까지의 인생들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에 대한 찬송시인데 반해, 대언서 17권은 역사에 나타난 인생들의 망령된 행실에 대한 권고로 그 내용을 집약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히브리어 성경 배열에는 물론 제롬의 불가타(라틴식 표현, 영어식 표현은 벌게이트)도 한몫하였지만, 무엇보다 70인역의 영향이 막대하다. 헬라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해독하기 힘든 히브리어가 아니라, 자기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헬라어로 기록된 70인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보다 친숙하게 되었으며, 또한 이방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져서 많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하기에 이르렀다. 에디오피아의 내시(행8:26-39),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행10:1-48) 같은 이들이 바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바울이 가르친 내용의 진위를 알고자 읽었던 성경도 70인역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성경 역시 70인 경이었다. 이후 교회에 미친 70인역의 영향력은 주후 2-9세기 사이의 성경 번역을 살펴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 교회의 확장 및 선교 활동을 통하여 성경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데, 제롬의 라틴역 불가타와 페쉬타(이 시리아역은 맛소라 본문과 거의 일치한다. 이 페쉬타는 맛소라 본문이 어느 정도 정립하는 주후 70년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불리는 시리아어역만 제외하고 모두 이 70인역에서 번역하였다. 이처럼 70인역에 기초한 번역들로는 라틴어 구역(it), 이집트역(곱틱어역cop), 에티오피아역(eth), 아랍어역, 고트어역(goth), 아르메니아역(arm), 죠지아역(geo)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유대인들을 위한 70인역이 초대 기독교의 손으로 옮겨져 유대인을 적대시하는 이들에 의하여 사용되기 시작하자, 유대인들은 자연히 70인역의 정확성에 대하여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사7:14의 번역을 들 수 있다. 히브리어 '알마'를 처녀의 뜻을 가진 '파르테노스'라고 번역한 70인역은 그릇되었으며, 마땅히 젊은 여자라는 뜻의 '네아니스'로 번역하여야 한다는 것이다(현재 개역성경은 사7:14를 처녀로 번역하고, 각주에서 '젊은 여자'로 표기하고 있다.). 특히 유대인들은 70인역에 포함된 외경들(토비트, 유딧, 마카베오상하, 바룩서, 시락서, 지혜서)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를 실현한 사람이 바로 본도 출신의 '아퀼라'였다. 아퀼라는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나 자신의 점성술을 포기하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교회에서 출교된 후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했다. 그는 랍비 아키바(바르 코크바(주후132-135)의 봉기 때에 그를 가리켜 메시아라 했던 당시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인물)의 제자가 되었다. 그의 번역의 목적은 당시 이미 기독교의 성경을 받아들여진 70인역의 해석을 포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주후 130년 경에 완성된 그의 번역은 직역에 가까운 번역서로, 유대인 사이에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특히 아퀼라역은 유대인 랍비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공식적 번역이 되었다. 기독교에서는 자연히 개종자의 번역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유대인 회당에서 이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한 헬라어 아퀼라역은 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역본은 현재 일부가 조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아퀼라의 번역이후 반세기가 지나 테오도티온이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였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테오도티온은 에베소 출신의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다. 제롬은 그를 에비온파로 본다. 어쩌면 그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으로서 한 때 기독교를 받아들였었으나 다시 유대교로 돌아온 사람인 것 같다. 테오도티온 직후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또 한사람이 바로 쉼마쿠스이다. 아퀼라역, 테오도티온역, 쉼마쿠스역 이것이 바로 70인역을 대신하는 헬라어 번역서들이다. 필자는 이들의 역본들이 어떻게 배열되었는지 궁금했으나 확인할 길 없어 잠시 미루어 두기로 했다.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은 라틴어로 두 번 번역되었다. 처음 2세기 무렵에 번역된 라틴어역을 구 이탈라역(라틴어 舊譯)이라, 이후 4세기 무렵에 제롬을 통해 번역된 라틴어역을 '불가타'라 부른다. 불가타는 1546년 4월 8일에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다. 제롬은 구 이탈라역이 70인역에서 번역된 것이므로 히브리어 원문에서 거리가 멀어졌다고 했다. 그는 앞서 주후 380/381년 경에 70인역의 번역 자체에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더이상 70인역의 신비로운 기원이나 신적 영감을 그는 믿지 않았다. 또한 사도들에 의하여 헬라어 성경에 인용된 히브리어 성경의 내용들이 70인역보다는 히브리어 원문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헬라어 성경과 히브리어 원문의 일치야말로 히브리어 성경의 권위를 완벽하게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번역을 꾀하고자 했던 제롬은 또한 영감된 번역은 믿지 않았다. 이러한 제롬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제롬의 의도에 대해 매우 불쾌해 했던 것으로 전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70인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두 군데에서 표명하였다. 두 곳 다 같은 견해를 보이며 그 목적은 70인역의 신적 기원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두 곳에서 모두 제롬의 번역을 비난한다. 그러나 제롬의 이름은 '신의 도성'에만 언급되어 있다. 제롬의 번역은 주후 390년에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부터 새로운 번역을 시작하여 404년에 히브리어 성경 번역을 완성했다. 제롬은 본래 외경의 번역을 원치 않았으나 주위의 요구에 못이겨 유딧서와 토빗서를 대충 번역한다.


초창기 교회가 70인역을 통해 히브리어 성경을 알았던 것처럼, 중세교회는 제롬의 불가타를 통하여 히브리어 성경을 알았다. 중세 유럽 교회에 대한 불가타의 영향력은 칠십인역을 능가하였다. 그러나 교회개혁이후 불가타는 로마교에 한정된다(위의책). 개신교 신학계 내에서 70인역은 하나의 문학서 정도로 취급될 뿐 더이상의 어떤 권위든지 부인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로마교나 개신교의 모든 성경의 배열이 이 70인역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70인역과도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현재의 모든 성경의 순서 배열에는,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 배열이 아니라, 오히려 70인역의 배열에 더 일치한다.



오늘날 보듯이 기독교 이단들이 극성하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이해를 두고 그 해석이 천태만상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캐토릭의 창3:15절 IPSA(she herself)논쟁,창9:24~27절의 왜곡으로 인한 수백년간의 흑인노예,남북전쟁부터 최근의 이단인 ‘안산홍’의 갈4:26절을 왜곡해서 ‘하나님 어머니’로 부르는 이 모두가 성경의 내용을 일관되게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히브리어-헬라어에 익숙하고 문자적 역사적 해석을 기초로 성경의 통일성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자의적인 해석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으므로 이단들은 물론 성경의 난제들도 이해할 수 있다. 이제라도 성경을 바로 읽어 숲과 나무를 보는 눈을 기르고, 나아가 히브리어와 헬라어에도 친근감을 가져서 구체적인 내용이해를 통해 자의적인 해석이나 왜곡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역사서를 다룸에 있어서 성경 배열은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를 따라서 포로전 역사서 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상하,열왕기상하 포로후 역사서 역대상하,에스라,느혜미야,다니엘을 다루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