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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강해 요약(기독론)

호리홀리 2015. 3. 3. 17:03

 

                                    이사야서강해 요약(기독론)

 


 

                                                                                                                        박인대교수

 


 

 

이사야서는 비연대순으로 기록되었고 예언은 이중구조를 띠고 있다.

 

이사야서를 이해하는 큰 그림은 북이스라엘(수도는 사마리아)과 남유다(수도는 예루살렘)의 대조이다.

 

또한 이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와 바벨론의 대조,북쪽의 여로보암2세와 남쪽의 웃시야와 히스기야의 대조와 비교이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아모스와 호세아,남유다는 이사야와 미가였다.

 


 

1.역사적배경

 

여로보암 2세(주전 800-760년 통치; 왕하14:23-29 참조)는 예후 왕조의 제4대 통치자이다. 그의 통치 기간에 이스라엘은 황금기를 누렸는데, 각종 사회적 병폐는 아모스서와 호세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때 앗시리아의 군주들은 자국의 문제들로 골치를 썩고 있어서 이스라엘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하였다.

 


 

2.껍데기 종교

 

이제 선지자는 하나님을 거역한 이 백성을 아예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과 동일시한다. 그리고는 처음 (2절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들으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하면서 (이사야1:10) 이 민족을 책망한다. 이사야1:10-15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은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이들의 죄악은 한 마디로, 종교인으로서는 각종 종교 행사나 활동에 열심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한 인간으로서 동료 인간과의 관계를 선과 의로 맺지 아니하고 악과 불의로 맺고 있다는 점이다.

 


 

3.언약적축복과 저주

 

일찍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은 오래 전부터 예고되어 왔다.(레26,신4,신28) 야곱 곧 이스라엘이 자기 후손의 장래 일을 미리 말하였고 (창세기 49장), 이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율법)을 전해준 모세도 지금으로부터 약 3400여년 전에 이 민족의 운명을 노래로 적어 당시의 백성들에게 읽어 들려주었다. '들으라 노래'라고도 불리는 이 노래는 신명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다.

 


 

4.아하리트 하야밈

.'말일'은 히브리어 '아하리트 하야밈'을 번역한 것이다. 이 히브리어 표현은 구약 성경에 모두 13회 나타난다 (창49:1; 민24:14; 신4:30; 31:29; 사2:2; 렘23:20; 30:24; 48:47; 49:39; 겔38:16; 단10:14; 호3:5; 미4:1). 이 표현은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멀리 떨어진 시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그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는 미4:1; 신4:30; 31:29; 렘23:20; 30:24; 겔38:16; 단10:14; 호3:5에서 사용된 것처럼, 그 문자적 의미 그대로의 '마지막 때'를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아하리트 하야밈'은 메시야되신 예수님의 초림에서 시작하여 역사의 종말까지 계속된다고 볼 수 있다 (히브리서1:2; 벧전1:20 참조). 다른 선지서에서 야웨의 날로도 나오고 있다.

 


 

5.야웨의 싹

 

하나님은 심판을 즐겨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악인을 골라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심판으로만 끝나는, 또는 심판만을 위한 심판은 있을 수 없다. '주께서 심판의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에서 무고히 흘린 피를 청결케 하시면' (4:4),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 날에 '야웨의 싹'은 영광과 존영 그 자체로 화한다. 이스라엘 안에 살아남은 자들에게 '그 땅의 열매'는 자랑거리와 명예가 된다" (4:2). 여기서 '야웨의 싹'과 '그 땅의 열매'는 대구(對句)를 이루어 결국 같은 존재를 가리키고 있다. '싹'은 히브리어로 '쩨마흐'라고 한다. 이 낱말이 여기서처럼 특별하게 쓰인 경우로는 슥3:8(내가 내 종 순을 나게하리라); 슥6:12(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야웨의 전을 건축하리라); 렘23:5(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렘33:15(그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를 들 수 있다

 


 

이상 언급한 구절들에서 '쩨마흐'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서 중요하게 사용될 특별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이 비유적 표현은 이사야11:1의 '호테르'(역시 '싹'으로 번역)와 '네쩨르'('가지'로 번역), 및 이사야53:2의 '요네크'('연한 순'으로 번역)와 '쇼레쉬'('싹' 또는 '줄기'로 번역)와 맥락을 같이 하여, 모두가 메시야되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 땅의 열매' 또한 같은 의미를 갖게 되어 '메시야'를 가리킨다. 그는 '야웨'로부터 오신 분이요 (로마서1:4; 누가3:38 참조), 동시에 '이스라엘 땅'에서 나오셨다 (로마서1:3; 누가3:23 참조).

