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신약성경의 종말론

종말론

호리홀리 2015. 2. 24. 22:58

종말론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세가 오기까지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교훈과 경고를 주셨다(감람산 강화). 24: 4-14에 기록된 예수님의 충고와 교훈은 어느 정도는 당시 제자들과 후세의 독자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또한 이 말씀은 마지막 때까지의 ‘산고’(birth pains)의 시기에 나타나는, 고통스럽고 혼란한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으로 볼 수도 있다. 작금의 여러 신학자들은, 마태가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파괴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에 관해 기록한 것이라면 마태는 이미 알려진 잔학행위에도 불구하고 당시 환란의 규모를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주장한다.

마태의 기록에서 다소 은유적 과장은 인정하더라도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파괴가 마태가 본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오히려 미래적 파괴를 미리 내다본 내용이라는 것이 바람직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마지막에 인자이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다. 26-31절은 모든 인류를 구분하고 택자를 불러 모을 우주적 영역의 사건에 관해 다룬다. 이러한 구별의 실체나 그것이 함축하는 심판에 관한 주제는 본 강화의 나머지 부분에서 다양하게 제시된다.

마가의 기록에 나타난 천국(하나님 나라) 메시지는 결과적으로 종말론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다. 10장에 기록된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해 야고보와 요한은 주의 영광 중에서 그의 좌우편에 앉는 특권을 누리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영광스러운 나타남은 미래적 영역에 속한다. 지상의 예수님이 겪으신 비천은 영광의 왕이라는 승귀로 이어질 것이다.
누가의 종말론은 기본적으로 약속과 성취이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약속 시대의 한 부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함께 “성취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이 성취의 시대는 전환기(transition)와 ’이미‘(교회시대)와 ’아직‘(그리스도의 재림)의 시대이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종말론적 응답이 ‘속히’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누가가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제시하는 임박성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인자의 재림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순간적으로 임한다(17:24, 행 7:55-56).
누가는 ‘개인적 종말’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사람이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간략히 기술하였다(23:42-43). 본문은 사람이 죽으면 즉시 사후 세계에 들어선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관복음이 현재와 미래의 수평적 영역을 둘러싼 구조라면 요한의 종말론은 하늘과 땅의 수직적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도 분명 수평적 요소가 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일반적으로 신자들의 현재적 실재로서 제시되지만 현세보다 내세에 초점을 맞춘 경우도 있으며 그리스도의 미래적 재림에 대해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재림보다 보혜사가 오심에 대해 언급하는 듯하다.

요한복음은 신자의 현재적 영적 중생과 함께 미래적 육체의 부활에 대해 가르치며 종말론적 심판에 대해 언급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미래적 심판을 면케 하며 영생을 받게 한다. 그러나 믿음의 반응은 미래적 영생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믿는 순간부터 신자가 현세에서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한 서신에도 그리스도의 미래적 재림(parousia)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 믿는 신자가 예수님에 대한 사도적 교훈에 충실히 남아 있으면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리스도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서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적 재림은 현재의 도덕적 정결에 대한 모티브(motive)로 제시된다.
요한계시록의 관점은 미래적이며, 그리스도인의 재림과 관련된 사건 및 그가 세우실 지상 왕국과 재림 직전에 있을 큰 환란(Great Tribulation)에 초점을 맞추며 천년왕국의 기간을 천년으로 구체화하며, 그것에 이어지는 영원한 상태와 구분한다(21:1-22:5). 요한계시록 신학의 핵심은 인과 나팔 및 대접 재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심판이다.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계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과 인류에 대한 그의 목적 성취와 관련된 구약성경의 예언을 완성한다. 요한계시록의 핵심적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의 통치에 초점을 맞춘다.
바울의 선교서신에는 개인적 종말론이 잘 나타나 있다. 개인에게 있어서 구원의 절정은 영화이다. 영화에는 죄의 현현과 사망의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결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까지 여러 가지 국면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의 첫 국면은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으로 시작되는 신자 개인의 영화는 신자가 변화된 몸으로 부활할 때 완성되며, 신자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의 전형을 따른다(고전 15:20). 바울은 부활한 신자의 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다고 분명히 말한다(20, 45-49).

바울의 선교서신에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내용도 나타나는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은 각자의 생애에서 행한 선과 악을 기준으로 공정하게 결정되며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그리스도의 주권이 우주적으로 알려지며 그의 심판이 포괄적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말한다.
베드로와 유다 서신의 종말론은 심판의 확실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에 대한 반응 때문이다.
구속사를 돌이켜볼 때 현재는 예언의 결정적 성취의 시대이다. 말세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구속을 위해 그를 세우시고 이 말세에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나타나셨다(벧전 1:20). 신자들은 현재적 소유로서 구원을 누리나, 동시에 미래적 완성으로서의 구원을 기다린다. 따라서 아직 절정이 남아 있으며, 그 시기는 매우 임박하다. 한편 불신자들에게도 심판이 기다리며, 이 심판은 결코 취소되거나 피해갈 수 없으며 이 땅과 모든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내리실 심판과 멸망을 강조하였다.

베드로와 유다 서신의 종말론적 가르침에는 도덕적 실제적 중요성이 있다.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며 종말론적 절정을 기대하며 간절히 사모하라고 촉구한다. 유다도 죄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는 본문에서 위로를 제시하며 그의 영광은 그리스도인들을 타락하지 않게 보호하시고,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영광 가운데 서게 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한다(24-25절).
마태의 기록에 나타난 감람산 강화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경고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종말은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공생애 취임 설교에서 종말을 맞이한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마 4:17).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Μετανοείτε, ἤγγικεν γὰρ ἡ βασιλεία τών οὐρανών.).” 감람산 강화의 내용은 주후 70년에 첫 번째로 실현되었으며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이 땅에 다시 한 번 실현될 것이다.

누가의 종말론에는 이미와 아직(already not yet)의 종말론적 긴장이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요한의 기록에는 그리스도의 재림보다 보혜사 성령이 오심에 대해 강조한 듯한 가운데 보혜사는 종말론적인 성령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요한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미래적 재림은 현재의 도덕적 정결에 대한 모티브(motive-동기)로 제시되는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취임에서도 제기된 사항으로 신자의 종말론적 소망의 성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이는 베드로와 유다의 서신에서도 언급되는 것으로서,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 재림 후에 종말론적 소망인 천국(하나님 나라)을 소유하려면 모세를 비롯한 모든 예언자들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강조했던 도덕적인 정결한 삶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계적인 순종이 아닌 보혜사 성령 안에서 역동적이며 유기적 협력 가운데서 아름다운 열매로서의 결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