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신약성경의 구원론

구원론

호리홀리 2015. 2. 24. 22:52

구원론


누가-행전에는 복음이란 단어가 신약성경 어느 곳보다 동사 형태(euangelizo[복음을 전하다])로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이 단어는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된 예수님의 메시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도행전에서 복음의 내용은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사도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메시지를 전파하였다(행5:42). 다른 구절들 역시 사도들이 전한 설교의 초점이 예수님임을 보여준다.
누가-행전의 가르침은 단순한 복음 제시 이상의 포괄적 의미를 가진다. 반면에 누가-행전의 전도는 구원의 메시지에 한정된 경향이 있다. 누가-행전이 진행되면서 누가의 복음 메시지는 점차 예수님에게로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메시지의 내용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되기 때문에 언제나 동일한 소망을 제시하나 이러한 약속의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보다 분명하게 제시된다.
구원의 영역에 있어서 누가는 예수님이 제공하신 것은 모든 백성에게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보편적 사역은 누가복음의 서두에서부터 메시아와 그의 통치에 관한 구약성경의 약속으로 제시한다. 누가복음에서는 비천한 자들과 죄인들과 세리들에게 특별한 관심이 주어진다.

예수님의 메시지에는 진정한 권위가 있었으며 그의 사역과 메시지는 기적을 통해 입증되었다. 예수님의 인격과 메시지는 그와 그의 제자들이 수행한 기적을 통해 제시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묘사하는 의미였다. 예수님의 능력은 그의 부활을 전하기 위해 택하신 종들을 통해 나타났다. 백성들을 위협하는 세력들은 예수님을 통해 패배했다. 그는 구원자이시다. 즉 육체적 구원은 영적 구원을 나타낸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한 일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낸다. 그들이 복음을 통해 제시한 소망에 관한 메시지는 참되다.
구원의 주관적 국면에 있어서 누가의 핵심적 개념은 회개이다. 회개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본문은 누가복음 5:30-32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병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누가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핵심적 용어는 ‘돌아감’(epistrophe)이다. 이 단어가 명사로는 단 한번 사용되었다. 사도행전 15:3에서 이 단어는 이방인의 개종적 행위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누가복음의 첫 장에서 세례 요한의 사역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누가-행전에서 자주 사용되는 다른 두 가지 용어는 믿음(pistis)과 ‘믿다’(pisteuo)이다. 누가는 이 두 단어를 믿음의 행위와 구원을 위한 믿음 사이에서 다양하게 사용한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 용어는 자신이 스스로 제공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누가는 또한 성령의 내주하심 외에도 구원을 통해 오는 여러 은사들로서 죄사함, 생명, 평화, 은혜, 선물 등을 제시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의 사역의 핵심적 부분으로 보았으며 십자가에서의 희생적 죽음은 그를 통한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의 핵심적 내용이기 때문에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체포와 심문 및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우연한 일로 보지 않고 미리 예정 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음’을 거듭남과 연결한다. 이것은 새로운 영적 출생이 믿음의 첫 단계임을 보여주며 요한일서에도 이와 동일한 새로운 영적 출생의 개념이 발견된다. 예수님을 따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에게서 난 자’이다(요일 2:29).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주장하였다. 이 구절은 종종 죄가 없는 완전함으로 오해되기도 하나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요한일서 어디에서나 참 신자도 죄를 범할 수 있음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요한은 ‘영생’을 소유하는 것과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다시 살리심을 동일한 의미로 보았다. 그러나 요한에게 영생은 올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세로 이어지며 신자들에게 경험된다.

요한 서신에 제시된 영생의 개념은 앞에서 다룬 요한복음의 영생 개념과 일치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요한일서에 제시된 영생의 원천이자 수여자로서 예수님의 역할은 단순한 ‘말씀’으로서 뿐만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도 사도 요한은 ‘이기는 자’(overcomer)에게 주어질 내세의 축복으로서 영생을 강조한다.
바울은 그의 선교서신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개인적 및 민족적 차원에서 모두 성취되었다고 언급하면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자신의 뜻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나 인간이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그의 선교서신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대해 속죄, 화목, 구속의 관점을 가지고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다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 본 것이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이 실제로 죄 값을 지불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보여준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장차 그리스도인이 경험할 하나의 전형으로 보았다(고전 15:20).
바울은 구원을 성취해 가시는 대행자가 성령이며 성령의 내주하심은 구원의 전 과정이 성취되도록 보증하신다고 말한다.
구원의 첫 번째 국면으로서 ‘칭의’는 무죄선언을 통해 죄의 형벌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 ‘성화’는 하나님께 속하여 그의 뜻대로 사는 성별된 자의 경험을 묘사한다. 영화는 신자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러한 소망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불멸의 영생체로 바뀐 사실이 포함된다.
바울은 목회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목적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셔서 영생의 소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죄의 값을 치렀으며,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속함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생명과 궁극적 영생에 대한 약속과 함께 하나님과의 화목 된 관계를 회복하게 해 주셨다고 한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것은 중요하다. 그는 본서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핵심적 사역으로 설명하였으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의 영적 구원을 제공하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역이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으로서 개인의 삶에 적용되는 것은 영적 출생인 ‘거듭남’과 성품과 깨달음에 있어서 보다 성숙되고 발전된 과정인 ‘성장’인 것이다. 이어서 미래적 절정은 궁극적 구원으로서 거듭남과 성장의 최종적 산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메시지로 복음을 주셨는데 이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적 사역이라 할 수 있다. 신자의 궁극적인 구원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로서 세례 요한을 비롯하여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려면 회개하라고 촉구하였다.

구원 받을 신자에게는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이 필요하며 믿음에는 믿음의 행위로서 회개에 따른 도덕적인 정결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신약에서 요한복음에 첫 번으로 언급된 거듭남은 위로부터의 인치심이다. 신자가 지식적인 깨달음으로 획득되는 것은 아니기에 영적 출생이라고 한 것이다.
요한일서 3:9의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는 난해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영문성경인 N.I.V와 T.E.V는 sin 앞에 continue to를 넣어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continue(계속하다)를 삽입하면 3:9절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가 된다. 그런데 K.J.V에는 continue가 없이 그대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계속해서(반복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성령께서 신자를 도와서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기 때문이며 영적인 성장은 성화를 이루고 최종적으로는 영화에 이르기 때문이다.