 


 

6.웃시야의 마지막 해

BC748년,웃시야의 마지막 해 그러나 아직 살아있다.

 

웃시야는 야웨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스가랴(스가랴서의 스가랴와는 다르다)라는 선지자의 교도를 받아 하나님을 구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심전력하였다. 그 댓가로 하나님은 그의 길을 형통케 하셨다. 우선 웃시야는 유다의 남쪽 네겝 광야를 지나 남단의 엘롯을 요새화하고 그곳을 유다에 귀속시켰다. 엘롯은 비록 광야 끝에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홍해 변에 위치한 항구로서 남국의 대상들이 반드시 통과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대하26:1-5).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자손이 통과한 지점중의 하나이기도 한 (민수기33:35-36; 신명기2:8) 엘롯은 에시온게벨이라고도 하고 엘랏이라고도 한다.

 

웃시야는 웃시야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탁월했으나 교만했다. 나는 다 할 수 있다. 내가 못할 일은 없다. 드디어 그는 제사장 만이 할수 있는 분향을 하게된 것이다. 제사장80명이 생명을 걸고 막았으나 웃시야는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하나님은 즛시 그를 치셨고 웃시야는 문둥병에 걸렸다. BC759년의 일이다.(대하26:16~21)

 


 

7.언약적저주

 

이사야는 이처럼 예기치 못한 메시지를 듣고는 자기가 속한 민족을 위하여 걱정스런 마음으로,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고 묻는다. 이때 하나님의 대답은 가혹할 정도로 단호하다.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야웨께서 사람들을 멀리로 옮기고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엘라 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비교적 짧고 간단한 대답 같지만, 그 내용은 택함받은 백성 곧,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의 끝까지 겪어야 할 운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마치 눈 멀고, 귀 먹고, 또 둔한 마음을 소유한 자와도 같이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듣고,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이처럼 둔해진 마음은 단시일 내에 밝아지지 아니할 것이다. 도시들이 다 폐허가 되고, 주민들은 도망하거나 죽임을 당하고, 집들은 주인을 잃고, 토지는 황무케 되며, 백성들이 먼 곳으로 포로되어 끌려가서 이스라엘 땅이 거의 초토화되기까지 이 민족의 이런 비극적 무지(無知)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이 민족의 대부분이 망하고, 그중 십분의 일만 남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파멸에 이를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중 대략 열 지파가 연합하여 시작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3년에 국가로서의 생명이 끊기었다. 유다 지파를 주축으로 하고 거기에 베냐민 지파가 합류한 유다 왕국은 주후 588년에 망하였다. 그후 페르시아가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이사야의 예언대로 코레쉬 왕의 칙령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지에서 고토로 돌아온다. 이때 유다 지파가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이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자연스럽게 '유대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8.6장의 멸망에 대한 위로가 7장이다.

 

이사야7:14에서 '처녀'로 번역된 히브리어 '알마'는 구약 성경에 모두 7회 나타나는데 (창세기24:43; 출애굽기2:8; 잠언30:19; 시편68:25; 아가1:3; 6:8; 이사야7:14), '처녀'라는 뜻 말고 '젊은 여인'을 뜻할 수도 있다. 특별히 이사야7:14에서는 '알마'에 정관사가 붙어서 '그 처녀' 또는 '그 여인'이 될 수도 있다.

 


 

9.한 아기"의 탄생

새롭게 등장하는 "한 아기"의 탄생은 이사야7:14의 예언을 제2단계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성취시켜 주는 사건이다. 그에게 주어진 여러가지 이름들은 그가 평범한 아이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는 야웨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동시에 그의 유일한 대변자가 되시며, 다윗에게 약속된 '영원한 통치권'(사무엘하 7장 참조)을 일임받으실 분이다. 그럼 이 아이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소개를 들어보기로 하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야웨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9:6-7).

 


 

10. 임마누엘

 

이사야 선지자는 제7-12장에서 열국의 흥망성쇠를 묘사하는 가운데, 면면히 임마누엘, 곧 메시야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7:14에서는 임마누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것'을 미리 밝혔고, 9:6-7에서는 그 아기의 탄생과 이름, 권세 등을 설명하였다. 이제 11:1-10에서는 임마누엘의 통치와 심판, 그리고 그가 완성하실 왕국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새의 줄기', 곧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성령으로 무장시키실 것이며, 그는 야웨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구원과 심판을 통한 통치를 이룩하실 것이다 (이사야11:1-5).

 

야웨께서는 앗수르를 몽둥이로 사용하셨는데 몽둥이가 교만하여 진 것이다. 하여 야웨는 몽둥이를 꺽으신다.(사10:12~19),앗수르의 멸망예언

 


 

11.바벨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귀환 (13:1-14:23)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 어느 누구도 바벨론이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을 것이다. 히스기야가 병에서 치료받았을 때, 그에게 찾아온 바벨론 사절단은 전혀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이사야39:1-2; 왕하20:12-13 참조). 앗시리아 만이 현실적으로 위험한 존재였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보는 이사야는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망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야39:3-7; 왕하20:14-18 참조). 주전 613년에 바벨론이 니느웨를 함락시킴으로써 앗시리아 제국은 완전히 무너진다. 이어서 바벨론은 주전 588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킨다. 주전 606년 바벨론의 권좌에 오른 느부갓네살은 주전 583년에 이르러는 명실공히 근동의 거의 전부를 자기 손아귀에 넣는다. 이방 세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이제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사야13:1).

 


 

장차 근동의 패권을 잡을 바벨론도 결국은 망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멸하시고자 먼 곳으로부터 군대를 부르신다. 하나님의 진노를 쏟을 수단으로서 그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이사야13:2-5).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를 간섭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의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며, 정하신 때가 이르면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신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 언급이 없으나, 13:17에서 '메대'라고 밝혀 준다. 이들은 페르시아와 더불어 주전 6세기에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잡는다.

 

14장1절은 바벨론 포로,2절은 귀환을 예언한다.

 

15장부터 언약백성을 괴롭히던 주위나라에 대한 경고와 멸망이 예언된다. 특히 22장에서 히스기야때의 고관 “셉나‘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당시사람들의 교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서 셉나는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22:15~19)

 


 

12.호이

이사야 제28-33장에는 '오호라'라고 번역할 수 있는 히브리어 '호이'로 시작되는 여섯 번의 경고가 나온다 (28:1; 29:1; 29:15; 30:1; 31:1; 33:1). 에프라임, 곧 북 왕국 이스라엘의 지배층에 대한 경고로 시작되고, 유다에 대한 경고를 거쳐,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와 장래의 구원으로 끝을 맺는 이 부분은, 위기시 참된 도움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를 종국에 가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야웨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북과 남은 똑같이 애굽을 의지하다가 망한다.

 


 

13.제36-39장/위기와 구원

 

주전 715년, 이 해는 유다 왕 히스기야 재위 제14년이 되는 해이다. 당대의 대제국 앗시리아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유다와 예루살렘에게는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던 위기의 해였다. 이사야 36-39장은 이 해의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 이사야 36-39장은 28-33장에서 예고한 바 있는 '예루살렘의 위기'를 묘사하고 또 이를 극복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함으로써, 28-33장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는 셈이 된다. 이처럼 이사야의 예언과 그에 대한 성취는 현실과 미래를 오고가며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 종교개혁을 실시했다. 그리고 언약체결식,망한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초청해서 유월절을 성대하게 지킨다. BC728

 

이때 모세의 놋뱀을 파괴함으로 어떤 우상숭배도 용납지 않았다.

 

BC715년 히스기야제위 14년 앗수르의 산헤립이 공격해왔다.

 

그의 부하 랍사게는 히브리방언으로 백성들을 회유하는 심리전을 펼쳐 히스기야를 위기에 빠뜨렸다.

 


 

14.히스기야의 기도와 위기 극복 (37:1-38)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유다왕 히스기야의 태도는 그의 부친 아하스의 태도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베를 입고 야웨의 성전으로 들어간다.'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하기 위해서이다.

 

언약기도를 드린 것이다.

 

더불어 그는 신하들을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내어 '남은 백성을 위한 기도'를 요청한다. 야웨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히스기야에게 희망적인 말씀을 주신다 (이사야37:1-7; 왕하19:1-7).

 

하나님은 비상적으로 개입하셔서 185,000의 적을 궤멸시킨다. 산헤립은 결국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아들에게 배신 당해 죽고만다.

 


 

히스기야의 개인적위기(38:1~22)

 

그의 교만(39:3~8)

 


 

15.내 백성을 위로하라(40:1-11)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사야40:1). 이사야서의 제2부라고 할 수 있는 제40-66장은 이처럼 '위로하라'는 명령문으로 시작된다. 40:2에서는 '내[=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예루살렘'이 그 죄악으로 인한 고역을 마치고, 그 죄값을 모두 치렀기 때문이다. 제1부(1-39장)에서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죄악과 그에 대한 형벌과 그리고 회복을 개괄적으로 말하였다 (특별히 제1장을 볼 것). 이제 제2부(40-66장)에서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16.귀환

 

바벨론의 멸망과 유대인의 귀환에 대하여는 이미 이사야13:1-14:23; 21:1-10에서도 다룬 바 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 어느 누구도 바벨론이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앗시리아 만이 위험한 존재였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보는 이사야는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망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야39:3-7; 왕하20:14-18 참조). 주전 613년에 니느웨를 함락시킴으로써 앗시리아 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린 바벨론 제국은 주전 588년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킨다. 주전 606년 바벨론의 권좌에 오른 느부갓네살은 주전 583년에 이르러는 명실공히 근동 전 세계의 패자(覇者)가 된다.

 


 

그러나 바벨론도 결국은 망하고 말 것이다. 바벨론에 멸망을 가져올 사람은 동북방에서 올 페르시아 왕 코레쉬이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주전 540년에 바벨론은 코레쉬의 메대와 페르시아 연합군에 의하여 함락되고 만다. 바벨론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과 직결된다. 바벨론에 의하여 포로로 끌려 갔던 그들은 다시 고토로 돌아와서 예루살렘과 성전을 중건할 것이다. 야웨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당신이 '온 땅과 모든 나라들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대주재(大主宰)이심'을 명백히 보여주고자 하신다.

 


 

17.'야웨의 종'

 

이스라엘은 '야웨의 증인'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나, 긍정적인 면에서는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들도 이방처럼 우상 숭배에 빠져서 야웨 하나님을 거스린 것이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자기의 죄악으로 인한 고역을 치르는 부정적인 면에서 '야웨의 증인' 노릇을 해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다른 '종' 하나를 준비하신다. 이스라엘에서 나올 이 새로운 '야웨의 종'은 결코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요, 도리어 그분의 뜻대로 행하여 그분을 만족시킬 것이다 (이사야43:8-13 참조).

 


 

'야웨의 종'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사야41:8-9; 42:19; 43:10; 44:1-2, 21),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빛'으로서 성실하게 '야웨를 섬기실 (히브리어에서 '섬기다'라는 동사는 '종'이라는 명사와 같은 어근에서 나온다) 메시야'를 가리키기도 한다. 전자는 야웨를 실망시킨 '종'이었지만, 후자는 항상 야웨를 만족시키고 그분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진실한 종'이시다. 이사야는 42:1-9에서 이 '야웨의 종'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사야 49-57장에서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야웨께서 지지하시고 택하시고 기뻐하시는 이 '종' 위에 야웨의 영(靈)이 임할 것이요, 그는 조용하고 겸손한 방법을 통하여 온 세상에 공의를 베푸실 것이다 (42:1-4). 창조주 야웨 하나님이 친히 이 '종'을 보내시어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으므로, 그가 가는 곳마다 진정한 자유가 있을 것이다 (42:5-9). 야웨께서는 훗날에 있을 이 일을 예고하심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야웨께서 이 '종'을 통하여 세우실 새로운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큰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이 '새 언약'에 관하여는 이사야49:8; 54:10; 61:8; 예레미야31:31-34; 에스겔16:60-63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종의 찬양/종은 고난의 종으로,왕으로,메시야로 오신다. 종은 이방의 빛으로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 것이다(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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